[vol 08] 다시 종이교과서로 돌아간 까닭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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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오미 배런 씀,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23

 

종이 없는 세계

 

종이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늘 빚진 마음이 있다. 출판업자가 책을 안 만들 도리는 없으니 일상에서라도 종이를 덜 쓰는 방법을 궁리했다. 단연 효과적인 것은 ‘자료의 디지털화’였다. 원고를 여러 차례 인쇄해서 교정교열 보던 방식을 태블릿PC에 터치펜 쓰는 것으로 바꾸고, 종이로 처리하던 계약서나 회계 자료들도 모두 PDF 파일로 바꾸었다. 책 한 권을 출간하고 나면 두툼하게 쌓이던 원고 더미가 사라졌고, 프린터기 사용 빈도가 줄자 A4용지, 토너 등 사무용품 비용도 절감되었다. 협업자들과 교정지를 주고받는 일도 간편해졌다. 종이의 세계를 벗어나보니 생각보다 장점이 많았고, 알량한 실천일지언정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던 듯했다.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국어 수업에서도 과감히 종이 프린트물을 없앴다. 코로나 즈음 교육청에서 학교밖청소년들에게 개인 넷북을 지급해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수업자료를 PDF로 만들어 공용 드라이브에 올리면 각자 넷북에서 열어 함께 읽었다. 필기도, 작문도 모두 넷북으로 했다. 매시간 아이들 수에 맞추어 자료를 출력해 나눠주던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수업이 끝나면 여기저기 종이 자료들이 흩어져 돌아다니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었다. 아이들도 군말 없이 따르기에 종이든 디지털 자료든 별 차이가 없는가 했다. 

 

이건 어디서 오는 불편함일까

 

그런데 편리함 이면에 생각지 못한 불편함이 생겨났다. 다같이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도, 어쩐지 우리가 같은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 희미한 직감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같은 내용을 종이로 읽는 것과 디지털로 읽는 것에 차이가 있을까. 디지털과 읽기에 관한 여러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 하나가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배런은 종이책과 디지털 자료의 본질적 차이는 ‘읽는 행위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텍스트는 종이책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화면을 움직이는 스크롤 방식 때문에 텍스트의 공간적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고, ‘글의 위치’를 기억하는 공간 기억(spatial memory)이 약화된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이 자유가 집중을 분산시키고 흐름을 끊는다. 배런은 이를 ‘인지적 방향 감각(cognitive map)의 상실’이라 부른다. 

같은 내용을 디지털로 읽었을 때 종이책보다 이해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다. 화면으로 텍스트를 볼 때는 뇌가 ‘정보 탐색 모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자 닐슨(Nielsen)은 ‘F자형 읽기 패턴’이라는 흥미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디지털 자료를 읽을 때 처음 두세 줄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아래로 내려가면서는 문장의 첫머리 부분만 훑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이 패턴은 빠른 정보 검색에는 유리하지만 놓치는 정보가 많아서 글의 논리 구조나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반면, 종이책 읽기는 디지털 텍스트보다 시간은 오래 걸릴지라도 뇌의 전두엽과 해마 회로를 함께 활성화시키는 ‘인지적 상호작용(cognitive interaction)’을 유발한다. 밑줄 긋기, 메모하기, 책장 넘기기 같은 물리적 행동이 기억 통합을 돕고, 의미를 조직하는 능력을 강화한다. 물리적 공간 안에서 문장을 따라가며 페이지를 손끝으로 넘기는 행위는 시각적 단서와 함께 기억의 지도를 형성해 텍스트를 장기기억 속에 저장한다. 

종이책과 디지털 자료 읽기의 차이는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온 사안이다. 연구 초기에는 내용이 같다면 그것을 담는 그릇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우세했으나, 연구가 심화될수록 읽기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초기의 연구 질문들이 섬세하지 못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연구의 틀을 제기한다. 읽기의 외적(물리적) 요인뿐 아니라 내적(정신적) 요인까지 고려해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간 종이와 디지털을 비교하는 연구 대부분은 인지적 성취에만 주목해왔다. 하지만 새로 제시된 정신적 요인에 따르면 전자기기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인지적 수행력을 떨어뜨린다. 인간이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인지력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종이책으로 돌아가자”는 회귀론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사유와 몰입이 필요한 텍스트는 종이책이 낫고, 짧은 정보 탐색이나 참고용 읽기는 전자 매체가 효율적이므로 “읽기 매체의 선택은 목적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읽기는 단순한 학습 기술이 아니라 사유와 관계의 행위다.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고 저자의 의도와 자신의 생각을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깊은 읽기’가 일어난다. 그가 강조하듯 “느리게 읽는 능력은 사고의 깊이를 지탱하는 근육”이다. 

 

디지털 원주민들의 선택 

 

수업 시간에 느낀 불편함의 실체를 알게 됐다. 저마다의 넷북을 앞에 둔 교실에서는 ‘전자기기’라는 매개 그 자체만으로 같은 세계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물었더니, 디지털 원주민들의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종이로 인쇄된 자료를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화면 오래 보면 눈 아파요.” “집중이 잘 안 돼요.” “글을 꼼꼼하게 읽으려고 눈에 힘을 주다 보면 미간에 주름 생겨요.” “화면을 열어놓으면 유혹의 손길이 너무 커서 자꾸 딴짓 하게 돼요.” “장점이요? 물론 있죠. 넷북은 공부 안 하면서 하는 척하기 딱 좋아요.”
나름의 절충안도 내놓았다. “짧은 글을 읽거나 긴 글을 작성해야 할 때, 자료 찾을 때는 넷북을 쓰고요. 장면을 상상하거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글은 종이로 뽑아서 보는 거 어때요?” 배런의 책을 읽지도 않은 아이들이 그가 제시한 해답을 내놓았다. 

덕분에 쓱쓱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터기 앞에 서서 다시 빚진 마음을 갖게 됐지만, 그 부담을 상쇄하는 장점도 만났다. 각자의 앞에 놓인 하얀 종이에 코를 박고 글을 읽으며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고, 메모를 써넣는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같은 시간, 같은 세계에 함께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간혹 다른 세상으로 새어나가는 아이가 있어도, 그곳이 어딘지 짐작할 수 있어 막막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종이 귀퉁이에 그려놓은 ‘성난 졸라맨’이나 금이 간 하트 같은 그림, ‘배고파’ ‘졸려’ 같은 낙서로 아이들의 세계를 엿보며 대화를 나누게 된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곡절 끝에 우리는 종이와 디지털의 중간 세계, 그 어디쯤 머무르기로 했다.


글쓴이  장희숙 _《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