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9] '어린이식당'이라는 돌봄공동체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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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고 있는 ‘어린이식당 작은숲’


어린이식당의 시작과 확산

 

2012년, 도쿄의 한 채소가게 주인은 학교 선생님에게서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가게에 남은 채소로 일주일에 한 번 요리를 해 동네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어린이식당’ 운동이 시작된 계기였다. 당시 일본의 아동 빈곤율은 14%에 육박했다. 맞벌이와 한부모 가정 증가로 돌봄 공백이 커지고,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학교는 급증하는 돌봄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으며, 지자체 또한 방과 후 돌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행정이 지원해주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들이 다 커버리고 만다’는 생각에 뜻 있는 사람 몇몇이 모여서 어린이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어린이 혼자 와도 괜찮아요.

숙제를 가지고 와도 괜찮아요.

함께 놀면서 저녁을 먹어요.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초창기의 홍보 문구대로 어린이식당은 무료급식소를 넘어 복합적 돌봄의 장소가 되었다. 식사 시간보다 일찍 와서 놀거나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이 소식을 들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모이면서 어린이식당은 점차 식사, 돌봄, 놀이, 학습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육아에 지친 전업주부와 조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다. 맞벌이 부모가 퇴근 후에 들러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어린이식당은 점차 누구나 함께 밥을 먹는 ‘모두의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어린이식당의 확산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초기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몇몇 지역에서 시작했는데, 2015년 이후 언론과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전국으로 번졌다. 장소는 교회나 상점, 생협, 주민센터 등 다양했다. 식재료는 인근 슈퍼마켓, 베이커리, 농가 등에서 기부해주었다. 운영비나 식비에 보태라며 소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라는 자발적 참여의 철학이 일본 시민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주부, 상인, 퇴직자, 대학생, 기업인까지 역할을 나누며 마을에서 한 끼 밥상을 차렸다. 지금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정기적으로 문을 여는 곳도 있고, 매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생겨났다. 

2017년에는 전국 규모의 어린이식당 네트워크인 ‘무스비에(むすびえ)’가 출범했다. 무스비에는 전국 어린이식당의 운영 방법을 표준화하고, 식자재 기부 매칭과 정부 보조금 연계를 주도했다. 이후 일본 지자체들이 행정예산 지원, 안전 매뉴얼 보급, 위생 교육 등을 시행하면서 제도권 복지와 어린이식당을 연결하는 역할도 했다. 무스비에는 민간과 비영리단체의 자발적 참여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전국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이식당 운영 현황, 한계와 발전

 

계속해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어린이식당은 2024년 말 기준, 일본 전역에 10,867개가 운영 중이다. 이는 전체 초등학교 수(2만2천여 개)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약 40%는 시민단체(NPO)나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20%는 종교시설, 나머지는 지자체·학교·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최근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세대통합형 마을 커뮤니티로 더욱 진화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식당의 조리와 서빙에 참여하며 ‘돌봄을 받는 존재에서 돌봄을 나누는 존재’로 성장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코로나 때 운영을 축소하거나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곳도 있었지만, 오히려 전체 숫자는 늘어났다. 아동의 식사와 돌봄이 더 절실해진 만큼, 활동가들은 ‘식탁이 사라지지 않도록!’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아이들과의 연결이 끊기지 않게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모여서 식사하는 형태를 피하는 대신 도시락 배달, 식재료 방문 나눔, 온라인 상담 등으로 그 역할을 유지했다. 대부분 민간 또는 비영리단체여서 정부 관련 시설처럼 강제 폐쇄 명령에 영향을 받지 않은 덕분이다. 어린이식당은 중앙정부 주도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자발적 돌봄을 확장한 예외적 사례로, 일본 사회에 여전히 지역공동체의 힘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 일본의 어린이식당 연도별 현황 (무스비에 홈페이지 kodomoshokudou-network.com에서 일본 전역의 어린이식당 현황, 운영 매뉴얼, 활동 소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 어린이식당이 전국으로 확산한 것은 일본사회가 어린이뿐 아니라, 전 세대에게 돌봄이 필요한 사회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는 돌봄을 가족만의 책임으로 남겨둘 수 없게 만들었다. 어린이식당은 돌봄을 ‘공동의 생활 인프라’로 재구성하며 ‘밥’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다시 연결했다. 그 기저에는 “행정은 큰 테이블을 차리고, 시민은 따뜻한 밥을 올린다”는 정서가 통했다. 민간 주도의 운동에 지자체의 지원이 결합되고 있는 추세인데, 어린이식당의 재원으로 고향 납세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식사에 대한 편견이나 부담도 있어 쉽사리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 내 어린이식당들이 함께 축제를 기획해 식당을 홍보하고 이용률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후나바시 시에는 약 30여 개의 어린이식당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 식당은 매달 지역 아이들과 가족, 주민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을 연다. 축제에서는 음식 제공뿐 아니라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와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역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규모가 확산된 만큼 한계도 불거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속되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도 있고, 자원활동하는 주부들 입장에선 가장 바쁜 저녁 시간에 시간을 내야 하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민감한 주방 일을 둘러싼 봉사자들 사이의 갈등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겼다. 상설 식당이 아니지만 식품위생법 등의 법률적 문제도 이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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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고향이나 기부하고 싶은 지역을 선택해 해당 지자체에 2천 엔(약 1만8천 원) 이상 기부하면 기부금 증명서와 답례품을 전달하고 세액공제를 해준다. 한국에는 이를 벤치마킹한 '고향사랑기부금'제도가 202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국의 어린이식당 운동 

