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뇌과학, 인지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적 학습법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공부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든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공부하라고만 다그친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공부의 비결』(세바스티안 라이트너, , 안미란 옮김, 들녘, 2016) 저자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벌써 40여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인지과학에 근거해 효율적인 학습법을 제안하고 있다. 방법이 나쁘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체에 물 빠지듯 다 빠져나가 버린다면서. 이 책에서는 주로 암기가 필요한 공부에 ‘카드 활용’을 적극 권하는데, 외국어 학습의 경우 특히 효과적이지만 수학이나 역사 같은 다양한 영역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핵심 내용을 카드에 정리해서 적절한 텀을 두고 효과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비결(?)이다.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매우 효율적인 복습 요령인 셈이다.
앎과 암기(暗記)는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뿐더러 시간도 걸린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여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자 한다. 기억은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음으로써 그 사람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한 인지과학자는 “우리의 뇌가 생각하는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학교와 교사를 아이들이 좋아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1)
생각은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 일에도 도구가 필요하다. 삼단논법 같은 것도 그런 도구의 일종이다. 그리고 추론을 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집을 짓는 데 건축자재가 필요하듯이 장기기억에 저장된 사실적 지식이 풍부할수록 사고의 빌드업이 수월하다. 역사적 사실들을 풍부하게 알고 있으면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수월한 것처럼. 사실적 지식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도 있지만 장기기억에 저장되어 있으면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사실적 지식이 축적되어 있으면 그것들이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진다. 기초지식 없이 추상적 지식이나 비판적 지식을 얻기는 힘들다. 기초학력이 중요한 이유다.
기억력은 가장 기초적인 학습 역량이다. 기억하고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맥락 연결이 쉬워진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뿐더러 사실들이 다양한 맥락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통찰이 생겨난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수록 재미가 붙고, 학습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이 적으면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고 학습 가속도가 붙지 않아 쉽게 지치게 된다. 말하자면 매번 시동을 다시 걸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전화번호도 거의 기억하지 않을뿐더러 메모하거나 기억해둘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기억력도 훈련이 필요한데, 디지털 세대의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영츠하이머’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기억에는 단기기억과 작업기억, 장기기억이 있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은 정보를 일시적으로(15~30초) 유지하면서 이해나 판단 같은 각종 인지작업을 수행하는 작업장 기능을 하는 인지 시스템으로2) ‘뇌 속의 메모지’라고도 불린다. 정보를 잠시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어서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의 일종이긴 하지만 정보를 가공 없이 그대로 기억·유지하는 다른 단기기억과 달리 정보의 조작(작업)이 수반되는 기억이라는 점이 다르다. 작업기억의 용량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인지과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학습의 요령이기도 하다.3)
흔히 암기가 힘든 까닭은 단편적이고 분절된 정보를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정보는 다른 것들과 엮여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잊혀진다. 장기기억에 저장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단기기억조차 쉽지 않다. 전화번호를 한번 듣고 기억하기 힘든 이유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에너지의 등가 관계식을 나타내는 간단한 공식 E=mc2을 무작정 암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를 이해한 사람은 ‘질량×광속2=에너지’라는 공식은 굳이 암기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될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 속에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아는’ 사람은 이 단순한 공식 하나를 통해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프로 바둑기사는 대국이 끝나면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수백 개의 바둑돌이 놓인 순서를 그대로 따라 둘 수 있다. 바둑 대국을 복기하는 작업은 음악가들이 처음 들은 곡을 기억만으로 채보하는 작업과 유사해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맞물려 움직이는 한 점(축)과 그 점이 변화하는 방향을 알면 저절로 다음 수 또는 다음 음이 떠오른다. 한 수 한 수, 한 음 한 음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수, 다음 음이 이어진다. 고수는 맞물려 움직이는 한 점의 움직임을 추적함으로써 전체를 안다. 안다는 것은 이처럼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연결 지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때의 앎은 곧 기억과 하나다.
