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8]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청소년 언론, <토끼풀>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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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린 기자(왼쪽)와 문성호 편집장(오른쪽). 편집장이 백지 발행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X의 한 게시물이 SNS를 달구었다. 청소년 언론 <토끼풀>이 ‘학교 언론의 자유’에 관한 서명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서울 은평구 소재 4개 중학교 학생기자들로 구성된 <토끼풀>은 학교가 신문을 압수하고 배포를 금지한 것에 저항하며 10월 16일자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문성호 편집장(중3)과 한혜린 기자(중2)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편집실

 

2024년 4월에 <토끼풀>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창간 계기가 궁금해요.

문성호 : 원래는 한 학교의 교내 동아리였어요. 주로 학교 안의 소식을 다루면서 큰 이슈가 있을 땐 대자보도 붙여보자,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학교 밖으로 확장이 되면서 지금은 은평구 4개 학교에 소속된 32명의 기자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매달 1천 부를 발행해서 각 학교에 배포하고 후원자들에게도 보내고 있죠. 

 

최근 한 학교에서 신문을 압수한 사건 때문에 이슈가 됐는데요. 압수 사유가 무엇이었나요?

문성호 : 신도중학교에 배포하려던 신문 100부를 교장 선생님이 압수해서 폐기했어요. 기자 모집 포스터도 제거했고요. 딱히 이유를 모르겠어서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끝내 안 알려주더라고요. 아이들끼리 싸우고 문제 일으키는 동아리를 제재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 기준에 우리를 적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한혜린 : 학교에 외부 출판물과 게시물 배포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그것을 저희에게도 적용한 것 같아요.

문성호 : 엄밀히 따지면 소속 학교 기자도 있는데, 이게 완전히 외부 출판물은 아니잖아요. 심지어 그 학교에는 <토끼풀>을 처음 배포하는 거였는데, 신문을 보자마자 뭔가 교장 선생님이 안 좋게 생각하신 건 아닐까라고 추측만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학교 안의 소식을 다루면 해당 학교에서 계속 간섭하고 기사를 검열하려고 들었어요. 어느 학교에서 공사를 하는데 ‘소음이 심하고 노동자들이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워서 학습권이 침해된다’ 이런 기사를 썼더니 해당 학교에서 내용을 고치라고 했어요. 결국엔 ‘(학교가 공사 중이니) 학생들이 안전수칙을 잘 지키자’라고 기사를 고쳐서 내보내기도 했죠. 전교회장 선거 후보에 대한 보도를 했을 때도 개인정보라면서 배포를 금지하는 일이 발생했고요. 그래서 요즘은 학교 내부 이야기보다 주로 사회나 정치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느낌이라는 거죠.

 

신문 압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1면을 백지로 발행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거예요?

문성호 : 예전에도 기사가 잘리거나 취재까지 마쳤는데 기사를 싣지 못하게 된 적이 있어서 그 지면을 비운 채로 내보자 이런 의견들이 나오던 중이었어요. 이번에 신문 압수 사건이 발생하니까, 이 방법으로 확 공론화를 시켜보기로 했죠. 

 

SNS에서 회자되고 언론에도 보도가 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신문 압수 사건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한혜린 : 교육청 학생인권위에서도 도와주시고 외부 인권단체나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있지만, 아직은 진상 조사와 해결 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신문을 압수한 선생님이 해당 학교 기자 4명에게 사과를 하긴 했는데요. 그치만 100부나 되는 신문을 압수해서 폐기해버린 것에 대한 대책이나 사후 처리에 대한 것은 듣지 못했어요. 앞으로의 배포 여부에 대해서도 확답이 없고요. 학교 여기저기 남아 있던 신문 5부를 모아서 돌려보게 했다면서, 사실은 배포한 거라고 주장하시기도 해요. 

 

그간 발행한 기사들을 봤더니 기획이 무척 참신했어요. 학교 안팎의 문제부터 청소년 자살, 기후위기, AI 기술, 미국 정세, 12.3 내란 사태 등 사회 현안까지 발빠르게 다루고 있더라고요. 학교 다니느라 다들 바쁠 텐데 이런 기획 기사들은 어떻게 의논하고 진행하는지 궁금해요.

