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배움의 긴장 관계
교육(敎育), 가르치고 기른다는 이 말은 어쩐지 일방통행 표지판 같다. 국민교육헌장으로 상징되는 국가주도의 교육 과잉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육보다 배움을 강조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배움의 도』, 길을 가리키는 오래된 손가락 가운데 하나인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어쓴 책이다. “배움은 작은 생선을 조리는 것과 같다. 젓가락질을 너무 많이 하면 요리를 망치고 만다.”(『배움의 도』 60장 가운데) 아포리즘 같은 짤막한 글귀들이 함축하고 있는 깊은 의미가 많은 이들에게 가닿았다.
『배움의 도』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꽤 오래되었다. 90년대 후반 참된 교육의 길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 불온 유인물처럼 떠돌던 복사물이 있었다. 복사집에서 제본한 허름한 책자에는 옮긴이 이름도 정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활자로 인쇄된 책자도 아니었다. 옮긴이의 육필 그대로 복사한 책이어서 마치 필사본을 돌려보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저작권(copyright)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움트던 시기이기도 해서 저작권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꼬리말을 달고 비매품으로 세상에 나온 그 책자는 손에 손을 거쳐 빠르게 퍼져갔다.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차에 2003년 민들레에서 저작권 계약을 맺고 정식 출판을 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책을 복사본으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곳이 옮긴이 이아무개(이현주) 목사님과 절친한 목사님이 계신 민들레교회였다. 민들레교회와 민들레출판사. 하나의 우주적 농담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각 예술가 정병례 선생의 작품을 삽화로 곁들여 출간했다. 전교조에서는 『배움의 도』 글귀가 담긴 탁상달력을 제작해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경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왔는데, 『배움의 도』 또한 그 흐름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많이 읽힌 도덕경은 『노자와 21세기』를 쓴 도올 김용옥 본, 『노자를 웃긴 남자』로 도올을 비판한 이경숙 본, 그리고 백서본·곽점본·왕필본을 비교한 『백서노자』를 쓴 이석명 본, 그리고 『노자 이야기1, 2, 3』을 쓴 이아무개(이현주) 본 등이 있다. 『배움의 도』처럼 서구인이 해석한 주해서를 비롯해 새로운 주해서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도서 검색 결과 2백여 권의 주해서가 있다.)
노자 사상이 주목받았던 배경에는 춘추전국 시대와 유사한 개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하면 된다”를 부르짖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지나친 작위에 지친 이들에게 무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노자의 가르침이 어필했던 것이리라. 『배움의 도』가 교사들에게 많이 읽힌 것도 교육 과잉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사들이 느낀 자괴감과 회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고, 교육보다 배움을 강조하면서 교사들이 아이들 뒤로 물러나는 자세를 취한 것은 교육 과잉 시대를 지나오면서 나타난 반작용일 것이다. 이제 다시금 교육과 교사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배움의 도』가 맡았던 시대적 역할이 다했음을 느끼며 절판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를 바라보는 음모론적 시각
미국의 교육운동가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 만들기』는 90년대 중반 푸른나무에서 초판이 나왔지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마도 ‘미국의 의무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부제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미국 의무교육을 넘어 근대적 학교교육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책인데 부제가 주제를 너무 좁혀버린 느낌이었다. 민들레에서 복간하면서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후 『바보 만들기』는 20년 가까이 민들레의 스테디셀러가 되어 출판사 운영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변화에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뉴욕주 ‘올해의 교사상’을 세 번이나 받았던 개토는 자신이 몸담았던 학교 시스템의 문제를 내부자 시각에서 신랄하게 고발한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학교 제도의 신화와 신분 제도에 근거한 경제체제의 신화를 공고히 하는 보이지 않는 교과과정입니다. (…)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혼란, 자기 자리 알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존감, 그리고 감시입니다.”(『바보 만들기』,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 가운데)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교사가 국가주도 학교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일하면서 혼란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학교의 배신』, 『수상한 학교』에서 개토의 학교 비판은 점점 음모론에 가까워진다. 그 비판이 나름 근거가 없지 않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에는 계급 문화가 팽배했고 20세기 초반에 우생학과 사회개량주의가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개토의 문제의식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제도적 학교를 해체하고, 교사자격증 제도를 폐지합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교육을 민간에 전면적으로 개방합시다.”(위의 책, 166쪽) 개토의 이 주장대로 간다면 결국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교육개혁은 실패할 운명이다. 학교가 실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교육예산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고, 미완의 개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언뜻 암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제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를 직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개선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개토의 저서를 세 권이나 낸 출판사의 대표로서 ‘셀프 디스’ 성격의 서평을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펴내는 웹진에 게재한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과 함께. “학교 제도에 대한 과도한 문제의식으로 음모론에 가까운 시각을 담은 책을 연이어 출간한 것은 교육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고 공부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바보 만들기』를 비롯한 개토의 책이 학교교육의 문제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담고 있지만 그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이제는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책을 읽고 교직에 회의를 느꼈을 많은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교육과 배움의 긴장 관계
교육(敎育), 가르치고 기른다는 이 말은 어쩐지 일방통행 표지판 같다. 국민교육헌장으로 상징되는 국가주도의 교육 과잉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육보다 배움을 강조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배움의 도』, 길을 가리키는 오래된 손가락 가운데 하나인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어쓴 책이다. “배움은 작은 생선을 조리는 것과 같다. 젓가락질을 너무 많이 하면 요리를 망치고 만다.”(『배움의 도』 60장 가운데) 아포리즘 같은 짤막한 글귀들이 함축하고 있는 깊은 의미가 많은 이들에게 가닿았다.