암기교육을 비판하는 이들 중에는 기억이 곧 학습은 아니라면서 ‘친숙해지기(familiarize)’야말로 학습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말한다.4) 새 차를 사면 판매인이 고객에게 "이 차의 매뉴얼과 친숙해지십시오"라고 말하지 "이 차의 매뉴얼을 외우십시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학교는 아이들에게 매뉴얼을 외우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운전은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고, 차의 여러 가지 기능들은 실제로 버튼을 눌러 작동시켜보면서 그 기능에 익숙(친숙)해진다. 교과서 내용을 암기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면서 배우는’ 과정을 거쳐 자동차의 작동법이 장기기억에 저장된다. 전형적인 ‘learning by doing’ 방식의 학습이다. 하지만 친숙해지는 학습법에서도 기억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

악기 연주나 운동 같은 기예는 같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숙달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나은 방법은 자신의 동작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때문에 스승이 필요하고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스승이나 트레이너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신의 동작에 주의를 기울이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세분하여 한 단계씩 나아가는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은 동작을 무작정 반복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배움의 방법이다.
어떤 기술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여러 단계로 나눔으로써 우리는 현재 자신의 능력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또 이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세분화된 단순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시어도어 다이먼, 『배우는 법을 배우기』, 원성완 옮김, 민들레, 2018. 43쪽)
스승이나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지성을 활성화시켜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체의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예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습관적 행동을 자각하고 이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과정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의 관계를 통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수련 과정은 몸을 움직여 배우는 기예가 아닌 지적 탐구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이민열, 미지북스, 2020)에서 저자는 지적 과업을 수행할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눈 감기, 공책 쓰기, 부건(副件)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사람과 과업에 따라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제안하는 세 가지 전략은 상당히 유용할뿐더러 보편적인 원리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를 “탐구의 습관화에 유용한 연장통”이라고 말한다.

‘눈 감기’는 눈을 통해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 차단함으로써 이해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책을 읽다 보면 관성의 힘에 의해 눈은 계속 다음 문장을 좇아서 읽어나가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또는 맥락 속에서 숙성시키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 쉽다. 눈(읽기)의 속도가 이해력의 속도를 추월하는 셈이다. 따라서 중요한 대목을 읽은 뒤에는 잠시 눈을 감고 다른 정보를 차단한 상태로 방금 읽은 내용을 음미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이는 학습에서 배움(학)과 익힘(습)의 과정에 약간의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예든 지적 탐구든 익힘(숙성) 과정이 중요하다.
‘공책 쓰기’에서 제안하는 전략은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스승이나 트레이너가 하는 역할을 스스로 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일의 시작을 자꾸만 미루게 될 때 공책에 이런 질문을 써본다. ‘내가 하려는 과업은 무엇인가’, ‘이 복합적인 과업을 어떻게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는가’, ‘세분화된 단순 과업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연결하면 좋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과업을 좀 더 쉽게 해낼 수 있게 된다. 과업의 ‘세분화’는 기예의 습득이든 지적 탐구든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부건 활용하기’는 주된 과업(主件)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하면 좋은 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부건(副件)을 한 가지 정해 주건과 부건을 오가면서 일하는 방식이다.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지루함과 난관을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건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본 과업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으로 할 수도 있다. 기예의 습득이든 지적 탐구든 모든 배움의 과정에는 난관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성패를 결정한다. 지적 탐구에도 습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습관 들이기
장기기억처럼 뇌의 수고를 덜 수 있는 또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습관은 판단하고 결심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데 드는 에너지를 절약해준다. 습관(習慣)은 뭔가를 하고 또 해서 관성의 힘이 작동하는 상태로, 시동을 거는 에너지를 절약해주고 관성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나눔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삶도 결국 좋은 습관이 만든다. 좋은 습관 한 가지를 들이면 다른 많은 것들이 거기에 연동되어 바뀐다. 배운(學) 것을 틈틈이 익히는(習) 것이 학습의 요체이듯,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습관 들이기는 뇌가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뇌가 몸의 통제 아래 놓이는 과정이다. 우리 몸은 습관에 매우 민감하다.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처럼 세 달 정도 뭔가를 꾸준히 하면 몸이 바뀐다. 두세 달이면 웬만한 육체노동에도 몸이 익숙해지듯이 두세 달만 몸을 쓰지 않으면 근육도 몸의 유연성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습관의 지배를 쉽게 받는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지만으로 잘 되지 않는다.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포털에 접속했을 때 습관적으로 뉴스를 클릭하며 옆길로 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런 습관적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볼 필요가 있다. ‘습관에는 습관으로 대응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응법이다.