문성호 : 따로 회의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상시로 기획한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보통은 편집부에서 아이디어가 돌아다니다가 기사 쓸 때가 되면 기자들에게 제안하는 방식이에요. 단체 채팅방에서 밤이고 낮이고 생각날 때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고 있죠. 

 

신문을 발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는 어떤 게 있나요?

문성호 : 아무래도 기후동행카드에 관한 기사죠. 기후동행카드는 일정 금액을 할인해주는 서울형 교통패스인데 청소년들은 청년보다 비싼 성인용 패스를 써야 했죠. 이 기사를 연속 보도하면서 청소년도 청년 요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어요. 창간 즈음부터 이 기사를 다양하게 보도하면서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것도 기억나요.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가 독일에서 벤치마킹을 해온 거라서, 이 제도를 주도한 독일 녹색당 의원을 인터뷰해서 실었죠. 공을 많이 들인 기사였어요. 

 

신문을 보는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문성호 : 인터넷 조회수처럼 정량으로 나오는 게 아니니까 잘은 모르지만, 한 절반 정도는 읽히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도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거죠. 신문 압수 사건을 겪으면서 갑자기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서 많은 양을 우편으로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 대책을 고민하고 있어요.

 

편집장님이 중3이어서 곧 졸업을 하실 텐데 향후 토끼풀은 어떻게 되나요? 

문성호 : 그것도 걱정이긴 한데요. 당장 다음 호를 신도중학교에 배포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서 장기적인 생각은 못하고 있어요. 다음 호는 ‘언론 탄압’ 특집으로 낼 계획인데, 신도중학교에 배포를 못하게 하면 교문 앞에 가서 직접 나눠주려고 해요. 학교 안에서 배포 못하게 하면, 학교 밖에서 하면 되는 거죠.

사실 기자 활동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은 편이에요. 활동을 반대하는 이유도 다양해요. 학업 문제부터 시작해서 학교랑 싸우면 안 된다, 정치판에 끼어들지 마라, 괜히 문제 만들지 말고 조용히 학교 다녀라, 이런 이유를 대시죠.

그래서 고교학점제 관련 전문가들을 모셔서 좌담회를 한다든지, 부모님들이 좋아하실 만한 기사도 기획해보려고 해요. 학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기자 활동에 반대하지 않고 ‘되게 좋은 언론사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도록요. 

 

레거시 미디어부터 1인 미디어까지 읽을 것, 볼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죠. 종이신문이나 종이책을 읽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토끼풀>이라고 하는 언론의 방향은 무엇인지요?

문성호 : 저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요. 그래도 종이신문이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은 인터넷 신문을 읽기가 오히려 어려워요. 학교에서는 핸드폰 압수당하고, 집에서 핸드폰 할 때는 뉴스 말고도 볼 게 많잖아요.

종이신문이니까 학교 곳곳에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면 심심할 때 한번씩 보게 되는 거 같아요. 자습 시간에 할 게 없다, 이럴 때 읽기도 하고요. 지금으로선 ‘종이신문’이라는 형태가 학생들에게 읽힐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 같아요. 이렇게 싸워가면서 굳이 학교에 배포를 해야 하냐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그러지 않으면 읽히기가 어려워요. 이번 일로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서 앞으론 더 다양하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연회를 연다든가, 멀리 취재를 간다든가 여러 방법을 구상 중이에요. 

 

이 활동이 본인들에겐 동아리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한혜린 : 저는 올해 8월에 토끼풀 기자가 되었는데요. 시작하자마자 우리 학교에 첫 배포하면서 이런 일을 겪어서 좀 당황했어요. 어쨌든 글을 써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아서 좋고요. 청소년의 손으로 직접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문성호 : 사실 저는 이 일이 재미있어서 깊이 빠져 있는 건데요. 기자들 중엔 재미가 약간 떨어지면 슬슬 탈퇴하는 경우도 있죠. 많이 빠져 나가지만 지원자가 많아서 바로바로 충원을 해가고 있어요. 

학교들은 눈엣가시로 자꾸 없애려 하지만, 청소년 언론이라는 게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존재예요. 변호사들을 대변하는 법률신문, 의사들을 대변하는 의사신문처럼, 청소년을 대변하는 언론은 꼭 있어야 해요.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학교도 저희를 단순히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 수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견제 기능을 하는 언론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의 견제 기능을 인정해야 진정한 학교 민주주의도 실현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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