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추적 60분> ‘비인가 국제학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화면 캡처 자료
국제학교라는 이름의 학원
최근 몇 년 사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국제학교’라는 이름의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영어유치원이 유치원을 가장한 학원이듯 학교 이름을 내건 학원들이다. 대형 마트 또는 상가 빌딩에 자리한 이런 학원으로 수백 명의 아이들이 매일 아침 ‘등교’를 한다. 상당수 학부모는 국제학교라는 이름에 속아 학원인 줄도 모르고 아이를 보낸다. 그것도 한해 수천만 원씩을 내면서.
KBS <추적 60분>이 지난 3월 27일 방영한 ‘비인가 국제학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보도에 따르면 이런 비인가 국제학교 수가 최소 125군데를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1) 수도권에 84%가 몰려 있는데, 최근 신분당선 전철역 주변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전북 담양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국제학교를 유치해 지역 홍보에 활용하기도 한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것으로 볼 때, 초등 저학년 과정은 사실상 영어유치원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부모들은 따로 어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영어 하나는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이곳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공립학교를 선택하기엔 영어유치원 다닌 게 아깝다면서.
이 학원들은 국내에서도 ‘미국 명문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데, 한 학원의 원어민 교사는 영어강사 자격으로 비자 발급을 받았음에도 수학, 과학, 사회 과목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학원 관계자는 역사 과목은 미국 역사를 가르친다고 (자랑스러운 듯) 말한다. 이른바 ‘미국 명문 교육’의 실상이다. 몇 곳의 국제학교에서 근무했다는 한 교사는 학교가 교육보다 대학 잘 보내기 위한 성적 처리에 더 신경을 쓰면서 A학점을 되도록 많이 주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 학교 졸업장도 같이 준다고 홍보하는 한 학원이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현지 학교를 KBS 기자가 취재한 결과 학교는 일 년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고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사실상 사기를 친 것이다. 뒤늦게 부실한 운영 실태를 알고서 일반학교로 전학을 하려 해도 법적으로 전학이 안 되어 낭패를 보는 이들도 생겨난다.
“교육을 학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학원에서 국제학교로 변신한 한 학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25년 전에 《민들레》에서 했던 말을 이렇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돈 벌기 쉬운 구조예요. (학생이) 100명이면 일인당 3천만 원씩만 받아도 30억인데, 설립하기가 굉장히 쉽게 되어 있으니까 안 할 이유가 있나요.”
학원비는 다달이 받지만 등록금은 학기 단위로 받으니 아이들을 붙들어 두기도 수월하다. 학비가 연간 3천만 원이 넘는데도 학부모들이 몰리니, 장사 안 되는 어학원을 접고 국제학교 간판을 내거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5백만 원 벌금 처분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한 해 3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장사를 자진해서 접을 장사꾼이 있을까.
짝퉁 국제학교가 등장한 배경
「초중등교육법」제67조는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해 학교 형태로 운영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상 많은 대안학교들이 별 제재를 받지 않고 학교를 운영해왔다. 되는 장사에는 사기꾼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대안학교들이 법적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장사꾼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3)
민의 자율성을 살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민’을 구성하는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민간에는 ‘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도 있다. 시장은 이윤을 추구한다. 사회의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주체가 시장이다. 시민이 변화를 만들어내면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시장이 좌판을 벌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말처럼, 민주적인 교육을 추구한 시민(부모와 교사)들이 힘들게 만들어낸 대안교육의 흐름을 타고 장사꾼들이 벌인 좌판이 비인가 국제학교들인 셈이다.
좌판을 벌여도 괜찮은 물건을 팔면 다행인데 교육시장이란 좌판은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사기꾼들이 끼어들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럴듯한 이름과 화려한 홍보 책자에 속아 잘 알아보지도 않고서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한 해 학비가 3천만 원이 넘는데도 어떤 학교에서는 일반학교 급식만도 못한 급식이 제공되어 하교 때면 아이들이 배고파 한다. 어쩌다 이렇게 무턱대고 시장을 좇게 되었을까.
유명 연예인들 자녀가 다닌다는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비인가 국제학교’이다. 일종의 짝퉁 국제학교인 셈이다. 사기를 당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욕심이 앞선다는 점이다. 영어유치원을 보낸 것이 아까워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이들은 앞서 투자한 돈이 아까워 계속 밑빠진 독에 투자하는 격이다. 자기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공립학교 대신 국제학교를 선택하겠지만 그 '좋은' 것이 아이에게 과연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과 앞서고 싶은 욕심이 사교육 시장에 자금을 쏟아붓게 만든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사다리가 사라져가면서 사교육 열풍이 더 거세지고 있다. 영어유치원, 4세고시 같은 기형적인 조기교육이 횡행하는 배경이다. 여기에 '비인가 국제학교'라는 신상품이 추가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신상은 짝퉁이지만, 짝퉁 국제학교든 진품 국제학교든 신분 상승 또는 신분 굳히기 욕심이 빚어내는 교육 상품인 점은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신분 사회로 변해가는 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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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재팀이 확인한 비인가 국제학교 125개 중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교는 8곳이며 76개는 학원, 나머지는 선교단체나 협동조합,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인가형 국제학교는 전국에 7개뿐이다.
2) 지금까지 「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대안학교 사례는 없다. 비인가 국제학교의 경우 5백만 원 벌금형에 처해진 사례가 있지만 그 정도의 제재로는 눈도 깜작하지 않는 실정이다.
