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이렇게 말한다. "유아가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고 바른 인성과 민주 시민의 기초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유아가 무슨 민주시민교육이냐"는 반응은 여전히 흔하다. 상급학교 교사나 관련 연구자들, 심지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시민교육을 논하면서 유아기가 빠져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영유아교육에 대한 인식 부재를 보여준다. 유보통합 과정에서 0세부터 '배움의 존재'로 규정했고, 초등 취학 전 영유아는 이미 교육부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영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적 철학과 비전은 여전히 빈자리로 남아 있다. 전 생애 교육의 연속성 속에서 영유아기는 늘 누락되어온 것이다.
그럼, 그간 말해온 '유아 민주시민의 기초란 정확히 무엇인가?' 사실 이 목표를 진지하게 해석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해설서와 현장 자료는 이 문장을 인용한 뒤, 실제 교육 내용은 '바른 인성', '사회성', '예절·협력·질서'와 같은 품성 교육으로 채워왔다. 그 결과,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권리, 참여, 공동결정, 갈등과 다원성, 공동선과 책임이라는 핵심 요소들은 인성교육 안에 흡수된 채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유아기 시민성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논의해본 적 없으며, 관련 연구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렇다면 유아기 민주시민의 기초를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첫째, 참여와 공동결정의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누가 정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정하느냐"의 문제다. 유아에게도 이 경험이 필요하다. 오늘 어떤 놀이를 할지, 교실 규칙을 어떻게 바꿀지, 프로젝트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갈등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을 택할지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보는 경험이 그것이다.
OECD는 시민교육 관련 연구를 정리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정치적 쟁점을 안전하게 토론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열린 교실 분위기, 그리고 학교 안에서 학생이 실제로 의견을 표현하고 참여할 기회를 갖는 경험이 시민적 지식과 태도 형성에 중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경험은 민주주의를 머리로만 배우는 것을 넘어, 토론·숙의·참여라는 기술을 연습하게 하며, 이후 정치적 신뢰와 시민참여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리한다.
유아기라고 다를 이유는 없다. 유아 수준의 의사결정이라도, 교실 규칙과 놀이, 활동을 함께 정하고 그 결정이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은, 민주주의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감각을 아이의 일상 속에 심는다.
둘째, 권리감과 자기효능감을 느껴보는 경험이다.
민주시민은 단순히 권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의견표명권과 참여권을 명시한다. 유아가 "이 규칙이 불편해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로 인해 규칙이 바뀌거나 논의가 열렸던 경험이 있다면, 그 아이는 "내 말은 세상을 조금 움직일 수 있다"는 시민적 자기효능감을 갖게 된다. 미국 털사(Tulsa) 프리 K 연구가 보여주듯, 이런 초기 경험은 훗날 실제 투표와 시민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다름, 갈등, 공존을 배우는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유아기 교실은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장난감, 놀이 규칙, 가족 구성, 언어, 문화, 발달 차이가 모두 다름을 만들어낸다.
이때 갈등을 서둘러 형식적인 사과로 정리해버리면, 아이는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배우기 쉽다. 누가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 없이 넘어갈수록, 갈등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갈등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 마음이 어땠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학습의 기회로 삼을 때, 아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술인 공존의 절차를 몸으로 익힌다. UNESCO의 세계시민교육(GCED)은 이러한 경험을 다양성, 인권, 관용, 사회적 결속을 기르는 핵심 역량으로 강조한다.
넷째, 공동체·환경 돌봄의 실천이다.
민주주의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계를 돌보는 생활 방식이다. 유네스코·유니세프 보고서는 유아기 환경, 기후 교육을 지속가능한 시민성(sustainable citizenship)으로 규정한다. 유아가 교실과 놀이터를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동네를 걸으며 지역사회를 알아가고, 환경 문제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고민해보는 경험은 "나는 공동체와 자연과 연결된 존재"라는 시민적 감각을 형성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교육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유아기는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첫 시기다. 유아기는 영아기에서 형성된 신뢰·상호성·정서 안정·공감 감각이 말과 몸짓, 놀이, 갈등, 공동결정, 책임의 형태로 구조화되는 시기다. 이때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라서 말하는 시민이 될 수도, 시킨 대로 하는 국민이 될 수도 있다.
