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학교의 시작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대안학교 운동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나는 70년대부터 가장 급진적인 최초의 운동에 몸담아왔기에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 갈래는 주로 소규모 사립학교로 자유로운 선택, 경험을 통한 학습, 그리고 학생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매우 독창적인 교육 형태를 띠었다. 흔히 ‘자유학교free school’라 불린 이 학교들의 꿈은, 기존 공교육의 억압적인 ‘당근과 채찍’ 방식을 대신해서 보다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자유학교는 평등과 상생을 기반으로 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광범위한 사회 운동의 한 흐름이기도 했다.
모든 학교가 소규모 사립학교였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학부모와 교사의 주도로, 자유로운 학습과 민주적 운영을 지향하는 공립 대안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그중 일부는 최대 300명 규모까지 성장했지만, 정부는 기존 교육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이들을 강제 폐쇄했으며 많은 학교들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캐나다 토론토의 알파대안학교Alpha Alternative School는 정부의 폐쇄 조치에 끝없이 저항하며 53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토론토 교육청 소속의 공립학교로 운영되고 있으며, 초등 과정만 있던 알파학교는 2007년 학부모회와 교육청의 협의를 통해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중등학교인 ‘알파대안학교 II’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자유학교는 빠르게 늘어나 1970년대 중반에는 1천여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줄어들어 1980년대 중반에는 약 50곳만 남게 되었다. 10여 년 만의 급격한 감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1980년대 초 보수당의 정치적, 사회적 장악으로 볼 수 있다. 보수 세력은 대중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권력을 잡았다. 교육 문제에서도 그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며, 그 결과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에 뒤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해답은 교육 기준을 대폭 높이고 교육과정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표준화 시험을 늘렸으며, 시험 점수를 학생과 교사의 성과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학생의 성적이 충분히 오르지 않으면 교사는 해고 위협을 받았고, 성취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는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는 놀이 시간을 없애고 음악·미술 수업 시간을 줄였다. 교사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험을 위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학교, 위축되다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필자.
이러한 변화는 미국 학부모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많은 부모들이 창의성과 놀이를 중시하고 성적과 시험을 동기부여나 평가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를 꺼리게 되었다. 자유학교들은 신입생을 모집하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재정난으로 수백 곳의 학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몇몇 민간 재단이 자유학교에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보수 세력이 집권하자 그 지원마저 끊어졌다.
내가 40년 동안 활동했던 알바니자유학교Albany Free School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다. 학교 인근의 버려진 건물 10채를 매입해 직접 리모델링한 후, 그 임대 수익으로 학교 운영비를 충당한 것이다. 서울의 성미산학교처럼, 이러한 시도는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협동조합공동체 덕분에 가능했다.(필자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성미산마을에 머물면서 성미산학교를 둘러보았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교사로 자원봉사를 해주어서 운영비가 크게 절감되었고, 이들은 학비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금 활동에도 도움을 주었다.
1980년대 이후 문을 닫은 많은 자유학교들과 달리, 우리 학교는 65명의 학생 정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비의 문턱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 때문에 교사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기 어려웠다. 창립 멤버였던 교사들이 나이가 들어 떠난 뒤에는 새로 온 교사들이 2~3년 근무하다 그만두는 일이 많아졌고 경력직 교사진을 확보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007년, 내가 은퇴한 후에는 학교 교육의 질이 악화되고 학생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학교를 둘러싼 협동조합공동체 도 해체되었다. 학교는 점점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다 끝내는 임대하던 부동산 일부를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학교가 운영은 되고 있지만, 교사 두 명과 소수의 학생들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학교 운영진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기 때문에 학교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다른 자유학교들이 문을 닫은 데는 교육철학을 둘러싼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도 한몫했다. 초기에는 모두가 학생들에게 많은 자유와 자율성을 부여하자는 생각에 동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학부모와 교사들은 ‘구조나 통제가 부족하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학습량이나 학습 속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한 부모들은 학교에 점점 더 많은 규율과 체계적 시스템을 요구했다. 이런 의견 차이는 공동체를 분열시켰고 많은 가족들이 학교를 떠났다. 학교 재정이 약화되고 유지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한 대안학교 운동은 ‘자신의 성공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우이기도 했다. 공립학교들이 자유학교의 교육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중 일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학비가 없는 ‘진보적 공립학교’가 늘어났고, 사립 자유학교들은 학생 모집이 더욱 어려워졌다.