운동이든 공부든 어떤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단기, 중기,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계획을 너무 구체적으로 세우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에 묶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날이 성장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 볼 수 없었던 시야를 갖게 된다. 장기계획은 어떤 목표나 방향 설정 정도로 충분하며, 중기계획으로는 시험 합격이나 승진처럼 외적 요인이 개입되는 것보다 자신이 노력하면 결과가 확실히 나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단기계획은 일주일 단위의 짧은 기간 동안 날마다 해야 할 일이다. 실현가능한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습관의 힘을 빌어 하루하루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목표한 지점에 가닿게 된다. 설령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은 지적 탐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습관뿐만 아니라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습관을 효과적으로 들일 수 있는 유용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책 전체가 ‘습관 들이기’에 도움 되는 연장통에 가깝지만, 마지막 장 ‘단순화의 기예’에서 강조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사는 데 삶의 단순화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칸트나 뉴턴, 다윈 같은 거인들의 인생을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때 그들이 이룬 눈부신 성취 때문에 매우 다채로운 인생을 보낸 것처럼 오해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는 것이다.7) 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내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해온 우치다 타츠루 선생 또한 평소 학교와 도장을 오가는 매우 단순한 생활을 수십 년 지속해왔음을 고백한다. 좋은 삶이야말로 지적 탐구에서도 기본 토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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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니얼 T·윌링햄,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문희경 옮김, 부키, 2011.
2) 단기기억은 정보가 유지되는 시간의 관점, 작업기억은 수행되는 과제의 목표 달성 관점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3)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펴내는 웹진 《교육 제4의 길》에는 인지과학에 근거한 학습법에 대한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4) 젠틀윈드, 학습과 기억은 어떻게 다른가, 《민들레》 통권 6호.
_현병호(발행인)
오늘날 뇌과학, 인지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적 학습법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공부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든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공부하라고만 다그친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공부의 비결』(세바스티안 라이트너, , 안미란 옮김, 들녘, 2016) 저자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벌써 40여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인지과학에 근거해 효율적인 학습법을 제안하고 있다. 방법이 나쁘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체에 물 빠지듯 다 빠져나가 버린다면서. 이 책에서는 주로 암기가 필요한 공부에 ‘카드 활용’을 적극 권하는데, 외국어 학습의 경우 특히 효과적이지만 수학이나 역사 같은 다양한 영역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핵심 내용을 카드에 정리해서 적절한 텀을 두고 효과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비결(?)이다.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매우 효율적인 복습 요령인 셈이다.
앎과 암기(暗記)는 연결되어 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뿐더러 시간도 걸린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여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자 한다. 기억은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음으로써 그 사람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한 인지과학자는 “우리의 뇌가 생각하는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학교와 교사를 아이들이 좋아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1)
생각은 그냥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 일에도 도구가 필요하다. 삼단논법 같은 것도 그런 도구의 일종이다. 그리고 추론을 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집을 짓는 데 건축자재가 필요하듯이 장기기억에 저장된 사실적 지식이 풍부할수록 사고의 빌드업이 수월하다. 역사적 사실들을 풍부하게 알고 있으면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수월한 것처럼. 사실적 지식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도 있지만 장기기억에 저장되어 있으면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사실적 지식이 축적되어 있으면 그것들이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진다. 기초지식 없이 추상적 지식이나 비판적 지식을 얻기는 힘들다. 기초학력이 중요한 이유다.