_현병호(발행인)
KBS <추적 60분> ‘비인가 국제학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화면 캡처 자료
국제학교라는 이름의 학원
최근 몇 년 사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국제학교’라는 이름의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영어유치원이 유치원을 가장한 학원이듯 학교 이름을 내건 학원들이다. 대형 마트 또는 상가 빌딩에 자리한 이런 학원으로 수백 명의 아이들이 매일 아침 ‘등교’를 한다. 상당수 학부모는 국제학교라는 이름에 속아 학원인 줄도 모르고 아이를 보낸다. 그것도 한해 수천만 원씩을 내면서.
KBS <추적 60분>이 지난 3월 27일 방영한 ‘비인가 국제학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보도에 따르면 이런 비인가 국제학교 수가 최소 125군데를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1) 수도권에 84%가 몰려 있는데, 최근 신분당선 전철역 주변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전북 담양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국제학교를 유치해 지역 홍보에 활용하기도 한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것으로 볼 때, 초등 저학년 과정은 사실상 영어유치원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부모들은 따로 어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영어 하나는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이곳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공립학교를 선택하기엔 영어유치원 다닌 게 아깝다면서.
이 학원들은 국내에서도 ‘미국 명문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데, 한 학원의 원어민 교사는 영어강사 자격으로 비자 발급을 받았음에도 수학, 과학, 사회 과목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학원 관계자는 역사 과목은 미국 역사를 가르친다고 (자랑스러운 듯) 말한다. 이른바 ‘미국 명문 교육’의 실상이다. 몇 곳의 국제학교에서 근무했다는 한 교사는 학교가 교육보다 대학 잘 보내기 위한 성적 처리에 더 신경을 쓰면서 A학점을 되도록 많이 주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 학교 졸업장도 같이 준다고 홍보하는 한 학원이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현지 학교를 KBS 기자가 취재한 결과 학교는 일 년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고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사실상 사기를 친 것이다. 뒤늦게 부실한 운영 실태를 알고서 일반학교로 전학을 하려 해도 법적으로 전학이 안 되어 낭패를 보는 이들도 생겨난다.
“교육을 학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학원에서 국제학교로 변신한 한 학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25년 전에 《민들레》에서 했던 말을 이렇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돈 벌기 쉬운 구조예요. (학생이) 100명이면 일인당 3천만 원씩만 받아도 30억인데, 설립하기가 굉장히 쉽게 되어 있으니까 안 할 이유가 있나요.”
학원비는 다달이 받지만 등록금은 학기 단위로 받으니 아이들을 붙들어 두기도 수월하다. 학비가 연간 3천만 원이 넘는데도 학부모들이 몰리니, 장사 안 되는 어학원을 접고 국제학교 간판을 내거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5백만 원 벌금 처분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한 해 3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장사를 자진해서 접을 장사꾼이 있을까.
짝퉁 국제학교가 등장한 배경
「초중등교육법」제67조는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해 학교 형태로 운영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상 많은 대안학교들이 별 제재를 받지 않고 학교를 운영해왔다. 되는 장사에는 사기꾼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대안학교들이 법적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장사꾼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3)
민의 자율성을 살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민’을 구성하는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민간에는 ‘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도 있다. 시장은 이윤을 추구한다. 사회의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주체가 시장이다. 시민이 변화를 만들어내면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시장이 좌판을 벌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말처럼, 민주적인 교육을 추구한 시민(부모와 교사)들이 힘들게 만들어낸 대안교육의 흐름을 타고 장사꾼들이 벌인 좌판이 비인가 국제학교들인 셈이다.
좌판을 벌여도 괜찮은 물건을 팔면 다행인데 교육시장이란 좌판은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사기꾼들이 끼어들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럴듯한 이름과 화려한 홍보 책자에 속아 잘 알아보지도 않고서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한 해 학비가 3천만 원이 넘는데도 어떤 학교에서는 일반학교 급식만도 못한 급식이 제공되어 하교 때면 아이들이 배고파 한다. 어쩌다 이렇게 무턱대고 시장을 좇게 되었을까.
유명 연예인들 자녀가 다닌다는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비인가 국제학교’이다. 일종의 짝퉁 국제학교인 셈이다. 사기를 당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욕심이 앞선다는 점이다. 영어유치원을 보낸 것이 아까워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이들은 앞서 투자한 돈이 아까워 계속 밑빠진 독에 투자하는 격이다. 자기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공립학교 대신 국제학교를 선택하겠지만 그 '좋은' 것이 아이에게 과연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과 앞서고 싶은 욕심이 사교육 시장에 자금을 쏟아붓게 만든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사다리가 사라져가면서 사교육 열풍이 더 거세지고 있다. 영어유치원, 4세고시 같은 기형적인 조기교육이 횡행하는 배경이다. 여기에 '비인가 국제학교'라는 신상품이 추가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신상은 짝퉁이지만, 짝퉁 국제학교든 진품 국제학교든 신분 상승 또는 신분 굳히기 욕심이 빚어내는 교육 상품인 점은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신분 사회로 변해가는 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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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재팀이 확인한 비인가 국제학교 125개 중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교는 8곳이며 76개는 학원, 나머지는 선교단체나 협동조합,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인가형 국제학교는 전국에 7개뿐이다.
2) 지금까지 「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대안학교 사례는 없다. 비인가 국제학교의 경우 5백만 원 벌금형에 처해진 사례가 있지만 그 정도의 제재로는 눈도 깜작하지 않는 실정이다.
_현병호(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