 

우리사회에도 곳곳에 어린이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2018년 격월간지 《민들레》에 일본 어린이식당 활동가 글이 실린 뒤, 민들레 독자들이 주축이 되어 울산 더불어숲도서관, 제주 수눌음육아나눔터 등에서 어린이식당을 열었다.* 서울 중구 등 지자체에서는 주민센터와 공공자원을 활용해 어린이식당을 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활동이 멈추면서 사라진 곳도 많지만 여전히 작은 불씨는 남아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어린이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무스비에 같은 중간조직이 없어 정확한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마을밥상, 청소년식당, 동네밥집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유사한 형태의 돌봄공동체가 꾸려지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의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식당 활동가 대회’는 전국의 어린이식당 현황을 파악하고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현장 활동가를 비롯해 어린이식당에 관심 있는 이들 80여 명이 모였다. 온라인으로 일본 무스비에 이사인 미시마 리에 씨의 강연을 듣고, 서울 도봉구의 ‘초록뜰 청소년마을식당’, ‘청소년마을식당 밥먹go’, 서울 노원구의 ‘어린이식당 작은숲’ 같은 사례를 공유했다. 

행사를 준비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이승훈 센터장은 어린이식당을 전국에 퍼트리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작년 11월부터 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어린이식당 작은숲’을 열고 있는데, 그간의 사업과는 뭔가 다른 점을 느꼈다고 한다. 

“일단, 찾아오는 사람들 마음이 가벼워요.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밥 먹자고 하니까 다들 부담없이 즐겁게 오죠. 문턱이 낮은 거예요. 아이를 보내놓고 지켜보기만 하던 양육자들이 들어와서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돕기도 하고, 밥 먹으러 왔던 중고등학생들이 다음 번에는 테이블 매니저를 자처해 식당 운영을 돕기도 해요. 동네 주민들이 식재료비를 십시일반 모금하기도 하고요. ‘사업’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이 일에는 뭔가 변화와 감동이 있어요. 각자도생하는 사회에서 음식이 가진 매력으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구나 깨닫게 되었죠.”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로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씩 식당 문을 열 때도 있다. 매번 밥상을 준비하는 주체가 바뀌는 것도 ‘작은숲’의 특징이다. 11월에 어린이식당을 준비한 주체는 주변 장애인복지관의 경계선 지능인들이다. ‘항상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그들이 주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다른 사람을 돌보는 입장에 서본 거다. 이승훈 센터장은 이런 사례들을 모아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곳에 널리 알리고 있다. “최근 들어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이 주춤하고 있는데, 어린이식당이 그 뒤를 이어갈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승훈 센터장은 어린이식당의 필요와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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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 92호, 윤영희,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식당’. 115호, 조민경, ‘한지붕 열 가족의 어린이식당 도전기’, 118호, 윤영희, ‘도쿄에서 제주, 서울까지 이어진 어린이식당’.

 

한 끼 식사로 만들어가는 돌봄공동체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무엇보다 어린이식당에 깃든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일본에서 어린이식당은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방재의 일환이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재난 상황이 잦은 일본 사회에는 이를 헤쳐나가는 힘을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에서 찾자는 ‘이바쇼(居場所)’ 운동이 있다. ‘이바쇼’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용어인데, 교육학과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의를 거쳐 정립된 개념이다. 정의하자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1990년대부터 일본의 사회복지, 청소년, 노인복지 영역에서 폭넓게 이 개념이 쓰인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나 독거노인의 고립을 해결하려는 지역공동체 운동 속에서 ‘먹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장소’로서 이바쇼가 확산되었다.

어린이식당도 이바쇼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의 어린이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행정기관으로서 2023년 4월에 새롭게 출범한 어린이가정청에서는 어린이정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를 설정하고 있다. 2023년 3월 발표한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는 어린이 이바쇼의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가고 싶다’ ‘있고 싶다’ ‘해보고 싶다’를 제시한다. 변화를 강요하거나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곳으로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  어린이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언제든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새로운 배움을 만들어갈 기회가 있는 곳을 말한다. 사회의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장소로서의 어린이식당은 2010년대 일본 시민사회가 이루어낸 소중한 성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5년 전 일본과 마찬가지로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이 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밥을 제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 수가 적지 않다. 2024년 기준, 결식아동 수는 27만여 명으로 전체의 4% 수준이다. 급식은 학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되었다. 학교 덕분에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다. 방학 때면 학원을 전전하며 부모가 선결제해 놓은 아파트 상가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원과 학원 사이 짧은 시간에 편의점에서 한 끼를 때우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밥을 챙기는 일’은 가장 근원적인 돌봄이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적어도 밥을 굶는 일이 없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마음은 더 큰 돌봄으로 이어진다. ‘한 끼 식사’를 매개로 따뜻한 돌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어린이식당이 한국 사회에도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 


_편집실


* 민들레 158호 겨울호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