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 정서행동위기 학생을 보듬는 신경다양성 교실

2026-03-06
조회수 342



22748e8ab9992.png


달라진 교실 풍경

 

최근 공교육 붕괴 문제를 두고 정서행동위기 학생이 이슈가 되었다. 교실에서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맞물리면서 교사들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이 처참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정서행동위기 학생들은 특수교육 대상 유형 중에 정서행동장애에 속하는 아이들이다. 정서행동장애는 외현화된 행동문제와 내현화된 행동문제로 나뉜다. 외현화된 행동문제에는 ADHD, 반항장애, 품행장애 등이 있고, 내현화된 행동문제에는 불안장애,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등이 있다. 대개 학급에서 지도하기 힘들다고 하는 아이들은 외현화된 행동문제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은 특수교육 대상 유형에 속하지만 대상 학생으로 선정되지는 못한다. 문제행동을 해도 대부분 지능이 정상 범위이거나 낮더라도 경계선에 속하는 71~84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한다. 장애로 등록되지 않는 한 거의 선정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선정 기준이 엄격한 이유는 특수교육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로 등록된 학생들만으로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니 정서행동위기 학생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으며, 담임교사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사각지대의 학생들과 장애학생들을 포함한 통합교육으로 신경다양성 교실을 시도하고 있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은 미국의 교육학자 토머스 암스트롱Thomas Armstrong에 의해 교육계에 확산된 개념으로, 인간의 뇌신경학적 차이를 장애나 결함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관점을 유지한다. 장애나 신경학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분류하지 않고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람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매우 혁신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 관점에서는 학생의 결핍과 무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강점과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환경을 구축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통합학급을 맡으며 다양한 신경다양성 학생들을 만나왔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지적장애, ADHD, 경계선 지능, 난독증, 선택적 함묵증, 불안장애 등을 지닌 학생들과 함께 신경다양성 교실 만들기를 하며 강점기반 전략을 적용한 수업을 꾸준히 해왔다.

13cbdd14cfb29.png

 

강점 기반 전략을 적용한 신경다양성 교실

 

우리 반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학생도 있고 ADHD 학생도 있다. 이 중에서 ADHD 학생인 솔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과잉행동, 주의력 결핍, 공격성, 충동성…. 나는 솔이를 처음 본 날부터 ADHD라는 걸 알았지만, 이제 막 1학년에서 올라온 시기였고 아직 어리니까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3~4개월이 지났지만 솔이의 과잉행동은 나아지지 않았고, 외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솔이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지원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긍정적 행동지원을 시작했다. 강력한 강점 기반 전략인 긍정적 행동지원은 학생이 선호하는 것과 강점, 특성 등을 파악해 그것을 선택지로 제공하고, 선행사건을 수정하여 문제행동이 유발되는 자극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한다. 그리고 적절한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대체행동을 가르친다. 환경을 바꾸어주고 강점을 활용하는 예방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긍정적 행동지원을 하기 위해 솔이의 강점을 찾아보았다. 솔이는 늘 친구들과 싸우지만 특별하게 악의를 가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충동성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잘못에 대한 인정이 빠르고 사과도 빠르게 했다. 하루종일 솔이를 챙겨야 하는 짝꿍 또한 솔이에게 짜증이 났다가도 솔이의 빠른 인정과 빠른 칭찬에 금세 마음이 풀렸다. 또한 솔이는 운동능력이 뛰어났다. 몸이 작은데 얼마나 잽싼지 꼭 다람쥐 같다. 체육 시간에 뛰어노는 것은 솔이가 제일 잘한다. 솔이의 강점을 알았으니 이제 긍정적 행동지원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솔이 어머니와 상담부터 했다. 솔이가 ADHD 증상을 보이니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솔이 어머니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이가 자신의 행동 때문에 계속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공존질환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행동치료를 꼭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만족지연을 연습하는 데 행동치료가 도움이 될 거라는 내 의견을 솔이 어머니는 잘 받아들여주었고 함께 솔이의 긍정적 행동지원을 해가기로 약속했다. 

 

솔이가 지킨 두 가지 약속

 

나는 먼저 솔이의 행동관찰 결과를 데이터화했다. 일주일 동안 솔이의 행동을 매시간 관찰해서 언제 주의가 흐트러져서 자리를 이탈하는지, 누가 솔이의 행동을 촉발하는지, 언제 친구들과 갈등이 시작되는지 등을 기록했다. 솔이의 충동적인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을 하는 친구 다람이와도 상담을 했다. 솔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런 반응이 교실 전체에 영향을 주니 수업 시간에 솔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 다람이가 솔이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으니 솔이의 쓸데없는 질문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솔이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솔이의 행동도 덩달아 좋아진 것이다. 

그다음엔 솔이와 함께 목표행동을 정했다. 목표행동이 너무 많으면 기억하기 힘들고 지키기도 어려울 테니, 딱 두 가지만 함께 정했다. 목표행동은 부정어가 아닌 구체적인 긍정어로 정했다. 첫째,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가 아니라 ‘수업 시간 40분 동안 앉아 있기’. 둘째, 친구와 싸우지 않기가 아니라 ‘화가 날 때 아이 메시지I-Message(자신을 주어)로 말하기’.