‘차터스쿨charter school’이라 불리는 진보적 공립학교들은 대안학교 운동의 공교육 부문을 형성했다. 최초의 차터스쿨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했는데,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이 학교들은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많은 규정에서 면제를 받았다. 차터스쿨의 핵심 목적은 새로운 교육 방식을 자유롭게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만약 그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것이 입증되면 전체 공교육 시스템에도 이를 적용하여 교육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차터스쿨의 궁극적인 취지였다. 초기의 차터스쿨은 매우 혁신적이었는데, 정부는 학교가 기존의 관행에서 너무 많이 벗어날 경우 재정 지원을 철회했다.
그 후 10년에 걸쳐 영리 기업들이 차터스쿨 설립에 뛰어들었다. 차터스쿨이 인기가 높고 정부 자금이 쉽게 지원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제2의 차터스쿨 물결로 이어졌고, 이들 학교의 대다수는 기존 공립학교에 불만이 많던 저소득층 지역에 세워졌다. 하지만 기업형 차터스쿨이 내세운 이른바 ‘혁신’은 수업시간 연장, 교복 착용, 남녀 분리와 같은 사소한 변화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차터스쿨이 기존 공립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빈곤층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미국에는 약 1만 개의 차터스쿨이 있고, 4백만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 운동의 이 갈래는 점차 진보적 뿌리로부터 멀어졌고, 공교육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초기의 약속도 실현하지 못했다.
홈스쿨링 운동의 흐름
대안교육 운동의 또 다른 중요한 갈래는 빠르게 성장한 홈스쿨링이다. 1970년대 초기에 등장한 홈스쿨링 가족들은 존 홀트John Holt의 영향을 받았다. 홀트는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자유와 그 너머Freedom and Beyond』 같은 저서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흥미를 따라가며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배우는 학교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홀트는 자유학교조차도 학습을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고 비판했다. 아이들을 가족과 일상 세계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홀트는 “진정한 배움은 현실 세계의 활동이라는 자연스러운 맥락 속, 가정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홈스쿨링 운동은 곧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홀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보수적 부모들이 집에서 공교육의 전통적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구분하기 위해 ‘홈스쿨링’ 대신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적 홈스쿨링 가정의 수가 언스쿨러들을 압도하게 되었다.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 부모들이 신앙적 가치를 직접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해 홈스쿨링을 선택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커졌다. 오늘날 미국에서 언스쿨링 방식을 따르는 가정은 약 10%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홈스쿨링 발전 사례 중 하나는 1990년대 이후 ‘홈스쿨자원센터homeschool resource centers’의 등장이다. 홈스쿨 가정을 위한 지역 기반 지원시설로,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교류하고 학습 활동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영리단체, 교회, 차터스쿨 등이 운영 주체로,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을 통합해 융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STEAM/AI 교육 중심형 센터, 온-오프라인 병행형 센터, 대학 연계형 홈스쿨 허브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2천년대 이후 확산된 차터스쿨이 홈스쿨링 가정에 ‘시간제 등록part-time enrollment’ 형태로 교육자원을 제공하면서 센터 수가 많아졌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홈스쿨러가 급증하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미국에는 약 400만 명의 홈스쿨러가 있으며, 이는 전체 학생의 약 10%에 해당한다.
홈스쿨링 운동의 주류인 보수적인 분파는 도널드 트럼프가 권력을 잡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선 이후 트럼프는 홈스쿨링 가정에 자녀 1인당 1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현재 공립학교를 감독하고 저소득층 아동 비율이 높은 학교에 추가 지원을 해온 교육부를 해체하는 중이다. 그 대신 종교계 학교나 기타 소규모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비용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공립학교가 잘못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반미적‘인 진보 이념을 주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는 가정에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너무 진보적이라고 판단되는 대학의 자금을 차단함으로써 공격하고 있다.