질 높은 유아교육, 보육의 필요성은 실증 연구가 말해준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Tulsa)의 보편적 Pre-K(유치원) 프로그램을 추적한 연구는, 고품질의 무상 Pre-K에 참여한 아이들이 학업 준비도와 사회정서 역량이 높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선거 연령이 되었을 때 유권자 등록과 실제 투표 참여에서 통계적으로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이러한 연구는 인지적 기술과 사회정서 기술의 향상이 등록과 투표 참여 가능성을 높이는 경로로 연결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유아기와 청소년기의 시민참여 경험과 성인기의 정치참여·사회적 신뢰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초기의 교육 경험과 후기의 사회적결속·참여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논의는 교육이 단지 학업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영아기는? 영아기는 민주주의의 '감각'이 처음 싹트는 시기다. 0–2세 영아기에는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감, 상호성, 정서 안정, 기본적 공감, 공동체 감각이라는 전(前)정치적 감수성이 형성된다. UNESCO는 포용적 교육은 "가치와 태도가 형성되는 초기 영유아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감각을 토대로 유아기(3–5세)는 민주주의를 '살아보기' 시작하는 본격적 단계가 된다.
왜 영유아교육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1년 전, 비상계엄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멈추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훨씬 허약하면서도, 동시에 쉽게 꺼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질문이 또렷해졌다. “우리는 불의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그 답은 초중등 교육과정에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출발점은 유아교육에 있다. 민주시민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 살, 다섯 살 무렵부터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말해보고, 그 말이 무시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친구와 부딪쳤지만 관계를 다시 이어본 그 자리에서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유아 민주시민의 기초를 기르는 일은 교육의 부가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깊은 뿌리다."라는 말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순간, 민주주의의 다음 10년, 20년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교육의 방향도 분명하다. 이른바 5세·7세 고시를 준비하며 학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는 풍경이다. 이는 질 높은 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아이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시민이 아니라 순응과 성취에 길들여진 존재로 만드는 교육에 가깝다. 아이들이 비판적이고 유능한 사람으로 자라길 원한다면, 정답을 빨리 맞히는 훈련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참여하고, 질문하고, 함께 결정해보는 민주시민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정책의 관심이 사교육 실태 조사나 영어유치원 단속에만 머물러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또한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영유아가 시민성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질 높은 공교육·공보육 환경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교육의 방향이 이 질문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사교육 문제는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토양은 유아기의 일상 속에서 천천히 다져진다.
_박창현(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영유아교육 정책 전문가. 현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국가책임 교육 돌봄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보통합과 ECEC, 재개념화 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현실과 맞닿은 혁신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사의 원문은 <오마이뉴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9975&CMPT_CD=SEARCH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이렇게 말한다. "유아가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고 바른 인성과 민주 시민의 기초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유아가 무슨 민주시민교육이냐"는 반응은 여전히 흔하다. 상급학교 교사나 관련 연구자들, 심지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시민교육을 논하면서 유아기가 빠져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영유아교육에 대한 인식 부재를 보여준다. 유보통합 과정에서 0세부터 '배움의 존재'로 규정했고, 초등 취학 전 영유아는 이미 교육부 소관임에도 불구하고, 영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적 철학과 비전은 여전히 빈자리로 남아 있다. 전 생애 교육의 연속성 속에서 영유아기는 늘 누락되어온 것이다.
그럼, 그간 말해온 '유아 민주시민의 기초란 정확히 무엇인가?' 사실 이 목표를 진지하게 해석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해설서와 현장 자료는 이 문장을 인용한 뒤, 실제 교육 내용은 '바른 인성', '사회성', '예절·협력·질서'와 같은 품성 교육으로 채워왔다. 그 결과,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권리, 참여, 공동결정, 갈등과 다원성, 공동선과 책임이라는 핵심 요소들은 인성교육 안에 흡수된 채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유아기 시민성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논의해본 적 없으며, 관련 연구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렇다면 유아기 민주시민의 기초를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첫째, 참여와 공동결정의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누가 정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정하느냐"의 문제다. 유아에게도 이 경험이 필요하다. 오늘 어떤 놀이를 할지, 교실 규칙을 어떻게 바꿀지, 프로젝트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갈등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을 택할지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보는 경험이 그것이다.
OECD는 시민교육 관련 연구를 정리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정치적 쟁점을 안전하게 토론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열린 교실 분위기, 그리고 학교 안에서 학생이 실제로 의견을 표현하고 참여할 기회를 갖는 경험이 시민적 지식과 태도 형성에 중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경험은 민주주의를 머리로만 배우는 것을 넘어, 토론·숙의·참여라는 기술을 연습하게 하며, 이후 정치적 신뢰와 시민참여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리한다.
유아기라고 다를 이유는 없다. 유아 수준의 의사결정이라도, 교실 규칙과 놀이, 활동을 함께 정하고 그 결정이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은, 민주주의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감각을 아이의 일상 속에 심는다.
둘째, 권리감과 자기효능감을 느껴보는 경험이다.