솔이는 이 두 가지 목표행동을 금방 외울 수 있었다. 솔이의 목표행동을 매일 아침과 오후에 점검하기로 했다. 아침에 “오늘 솔이가 지켜야 할 행동은 뭘까”라고 물어보면 솔이는 잊지 않고 두 가지를 대답했다. 선생님이 솔이를 언제나 도와줄테니까 잘 해보자고 아침마다 격려를 해주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그날 기록한 솔이의 행동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솔이와 목표행동을 정한 후 나는 수업 시간에 솔이를 큰 소리로 부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리를 이탈하는 솔이와 눈을 맞추고 ‘우리 약속’이라는 말만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러면 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평소 솔이는 과제를 제일 먼저 끝낸다. 글씨도 엉망진창에 몇 개씩 빠트리고 대충 빨리 해버린다. 다른 친구들은 한창 과제를 하고 있어서 과제를 빨리 끝낸 솔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 것이 뻔해 보였다. 

남은 시간 동안은 솔이가 할 수 있는 대체행동 몇 가지를 제한된 선택지 중에 선택하게 했다.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종이접기를 할까, 책을 읽을까?” 솔이는 종이접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친구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대체행동(미니북 만들기, 학습만화책 보기 등) 덕분에 솔이는 수업 시간 40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 대체행동들은 모두 솔이가 좋아하는 활동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행동인 ‘화가 날 때 아이 메시지로 말하기’는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꾸준히 지도했다. 화가 난다고 친구를 공격하면 내가 손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 나를 화나게 한 친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나도 똑같이 욕을 하거나 때리면 나 또한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온전한 사과를 받을 수 없고, 나의 가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절대로 참지 말고 대응하라고 했다. 다만, 나를 화나게 한 친구에게 단호하게 ‘아이 메시지’로 내 감정을 전하라고 했다. 

문장을 ‘나는’으로 시작하면 문장의 뒷부분도 내 감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나는 네가 이런 행동을 해서 너무 속상하고 슬퍼” 이런 식으로. 이런 화법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극하지 않으면서 나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갈등을 겪을 때마다 불러서 서로 아이 메시지를 주고받게 한다. 그러면 오해도 금방 풀리고 서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며 사과도 한다. 더불어 교사가 경찰이 될 필요도, 판사가 될 필요도 없어 아이들에게 원망을 살 일도 줄어든다. 

조금이라도 화가 나면 충동적으로 친구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던 솔이가 아이 메시지를 연습하기 시작한 어느 날, 씩씩거리면서 내게 왔다. 친구가 분명히 나를 쳤는데 안 쳤다고 우긴다면서. 솔이는 울먹이면서 “나는 네가 내 어깨를 쳐서 정말 기분이 나빠”라고 했다. 친구는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네가 아프고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다. 솔이는 처음으로 친구를 때리거나 공격하지 않고 그 순간을 참아냈으며, 아이 메시지로 자신을 지키고 친구에게 사과까지 받아냈다. 들쭉날쭉하지만 솔이는 분명히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솔이의 행동조절력이 좋아지자 반 분위기까지 덩달아 좋아졌다. 솔이로 인해 수업이 끊기지 않으니 아이들도 나도 수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서위기행동 학생을 돕는 현실적인 방안

 

다행히도 솔이와의 ‘신경다양성 교실 만들기’가 성공해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담임교사의 이런 노력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아이가 학급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교실붕괴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정서행동위기 학생에 대한 정책이나 지원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니 특수교육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오로지 담임교사의 책임으로 떠맡겨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신경아의 『좌충우돌 미국의 통합교육 이야기』라는 책에는 미국에서 정서행동위기 학생을 대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미국은 단위학교에 상주하는 특수교사와 특수교육 지원 인력이 우리보다 10배나 많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누구나 바로 지원받을 수 있다. 각 학교에는 심리검사 교사와 행동수정 전문가가 있어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의 학급에 직접 들어가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중재계획도 세우며 담임교사와 함께한다. 학부모 상담도 담임교사가 아닌 행동수정 전문가가 한다. 지원체제가 너무나 잘되어 있어 참 부러웠다.

최근 교육청에서도 행동중재 전문가를 대폭 늘려 정서행동위기 학생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이 과연 언제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교육예산 삭감으로 교사 수를 점점 줄이는 마당에 과연 이런 전문가들이 학교마다 배치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와 선생님들은 누구에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우선은 각 학교의 선임교사들이 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교장, 교감과 수석교사(또는 고경력 교사)가 우선적으로 정서행동위기 학생들을 맡아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특수교육을 공부한 교사들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경력이 높은 교사들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관련한 연수를 받으면 이 학생들을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다. 수석교사와 교장・교감 선생님이 한 팀으로 이 학생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생활지도와 학습지도를 하며 적응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학부모 상담도 함께 해나간다면 우리도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과 비슷한 체제를 만들 수 있다. 

학교마다 이런 체제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면서 동시에 특수교육 인력을 조금씩 더 확보해간다면 교사 혼자서 힘든 학생을 감당하느라 소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교육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교실의 정서행동위기 학생들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고, 이 아이들을 위한 지원체계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격월간《민들레》통권 150호에 실렸던 글의 일부입니다. 

_김명희(초등교사로 일하며 『신경다양성 교실』『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공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