『배움의 도』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꽤 오래되었다. 90년대 후반 참된 교육의 길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 불온 유인물처럼 떠돌던 복사물이 있었다. 복사집에서 제본한 허름한 책자에는 옮긴이 이름도 정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활자로 인쇄된 책자도 아니었다. 옮긴이의 육필 그대로 복사한 책이어서 마치 필사본을 돌려보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저작권(copyright)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움트던 시기이기도 해서 저작권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꼬리말을 달고 비매품으로 세상에 나온 그 책자는 손에 손을 거쳐 빠르게 퍼져갔다.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차에 2003년 민들레에서 저작권 계약을 맺고 정식 출판을 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책을 복사본으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곳이 옮긴이 이아무개(이현주) 목사님과 절친한 목사님이 계신 민들레교회였다. 민들레교회와 민들레출판사. 하나의 우주적 농담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각 예술가 정병례 선생의 작품을 삽화로 곁들여 출간했다. 전교조에서는 『배움의 도』 글귀가 담긴 탁상달력을 제작해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경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왔는데, 『배움의 도』 또한 그 흐름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많이 읽힌 도덕경은 『노자와 21세기』를 쓴 도올 김용옥 본, 『노자를 웃긴 남자』로 도올을 비판한 이경숙 본, 그리고 백서본·곽점본·왕필본을 비교한 『백서노자』를 쓴 이석명 본, 그리고 『노자 이야기1, 2, 3』을 쓴 이아무개(이현주) 본 등이 있다. 『배움의 도』처럼 서구인이 해석한 주해서를 비롯해 새로운 주해서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도서 검색 결과 2백여 권의 주해서가 있다.)
노자 사상이 주목받았던 배경에는 춘추전국 시대와 유사한 개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하면 된다”를 부르짖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지나친 작위에 지친 이들에게 무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노자의 가르침이 어필했던 것이리라. 『배움의 도』가 교사들에게 많이 읽힌 것도 교육 과잉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사들이 느낀 자괴감과 회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고, 교육보다 배움을 강조하면서 교사들이 아이들 뒤로 물러나는 자세를 취한 것은 교육 과잉 시대를 지나오면서 나타난 반작용일 것이다. 이제 다시금 교육과 교사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배움의 도』가 맡았던 시대적 역할이 다했음을 느끼며 절판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를 바라보는 음모론적 시각
미국의 교육운동가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 만들기』는 90년대 중반 푸른나무에서 초판이 나왔지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마도 ‘미국의 의무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부제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미국 의무교육을 넘어 근대적 학교교육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책인데 부제가 주제를 너무 좁혀버린 느낌이었다. 민들레에서 복간하면서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후 『바보 만들기』는 20년 가까이 민들레의 스테디셀러가 되어 출판사 운영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변화에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뉴욕주 ‘올해의 교사상’을 세 번이나 받았던 개토는 자신이 몸담았던 학교 시스템의 문제를 내부자 시각에서 신랄하게 고발한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학교 제도의 신화와 신분 제도에 근거한 경제체제의 신화를 공고히 하는 보이지 않는 교과과정입니다. (…)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혼란, 자기 자리 알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존감, 그리고 감시입니다.”(『바보 만들기』,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 가운데)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교사가 국가주도 학교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일하면서 혼란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학교의 배신』, 『수상한 학교』에서 개토의 학교 비판은 점점 음모론에 가까워진다. 그 비판이 나름 근거가 없지 않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에는 계급 문화가 팽배했고 20세기 초반에 우생학과 사회개량주의가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개토의 문제의식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방향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제도적 학교를 해체하고, 교사자격증 제도를 폐지합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교육을 민간에 전면적으로 개방합시다.”(위의 책, 166쪽) 개토의 이 주장대로 간다면 결국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교육개혁은 실패할 운명이다. 학교가 실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교육예산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고, 미완의 개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언뜻 암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제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를 직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고 사회를 개선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개토의 저서를 세 권이나 낸 출판사의 대표로서 ‘셀프 디스’ 성격의 서평을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펴내는 웹진에 게재한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과 함께. “학교 제도에 대한 과도한 문제의식으로 음모론에 가까운 시각을 담은 책을 연이어 출간한 것은 교육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고 공부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바보 만들기』를 비롯한 개토의 책이 학교교육의 문제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담고 있지만 그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이제는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책을 읽고 교직에 회의를 느꼈을 많은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