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하자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 학교에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관련 과목이 개설되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금 배우는 건 대학입시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잖아요.” 직업탐색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강사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그걸 하면 얼마나 벌어요?”다. 결국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수요가 몰린다.
학창 시절 내내 ‘수능 대박’을 꿈꾸고,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이 익숙한 세대에게 맞춤형 교육은 결국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교과일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한 방’이 예전에는 명문대 입학을 보장하는 수능 점수였다가 이제는 학종 때문에 셈법이 복잡해졌을 뿐 ‘한 방’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 의사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은 코인과 주식으로 한 방을 꿈꾼다. ‘원샷 소사이어티’ 교육의 민낯이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학생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별화 교육을 하겠다는 맞춤형 교육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던 표준화 교육 또는 획일화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맞춤형 교육은 다양성을 예찬하는 개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교육론이다. 이는 진보교육의 바탕인 ‘아동 중심’ 교육과도 맥이 닿는다. 5.31 교육개혁이 내세운 ‘수요자 중심’ 논리도 그 변주에 속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학교’를 목표로 제시한 미국의 공립 대안학교 메트스쿨의 교육 방식은 한국의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 아이들의 흥미를 무시하는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욕구를 되찾아 학습과 진로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제도교육 외곽에서 시도되던 학생 중심 교육이 제도권 안으로 파고든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개인의 필요나 욕구에 교육을 맞춘다는 맞춤형 교육에서 ‘학생에게 맞춘다’는 말은 사실 두루뭉실한 말이다. 학생의 흥미나 적성에 맞춘다는 말인지, 성적 또는 진로 희망에 맞춘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 모두를 뜻하는 건지 애매모호하다. 여하튼 그 말 속에는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고교학점제는 그 취지에 부합하는 제도다. 이는 언뜻 학생을 위하는 바람직한 교육으로 비치지만 학생 개인에게도 공동체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맞춤형 교육은 학생이 배우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배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배움이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배우기 시작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성장이 일어난다. 배움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쇼핑과 달리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배움을 활성화할 거라는 가정은 배움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가르치는 일이 배움을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먹기 싫어 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대부분 고기 반찬만 찾지만,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마련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질 좋은 다양한 메뉴를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선택권을 늘이는 것은 격차를 늘이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늘이는 것은 리스크를 높인다.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정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할 역사관의 토대가 약화된다. 근현대사를 소홀히 하는 것도 교육적 고민 없이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약은 계산의 결과다. 학교가 역사 교육에서 한 발을 빼면서 요즘 십대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편향된 메시지를 접하고, 거기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진짜 역사’를 배운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합의 과정 없이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는 힘들다.
교육은 개인의 성취를 돕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공교육은 더욱이 그러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토대를 닦는 것이 공교육이다. 선택보다 필수나 공통이 더 중요한 이유다. 다양성이나 개별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토대를 다진 다음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바닷가의 모래성은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바닷물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_현병호(발행인)
배우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하자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 학교에 비트코인이나 주식 투자 관련 과목이 개설되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금 배우는 건 대학입시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잖아요.” 직업탐색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강사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그걸 하면 얼마나 벌어요?”다. 결국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수요가 몰린다.
학창 시절 내내 ‘수능 대박’을 꿈꾸고,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이 익숙한 세대에게 맞춤형 교육은 결국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교과일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한 방’이 예전에는 명문대 입학을 보장하는 수능 점수였다가 이제는 학종 때문에 셈법이 복잡해졌을 뿐 ‘한 방’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 의사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은 코인과 주식으로 한 방을 꿈꾼다. ‘원샷 소사이어티’ 교육의 민낯이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학생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별화 교육을 하겠다는 맞춤형 교육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던 표준화 교육 또는 획일화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맞춤형 교육은 다양성을 예찬하는 개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교육론이다. 이는 진보교육의 바탕인 ‘아동 중심’ 교육과도 맥이 닿는다. 5.31 교육개혁이 내세운 ‘수요자 중심’ 논리도 그 변주에 속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학교’를 목표로 제시한 미국의 공립 대안학교 메트스쿨의 교육 방식은 한국의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 아이들의 흥미를 무시하는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욕구를 되찾아 학습과 진로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제도교육 외곽에서 시도되던 학생 중심 교육이 제도권 안으로 파고든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개인의 필요나 욕구에 교육을 맞춘다는 맞춤형 교육에서 ‘학생에게 맞춘다’는 말은 사실 두루뭉실한 말이다. 학생의 흥미나 적성에 맞춘다는 말인지, 성적 또는 진로 희망에 맞춘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 모두를 뜻하는 건지 애매모호하다. 여하튼 그 말 속에는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고교학점제는 그 취지에 부합하는 제도다. 이는 언뜻 학생을 위하는 바람직한 교육으로 비치지만 학생 개인에게도 공동체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맞춤형 교육은 학생이 배우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배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배움이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배우기 시작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성장이 일어난다. 배움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쇼핑과 달리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배움을 활성화할 거라는 가정은 배움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가르치는 일이 배움을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먹기 싫어 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대부분 고기 반찬만 찾지만,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마련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질 좋은 다양한 메뉴를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선택권을 늘이는 것은 격차를 늘이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개인의 선택권을 늘이는 것은 리스크를 높인다.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정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할 역사관의 토대가 약화된다. 근현대사를 소홀히 하는 것도 교육적 고민 없이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약은 계산의 결과다. 학교가 역사 교육에서 한 발을 빼면서 요즘 십대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편향된 메시지를 접하고, 거기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진짜 역사’를 배운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합의 과정 없이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는 힘들다.
교육은 개인의 성취를 돕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공교육은 더욱이 그러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토대를 닦는 것이 공교육이다. 선택보다 필수나 공통이 더 중요한 이유다. 다양성이나 개별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토대를 다진 다음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바닷가의 모래성은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바닷물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_현병호(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