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 새해, 멀어진 것들과 가까워지기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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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사람들은 새로운 결심을 한다. 결심이란 ‘잔고 없는 은행에 수표를 끊는 일’(오스카 와일드)이라지만, 그래도 일 년 단위로 해가 바뀌는 덕분에 사람들은 지난해를 반추하고, 새해를 맞아 변화를 도모할 계기를 맞는다. 

목표지향적이지 못한 인간이지만 올해 야무진 계획을 몇 개 세웠다. 그중 하나는 ‘멀어진 것들과 다시 가까워지기’. 운동이나 어학 공부 등 필패가 예견되는 습관성 계획 말고 예전에 좋아했으나 잊고 살았던 것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교적 성공률 높은 계획 아닌가. 

그래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시를 암송하고 소설을 필사하며 문학을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으나, 책 만드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 문학과 멀어졌다. 출판 기획, 필자 섭외, 교육 현안 파악을 위해 읽어야 할 것들을 읽어내기도 벅차, 읽고 싶은 것들은 자꾸만 뒤로 밀렸다. 

 

멀어진 것, 그중에서도 문학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한 건 올해 청소년들과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간의 수업에서는 주로 논술을 다루었다. 스스로 기초학습이나 인지학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와, 나도 똑똑해졌네’ 하는 성취감을 주고 싶어서였다. 어렵지만 근사해 보이는 개념어와 논술용어를 익히면서 자신감을 높이고 비판적 사고와 메타인지력을 기르기에 논술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로도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논술보다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방식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생각을 키우는 수업을 시도해볼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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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수마라 씀,『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오윤주 옮김, 노르웨이숲, 2025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에서 캐나다 교육학자 데니스 수마라는 “문학은 시험 과목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새로 만들어 가게 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 부족과 좁은 대인 관계로 인해 매우 고정된 자아상을 갖는 것을 목격했다. 

 

“개인이 어떻게 정체성을 갖게 되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무언가를 학습하는가를 탐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국 인생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누군가’로 식별하고 식별될 수 있어야 한다.”_93쪽

 

나를 이해하려면 나에게 집중하기보다 세상을 이해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통해 ‘세상 속의 나’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소년들이 특정한 누군가를 식별하고, 누군가로 식별되는 과정을 연습하는 통로로 ‘소리 내어 함께 소설 읽기’를 택한다. 소설 속 많은 인물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깊이 해석해보는 경험이 청소년들의 고정된 자아상을 흔들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저자는 정보의 속도를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시대에 ‘초점 행위(Focal Practice)’로서의 문학 읽기를 강조한다. ‘초점 행위’란 정원사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정원을 돌보듯이 문학 작품을 찬찬히 읽고 자신의 경험과 삶을 깊이 통찰하는 태도를 말한다. “세부 사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해석과 창작 기술을 발전시키며, 주의 집중과 에너지, 흥미를 지속시키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전념할 때 발생하는 해석 행위”(213쪽)이다. 30초짜리 숏폼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경험이지만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아름다운 문장과 만나는 일은 개인의 의지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의도적으로 문학 읽기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다. 

또 하나 시도해보고 싶은 독서 방법이 있다. 저자는 문학 텍스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기르는 방법으로 ‘커먼플레이스 북(Commonplace Book)’을 소개한다. ‘커먼플레이스 북’은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옮겨 적고 나름의 감상을 덧붙이는 노트”인데,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면, 다른 사람들이 메모를 더해가면서 읽는 것이다. 노트를 매개로 관계 맺는 참여 방법이다. 한 권의 책이 함께 책을 읽은 이들의 해석을 위한 공통 공간(Commonplace)이 되고, 이 활동에 책과 독자, 독자와 독자처럼 여러 관계가 중첩되어 다양한 맥락과 형태의 해석이 발생한다. 학기가 끝난 후, 한 이야기 속에서 사람 수만큼 다양한 생각을 담아낸 책(노트)을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분명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다.


“문학을 읽는 일은 인생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8쪽)이라는 말처럼, 올해는 아이들이 문학 읽기를 통해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의외로 많은 청소년들이 여러 이유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심지어 미워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 그들이 자기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어쩌면 문학이 다정하게 말을 건넬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풍경을 잘 알면, 다른 풍경들도 모두 다르게 볼 수 있단다. 어떤 장소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다른 장소를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지.”(15쪽, 앤 마이클스의 소설 『흩어지는 조각들』 재인용)

 

_장희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