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3] 대치동 캠핑카와 4세 고시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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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왕국의 풍경

 사교육 왕국 대한민국에는 종종 기이한 풍경이 벌어진다. 방학 시즌이면 대치동 학원가에 등장하는 캠핑카 행렬도 그중 하나다. 도로변에 불법주차된 캠핑카는 학생이 여러 학원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다가 잠시 들러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 쓰인다.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과 부모들이 비싼 월셋방 대신 숙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거리가 멀 것 같은 단어들의 조합, ‘초등+의대반’이나 ‘4세+고시’ 같은 신조어들도 기이한 풍경의 단면을 드러낸다. 입시 준비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 현실은 지난해 교육부가 처음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6세 미만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8%에 가까웠다. 특히 5세 아동은 81%를 넘었다. 사교육 가운데 가장 비용이 높은 것은 영어로, 흔히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비용은 155만 원에 달했다. 

 

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

 교육부는 4월 1일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만 3세 미만의 유아에게 학원의 지식 주입형 교습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만 3세 이상의 학습 시간도 하루 3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도 지난 3월 12일, 유아 대상 학원의 선발 시험이나 레벨 테스트를 제한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이 시행되면 4세 고시, 7세 고시로 불리던 평가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실효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시험이 금지되더라도 우회적인 방식의 선발과 평가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들이 수준별 학습을 요구하는 한, 시장은 그 수요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금지하는 ‘지식 주입형 교습 행위’도 놀이나 창의수업 등의 탈을 쓰고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가 제시한 대응 방안은 사교육 수요를 낮출 수 있게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교육부는 전문가들과 협력해 영유아 발달에 관한 과학적 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배포하고 교육·보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보호자 교육자료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영유아 사교육 문제는 단순 규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모들이 조기 사교육에 몰리는 이유에서 근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대치동 캠핑카-초등 의대반-7세 고시-4세 고시’는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 그중 ‘영어유치원’ 입학은 ‘빅3 초등 영어학원→국제중→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입시 경로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제로섬 게임 같은 사회에서 우리 애만 뒤처질 순 없다, 또는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은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긴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 손을 잡고 4세 고시에 뛰어드는 부모들을 질타하고 학원을 규제하기 전에, 이런 현상을 빚어내는 사회 구조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아이들 정서를 해치는 교육

이른 나이에 학습 시장을 향하는 부모들의 선택은 그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는 선의에 기반한다. 그 선택이 어린이 발달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그 부작용을 감수하며 일찍 학업을 성취하는 것이 결과적으론 아이에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어린 시기에 경험한 과도한 스트레스는 이후 성장기에도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자퇴한 한 청소년이 말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일주일에 영단어 300개씩 외울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고. 대치동에서 자란 20대 청년의 증언도 있다. 100% 적중률을 자랑하는 내신 대비 학원의 비결은 어마어마한 양의 기출문제를 모아 학생들에게 떠안기는 것이었고, 시험지를 모조리 외우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쓰러지고 토하면서까지 문제를 외워도 시험을 망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돌아왔다. ‘다 떠먹여줬는데 내가 부족해서야.’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던 그는 결국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1)

이른 시기부터 주어지는 팽팽한 긴장을 감당하지 못해 마음이 병드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특히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진료를 받은 10세 미만 아동 환자는 2020년 991명에서 2024년 2,162명으로 118% 이상 폭증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급격한 증가율이다. 그 원인이 오직 ‘학습’ 때문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일찌기 주어지는 성취의 부담이 아이들 정서를 해치는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돌덩이를 얹어 짓누르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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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들레》 156호, 소마, ‘대치동 키즈가 어른이 되어’


_장희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