보수당의 진짜 동기는 위장되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트럼프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로 고학력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트럼프의 상대편 진영에 투표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역사를 통틀어 증명된 사실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이 모든 어린이를 위한 국가교육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한 국가가 무지하면서 자유롭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퍼슨은 학교를 아이들이 지혜를 얻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보았다. 이는 오늘날 보수당의 비전과는 정반대이다.
자유학교의 미래
한편 자유학교 계열 역시 계속해서 진화했다. 2000년대 초 보수 세력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과거의 교육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이 다시금 나타났다.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사립 대안학교를 새로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학교가 스스로 ‘자유학교’라 칭하지는 않았다. ‘자유freedom’라는 단어가 교육이나 아이들과 결합될 때 학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자기주도self-directed’ ‘체험 중심hands-on’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교육 방식을 설명했다. 학교 이름에도 ‘자유’ 등 낙인 효과를 낳는 이름이 아닌 지역명을 붙였다.
새로 생겨난 많은 학교들은 ‘자유’보다 ‘학교 운영 방식’에 철학적 초점을 맞추었다. 정기적으로 민주적인 회의를 열어 학생이 교사와 동등한 표를 가지고 학교의 일상적 사안과 규칙,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중요시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의 규칙을 만들고 바꾸는 과정에 참여하는 이 학교는 흔히 ‘민주학교democratic schools’로 불린다. 현재 대안학교자원기구 AEROAlternative Schools Resource Organization 웹사이트의 민주학교 리스트에는 미국 내 100여 개 학교가 등록되어 있으며, 다른 나라에 있는 학교도 수십 개 등록되어 있다.
미국의 대안학교 운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은 주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신념을 반영한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현실이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아직 사회 변혁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학교가 계속해서 존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그 수는 더욱 줄거나 정체될 것이다. 지금처럼 퇴행적인 정치·사회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면에 다양성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점점 줄어들면서 기독교 홈스쿨링과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나라에는 트럼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관용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회,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학교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_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미국 뉴욕주에 있는 알바니자유학교에서 40여 년간 아이들을 돌보다 지금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길들여지는 아이들』 『살아 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같은 책을 썼다.)
자유학교의 시작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대안학교 운동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나는 70년대부터 가장 급진적인 최초의 운동에 몸담아왔기에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 갈래는 주로 소규모 사립학교로 자유로운 선택, 경험을 통한 학습, 그리고 학생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매우 독창적인 교육 형태를 띠었다. 흔히 ‘자유학교free school’라 불린 이 학교들의 꿈은, 기존 공교육의 억압적인 ‘당근과 채찍’ 방식을 대신해서 보다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자유학교는 평등과 상생을 기반으로 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광범위한 사회 운동의 한 흐름이기도 했다.
모든 학교가 소규모 사립학교였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학부모와 교사의 주도로, 자유로운 학습과 민주적 운영을 지향하는 공립 대안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그중 일부는 최대 300명 규모까지 성장했지만, 정부는 기존 교육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이들을 강제 폐쇄했으며 많은 학교들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캐나다 토론토의 알파대안학교Alpha Alternative School는 정부의 폐쇄 조치에 끝없이 저항하며 53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토론토 교육청 소속의 공립학교로 운영되고 있으며, 초등 과정만 있던 알파학교는 2007년 학부모회와 교육청의 협의를 통해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중등학교인 ‘알파대안학교 II’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자유학교는 빠르게 늘어나 1970년대 중반에는 1천여 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줄어들어 1980년대 중반에는 약 50곳만 남게 되었다. 10여 년 만의 급격한 감소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1980년대 초 보수당의 정치적, 사회적 장악으로 볼 수 있다. 보수 세력은 대중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권력을 잡았다. 교육 문제에서도 그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며, 그 결과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에 뒤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제시한 해답은 교육 기준을 대폭 높이고 교육과정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표준화 시험을 늘렸으며, 시험 점수를 학생과 교사의 성과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학생의 성적이 충분히 오르지 않으면 교사는 해고 위협을 받았고, 성취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는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는 놀이 시간을 없애고 음악·미술 수업 시간을 줄였다. 교사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험을 위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학교, 위축되다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필자.