민주시민은 단순히 권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의견표명권과 참여권을 명시한다. 유아가 "이 규칙이 불편해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로 인해 규칙이 바뀌거나 논의가 열렸던 경험이 있다면, 그 아이는 "내 말은 세상을 조금 움직일 수 있다"는 시민적 자기효능감을 갖게 된다. 미국 털사(Tulsa) 프리 K 연구가 보여주듯, 이런 초기 경험은 훗날 실제 투표와 시민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다름, 갈등, 공존을 배우는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유아기 교실은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장난감, 놀이 규칙, 가족 구성, 언어, 문화, 발달 차이가 모두 다름을 만들어낸다.
이때 갈등을 서둘러 형식적인 사과로 정리해버리면, 아이는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배우기 쉽다. 누가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 없이 넘어갈수록, 갈등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갈등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 마음이 어땠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학습의 기회로 삼을 때, 아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술인 공존의 절차를 몸으로 익힌다. UNESCO의 세계시민교육(GCED)은 이러한 경험을 다양성, 인권, 관용, 사회적 결속을 기르는 핵심 역량으로 강조한다.
넷째, 공동체·환경 돌봄의 실천이다.
민주주의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계를 돌보는 생활 방식이다. 유네스코·유니세프 보고서는 유아기 환경, 기후 교육을 지속가능한 시민성(sustainable citizenship)으로 규정한다. 유아가 교실과 놀이터를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동네를 걸으며 지역사회를 알아가고, 환경 문제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고민해보는 경험은 "나는 공동체와 자연과 연결된 존재"라는 시민적 감각을 형성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교육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유아기는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첫 시기다. 유아기는 영아기에서 형성된 신뢰·상호성·정서 안정·공감 감각이 말과 몸짓, 놀이, 갈등, 공동결정, 책임의 형태로 구조화되는 시기다. 이때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라서 말하는 시민이 될 수도, 시킨 대로 하는 국민이 될 수도 있다.
질 높은 유아교육, 보육의 필요성은 실증 연구가 말해준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Tulsa)의 보편적 Pre-K(유치원) 프로그램을 추적한 연구는, 고품질의 무상 Pre-K에 참여한 아이들이 학업 준비도와 사회정서 역량이 높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선거 연령이 되었을 때 유권자 등록과 실제 투표 참여에서 통계적으로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이러한 연구는 인지적 기술과 사회정서 기술의 향상이 등록과 투표 참여 가능성을 높이는 경로로 연결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유아기와 청소년기의 시민참여 경험과 성인기의 정치참여·사회적 신뢰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초기의 교육 경험과 후기의 사회적결속·참여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논의는 교육이 단지 학업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영아기는? 영아기는 민주주의의 '감각'이 처음 싹트는 시기다. 0–2세 영아기에는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감, 상호성, 정서 안정, 기본적 공감, 공동체 감각이라는 전(前)정치적 감수성이 형성된다. UNESCO는 포용적 교육은 "가치와 태도가 형성되는 초기 영유아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감각을 토대로 유아기(3–5세)는 민주주의를 '살아보기' 시작하는 본격적 단계가 된다.
왜 영유아교육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1년 전, 비상계엄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멈추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훨씬 허약하면서도, 동시에 쉽게 꺼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질문이 또렷해졌다. “우리는 불의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그 답은 초중등 교육과정에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출발점은 유아교육에 있다. 민주시민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 살, 다섯 살 무렵부터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말해보고, 그 말이 무시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친구와 부딪쳤지만 관계를 다시 이어본 그 자리에서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유아 민주시민의 기초를 기르는 일은 교육의 부가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깊은 뿌리다."라는 말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순간, 민주주의의 다음 10년, 20년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교육의 방향도 분명하다. 이른바 5세·7세 고시를 준비하며 학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는 풍경이다. 이는 질 높은 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아이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시민이 아니라 순응과 성취에 길들여진 존재로 만드는 교육에 가깝다. 아이들이 비판적이고 유능한 사람으로 자라길 원한다면, 정답을 빨리 맞히는 훈련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참여하고, 질문하고, 함께 결정해보는 민주시민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정책의 관심이 사교육 실태 조사나 영어유치원 단속에만 머물러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또한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영유아가 시민성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질 높은 공교육·공보육 환경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교육의 방향이 이 질문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사교육 문제는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토양은 유아기의 일상 속에서 천천히 다져진다.
_박창현(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영유아교육 정책 전문가. 현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국가책임 교육 돌봄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보통합과 ECEC, 재개념화 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현실과 맞닿은 혁신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사의 원문은 <오마이뉴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9975&CMPT_CD=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