기억력은 가장 기초적인 학습 역량이다. 기억하고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맥락 연결이 쉬워진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뿐더러 사실들이 다양한 맥락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통찰이 생겨난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수록 재미가 붙고, 학습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이 적으면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고 학습 가속도가 붙지 않아 쉽게 지치게 된다. 말하자면 매번 시동을 다시 걸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전화번호도 거의 기억하지 않을뿐더러 메모하거나 기억해둘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기억력도 훈련이 필요한데, 디지털 세대의 기억력이 점점 감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영츠하이머’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기억에는 단기기억과 작업기억, 장기기억이 있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은 정보를 일시적으로(15~30초) 유지하면서 이해나 판단 같은 각종 인지작업을 수행하는 작업장 기능을 하는 인지 시스템으로2) ‘뇌 속의 메모지’라고도 불린다. 정보를 잠시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어서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의 일종이긴 하지만 정보를 가공 없이 그대로 기억·유지하는 다른 단기기억과 달리 정보의 조작(작업)이 수반되는 기억이라는 점이 다르다. 작업기억의 용량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인지과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학습의 요령이기도 하다.3)
흔히 암기가 힘든 까닭은 단편적이고 분절된 정보를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정보는 다른 것들과 엮여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잊혀진다. 장기기억에 저장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단기기억조차 쉽지 않다. 전화번호를 한번 듣고 기억하기 힘든 이유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에너지의 등가 관계식을 나타내는 간단한 공식 E=mc2을 무작정 암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를 이해한 사람은 ‘질량×광속2=에너지’라는 공식은 굳이 암기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될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 속에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아는’ 사람은 이 단순한 공식 하나를 통해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프로 바둑기사는 대국이 끝나면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수백 개의 바둑돌이 놓인 순서를 그대로 따라 둘 수 있다. 바둑 대국을 복기하는 작업은 음악가들이 처음 들은 곡을 기억만으로 채보하는 작업과 유사해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맞물려 움직이는 한 점(축)과 그 점이 변화하는 방향을 알면 저절로 다음 수 또는 다음 음이 떠오른다. 한 수 한 수, 한 음 한 음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수, 다음 음이 이어진다. 고수는 맞물려 움직이는 한 점의 움직임을 추적함으로써 전체를 안다. 안다는 것은 이처럼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연결 지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때의 앎은 곧 기억과 하나다.
암기교육을 비판하는 이들 중에는 기억이 곧 학습은 아니라면서 ‘친숙해지기(familiarize)’야말로 학습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말한다.4) 새 차를 사면 판매인이 고객에게 "이 차의 매뉴얼과 친숙해지십시오"라고 말하지 "이 차의 매뉴얼을 외우십시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학교는 아이들에게 매뉴얼을 외우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운전은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고, 차의 여러 가지 기능들은 실제로 버튼을 눌러 작동시켜보면서 그 기능에 익숙(친숙)해진다. 교과서 내용을 암기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면서 배우는’ 과정을 거쳐 자동차의 작동법이 장기기억에 저장된다. 전형적인 ‘learning by doing’ 방식의 학습이다. 하지만 친숙해지는 학습법에서도 기억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
악기 연주나 운동 같은 기예는 같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숙달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나은 방법은 자신의 동작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때문에 스승이 필요하고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스승이나 트레이너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신의 동작에 주의를 기울이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세분하여 한 단계씩 나아가는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은 동작을 무작정 반복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배움의 방법이다.
어떤 기술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여러 단계로 나눔으로써 우리는 현재 자신의 능력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또 이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세분화된 단순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시어도어 다이먼, 『배우는 법을 배우기』, 원성완 옮김, 민들레, 2018. 43쪽)
스승이나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지성을 활성화시켜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체의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기예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습관적 행동을 자각하고 이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과정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의 관계를 통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수련 과정은 몸을 움직여 배우는 기예가 아닌 지적 탐구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이민열, 미지북스, 2020)에서 저자는 지적 과업을 수행할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을 돌파하는 방법으로 ‘눈 감기, 공책 쓰기, 부건(副件)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사람과 과업에 따라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제안하는 세 가지 전략은 상당히 유용할뿐더러 보편적인 원리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를 “탐구의 습관화에 유용한 연장통”이라고 말한다.
‘눈 감기’는 눈을 통해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 차단함으로써 이해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책을 읽다 보면 관성의 힘에 의해 눈은 계속 다음 문장을 좇아서 읽어나가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또는 맥락 속에서 숙성시키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 쉽다. 눈(읽기)의 속도가 이해력의 속도를 추월하는 셈이다. 따라서 중요한 대목을 읽은 뒤에는 잠시 눈을 감고 다른 정보를 차단한 상태로 방금 읽은 내용을 음미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이는 학습에서 배움(학)과 익힘(습)의 과정에 약간의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예든 지적 탐구든 익힘(숙성) 과정이 중요하다.