이러한 변화는 미국 학부모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많은 부모들이 창의성과 놀이를 중시하고 성적과 시험을 동기부여나 평가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를 꺼리게 되었다. 자유학교들은 신입생을 모집하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재정난으로 수백 곳의 학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몇몇 민간 재단이 자유학교에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보수 세력이 집권하자 그 지원마저 끊어졌다.
내가 40년 동안 활동했던 알바니자유학교Albany Free School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다. 학교 인근의 버려진 건물 10채를 매입해 직접 리모델링한 후, 그 임대 수익으로 학교 운영비를 충당한 것이다. 서울의 성미산학교처럼, 이러한 시도는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협동조합공동체 덕분에 가능했다.(필자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성미산마을에 머물면서 성미산학교를 둘러보았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교사로 자원봉사를 해주어서 운영비가 크게 절감되었고, 이들은 학비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금 활동에도 도움을 주었다.
1980년대 이후 문을 닫은 많은 자유학교들과 달리, 우리 학교는 65명의 학생 정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비의 문턱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 때문에 교사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기 어려웠다. 창립 멤버였던 교사들이 나이가 들어 떠난 뒤에는 새로 온 교사들이 2~3년 근무하다 그만두는 일이 많아졌고 경력직 교사진을 확보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007년, 내가 은퇴한 후에는 학교 교육의 질이 악화되고 학생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학교를 둘러싼 협동조합공동체 도 해체되었다. 학교는 점점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다 끝내는 임대하던 부동산 일부를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학교가 운영은 되고 있지만, 교사 두 명과 소수의 학생들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학교 운영진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기 때문에 학교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다른 자유학교들이 문을 닫은 데는 교육철학을 둘러싼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도 한몫했다. 초기에는 모두가 학생들에게 많은 자유와 자율성을 부여하자는 생각에 동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학부모와 교사들은 ‘구조나 통제가 부족하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학습량이나 학습 속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한 부모들은 학교에 점점 더 많은 규율과 체계적 시스템을 요구했다. 이런 의견 차이는 공동체를 분열시켰고 많은 가족들이 학교를 떠났다. 학교 재정이 약화되고 유지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한 대안학교 운동은 ‘자신의 성공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우이기도 했다. 공립학교들이 자유학교의 교육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중 일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학비가 없는 ‘진보적 공립학교’가 늘어났고, 사립 자유학교들은 학생 모집이 더욱 어려워졌다.
‘차터스쿨charter school’이라 불리는 진보적 공립학교들은 대안학교 운동의 공교육 부문을 형성했다. 최초의 차터스쿨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했는데,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이 학교들은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많은 규정에서 면제를 받았다. 차터스쿨의 핵심 목적은 새로운 교육 방식을 자유롭게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만약 그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것이 입증되면 전체 공교육 시스템에도 이를 적용하여 교육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차터스쿨의 궁극적인 취지였다. 초기의 차터스쿨은 매우 혁신적이었는데, 정부는 학교가 기존의 관행에서 너무 많이 벗어날 경우 재정 지원을 철회했다.
그 후 10년에 걸쳐 영리 기업들이 차터스쿨 설립에 뛰어들었다. 차터스쿨이 인기가 높고 정부 자금이 쉽게 지원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제2의 차터스쿨 물결로 이어졌고, 이들 학교의 대다수는 기존 공립학교에 불만이 많던 저소득층 지역에 세워졌다. 하지만 기업형 차터스쿨이 내세운 이른바 ‘혁신’은 수업시간 연장, 교복 착용, 남녀 분리와 같은 사소한 변화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차터스쿨이 기존 공립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빈곤층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미국에는 약 1만 개의 차터스쿨이 있고, 4백만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 운동의 이 갈래는 점차 진보적 뿌리로부터 멀어졌고, 공교육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초기의 약속도 실현하지 못했다.
