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 아이들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다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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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국제교류전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전시관 입구.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전쟁 속 어린이들의 삶

 

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에 누구는 금융시장의 변동을 걱정하고, 누구는 국제유가를 떠올린다. 저마다의 관심과 처지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이란의 한 여자초등학교가 폭격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에, 이태 전 봤던 전시가 떠올랐다. 

2024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보스니아 전쟁 시기, 1425일 동안의 사라예보 포위전 속에서 살아간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전시를 두 번이나 찾았던 건, 전쟁 속에서도 이어졌던 어린이들의 일상이 너무 강렬해서다. 포격을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실에서 가지고 놀던 인형, 전기가 끊긴 밤에 숙제를 하던 공책, 총탄에 구멍 난 모자, 아버지가 몰래 숨겨 두었다가 하나씩 나눠 주던 막대사탕 같은 것들.... 

이 전시는 유년기에 겪은 전쟁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박물관(War Childhood Museum)’과의 교류로 기획되었다. 야스민코 할릴로비치 관장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이런 비극이 또 다른 아이들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인류는 전쟁도, 어린이의 희생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유니세프와 유엔은 2005년부터 2022년까지 분쟁 상황에서 확인된 ‘중대한 아동권 침해’가 최소 31만 건 이상이라고 집계한다. 그 가운데 12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입었다. 하루 평균 거의 20명의 어린이가 전장 주변에서 희생된 셈이다.

아이들이 군인이나 무장단체에 동원되고, 학교와 병원이 공격받으며, 구호 접근조차 차단되는 사례도 수만 건에 이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적으로 4억 명이 넘는 어린이가 분쟁의 영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라는 조사도 있다. 전쟁의 무기와 기술은 변했지만, 가장 약한 존재가 희생된다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세상에 남긴 것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되던 시각에 이란의 한 여자초등학교 위로 미사일이 떨어졌다. 토요일 오전 수업 중이던 아이들과 교사 등 170여 명이 숨지고, 90명 안팎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부모들은 맨손으로 콘크리트 잔해를 파헤치며 아이를 찾았고, 피투성이가 된 가방과 옷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미국은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학교 자리가 10여 년 전에는 해군기지였다는 보도와 함께 오폭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어떤 이유든 이 결과는 용인될 수 없다. 친구와 손잡고 학교에 들어섰던 아이들, 쉬는 시간에 친구와 소근거리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뉴스를 보며 이태 전의 전시가 떠오른 것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 애썼던 사라예보 아이들과 달리 이들은 두려워할 틈도, 버틸 기회도 없이 생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떠난 아이들이 세상에 남긴 것은 불에 탄 공책과 끝내 기록되지 못한 비명뿐이다. 

이 사건은 ‘오폭’이나 ‘정당방위’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이들을 지켜야 할 책임은 결국 ‘전쟁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와 교실이 폭격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전쟁은 이미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넘어선다. 군사적 계산이나 전략적 판단이 무엇이었든, 수업을 듣던 어린이들이 집단적으로 목숨을 잃은 현실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도 그 책임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작되지 못한 미래

 

모든 인간의 생명은 똑같이 존엄하다. 그럼에도 어린이의 생명이 특히 더 두텁게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는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이며, 아이들은 그 결정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떠안는다. 전쟁이 ‘필요한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이조차, 그 필요를 위해 학교와 놀이터의 생명을 맞바꾸는 데 동의하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의 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미래다. 한 아이의 죽음은 한 인간의 현재만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수많은 관계와 기억, 가능성을 모조리 지워 버린다. 유년기에 깊게 새겨진 공포와 상실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기고, 다음 세대의 사회와 민주주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린이는 누구보다 일상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전쟁 속에서도 숙제를 하고, 친구와 장난을 치고, 생일을 기다린다. 그 존재의 일상을 파괴하는 전쟁은 정치적 이익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손실을 남긴다. 자국의 아이들이든 국경 너머의 아이들이든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란 공격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어린이들의 죽음을 규탄하며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한국에서도 여러 교육단체와 연구기관에서 긴급 성명을 냈다. 전교조는 “학교는 전쟁 속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평화의 성역”이라며 이란 공격 중단과 국제사회 조치를 촉구했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 앞에 무고한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지 않도록 더 많은 어른들의 목소리가 모여야 한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사라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_장희숙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