‘공책 쓰기’에서 제안하는 전략은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스승이나 트레이너가 하는 역할을 스스로 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일의 시작을 자꾸만 미루게 될 때 공책에 이런 질문을 써본다. ‘내가 하려는 과업은 무엇인가’, ‘이 복합적인 과업을 어떻게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는가’, ‘세분화된 단순 과업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연결하면 좋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과업을 좀 더 쉽게 해낼 수 있게 된다. 과업의 ‘세분화’는 기예의 습득이든 지적 탐구든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부건 활용하기’는 주된 과업(主件)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하면 좋은 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부건(副件)을 한 가지 정해 주건과 부건을 오가면서 일하는 방식이다.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지루함과 난관을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건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본 과업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으로 할 수도 있다. 기예의 습득이든 지적 탐구든 모든 배움의 과정에는 난관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성패를 결정한다. 지적 탐구에도 습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습관 들이기
장기기억처럼 뇌의 수고를 덜 수 있는 또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습관은 판단하고 결심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데 드는 에너지를 절약해준다. 습관(習慣)은 뭔가를 하고 또 해서 관성의 힘이 작동하는 상태로, 시동을 거는 에너지를 절약해주고 관성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나눔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삶도 결국 좋은 습관이 만든다. 좋은 습관 한 가지를 들이면 다른 많은 것들이 거기에 연동되어 바뀐다. 배운(學) 것을 틈틈이 익히는(習) 것이 학습의 요체이듯,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습관 들이기는 뇌가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뇌가 몸의 통제 아래 놓이는 과정이다. 우리 몸은 습관에 매우 민감하다.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처럼 세 달 정도 뭔가를 꾸준히 하면 몸이 바뀐다. 두세 달이면 웬만한 육체노동에도 몸이 익숙해지듯이 두세 달만 몸을 쓰지 않으면 근육도 몸의 유연성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습관의 지배를 쉽게 받는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지만으로 잘 되지 않는다.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포털에 접속했을 때 습관적으로 뉴스를 클릭하며 옆길로 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런 습관적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볼 필요가 있다. ‘습관에는 습관으로 대응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응법이다.
운동이든 공부든 어떤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단기, 중기,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계획을 너무 구체적으로 세우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에 묶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날이 성장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 볼 수 없었던 시야를 갖게 된다. 장기계획은 어떤 목표나 방향 설정 정도로 충분하며, 중기계획으로는 시험 합격이나 승진처럼 외적 요인이 개입되는 것보다 자신이 노력하면 결과가 확실히 나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단기계획은 일주일 단위의 짧은 기간 동안 날마다 해야 할 일이다. 실현가능한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습관의 힘을 빌어 하루하루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목표한 지점에 가닿게 된다. 설령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은 지적 탐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습관뿐만 아니라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습관을 효과적으로 들일 수 있는 유용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책 전체가 ‘습관 들이기’에 도움 되는 연장통에 가깝지만, 마지막 장 ‘단순화의 기예’에서 강조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사는 데 삶의 단순화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칸트나 뉴턴, 다윈 같은 거인들의 인생을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때 그들이 이룬 눈부신 성취 때문에 매우 다채로운 인생을 보낸 것처럼 오해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는 것이다.7) 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내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해온 우치다 타츠루 선생 또한 평소 학교와 도장을 오가는 매우 단순한 생활을 수십 년 지속해왔음을 고백한다. 좋은 삶이야말로 지적 탐구에서도 기본 토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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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니얼 T·윌링햄,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문희경 옮김, 부키, 2011.
2) 단기기억은 정보가 유지되는 시간의 관점, 작업기억은 수행되는 과제의 목표 달성 관점에서 사용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3)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펴내는 웹진 《교육 제4의 길》에는 인지과학에 근거한 학습법에 대한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4) 젠틀윈드, 학습과 기억은 어떻게 다른가, 《민들레》 통권 6호.
_현병호(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