홈스쿨링 운동의 흐름
대안교육 운동의 또 다른 중요한 갈래는 빠르게 성장한 홈스쿨링이다. 1970년대 초기에 등장한 홈스쿨링 가족들은 존 홀트John Holt의 영향을 받았다. 홀트는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자유와 그 너머Freedom and Beyond』 같은 저서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흥미를 따라가며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배우는 학교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홀트는 자유학교조차도 학습을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고 비판했다. 아이들을 가족과 일상 세계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홀트는 “진정한 배움은 현실 세계의 활동이라는 자연스러운 맥락 속, 가정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홈스쿨링 운동은 곧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홀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보수적 부모들이 집에서 공교육의 전통적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구분하기 위해 ‘홈스쿨링’ 대신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적 홈스쿨링 가정의 수가 언스쿨러들을 압도하게 되었다.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 부모들이 신앙적 가치를 직접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해 홈스쿨링을 선택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커졌다. 오늘날 미국에서 언스쿨링 방식을 따르는 가정은 약 10%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홈스쿨링 발전 사례 중 하나는 1990년대 이후 ‘홈스쿨자원센터homeschool resource centers’의 등장이다. 홈스쿨 가정을 위한 지역 기반 지원시설로,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교류하고 학습 활동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영리단체, 교회, 차터스쿨 등이 운영 주체로,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을 통합해 융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STEAM/AI 교육 중심형 센터, 온-오프라인 병행형 센터, 대학 연계형 홈스쿨 허브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2천년대 이후 확산된 차터스쿨이 홈스쿨링 가정에 ‘시간제 등록part-time enrollment’ 형태로 교육자원을 제공하면서 센터 수가 많아졌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홈스쿨러가 급증하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미국에는 약 400만 명의 홈스쿨러가 있으며, 이는 전체 학생의 약 10%에 해당한다.
홈스쿨링 운동의 주류인 보수적인 분파는 도널드 트럼프가 권력을 잡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선 이후 트럼프는 홈스쿨링 가정에 자녀 1인당 1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현재 공립학교를 감독하고 저소득층 아동 비율이 높은 학교에 추가 지원을 해온 교육부를 해체하는 중이다. 그 대신 종교계 학교나 기타 소규모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비용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공립학교가 잘못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반미적‘인 진보 이념을 주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는 가정에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너무 진보적이라고 판단되는 대학의 자금을 차단함으로써 공격하고 있다.
보수당의 진짜 동기는 위장되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트럼프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로 고학력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트럼프의 상대편 진영에 투표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역사를 통틀어 증명된 사실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이 모든 어린이를 위한 국가교육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한 국가가 무지하면서 자유롭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퍼슨은 학교를 아이들이 지혜를 얻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보았다. 이는 오늘날 보수당의 비전과는 정반대이다.
자유학교의 미래
한편 자유학교 계열 역시 계속해서 진화했다. 2000년대 초 보수 세력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과거의 교육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이 다시금 나타났다.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사립 대안학교를 새로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학교가 스스로 ‘자유학교’라 칭하지는 않았다. ‘자유freedom’라는 단어가 교육이나 아이들과 결합될 때 학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자기주도self-directed’ ‘체험 중심hands-on’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교육 방식을 설명했다. 학교 이름에도 ‘자유’ 등 낙인 효과를 낳는 이름이 아닌 지역명을 붙였다.
새로 생겨난 많은 학교들은 ‘자유’보다 ‘학교 운영 방식’에 철학적 초점을 맞추었다. 정기적으로 민주적인 회의를 열어 학생이 교사와 동등한 표를 가지고 학교의 일상적 사안과 규칙,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중요시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의 규칙을 만들고 바꾸는 과정에 참여하는 이 학교는 흔히 ‘민주학교democratic schools’로 불린다. 현재 대안학교자원기구 AEROAlternative Schools Resource Organization 웹사이트의 민주학교 리스트에는 미국 내 100여 개 학교가 등록되어 있으며, 다른 나라에 있는 학교도 수십 개 등록되어 있다.
미국의 대안학교 운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은 주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신념을 반영한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현실이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아직 사회 변혁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학교가 계속해서 존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그 수는 더욱 줄거나 정체될 것이다. 지금처럼 퇴행적인 정치·사회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면에 다양성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점점 줄어들면서 기독교 홈스쿨링과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나라에는 트럼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관용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회,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학교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_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미국 뉴욕주에 있는 알바니자유학교에서 40여 년간 아이들을 돌보다 지금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길들여지는 아이들』 『살아 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같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