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 정상 가족의 신화는 끝났다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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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상 가족인가

 

한 팟캐스트에 영화 이야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녹음 시작 전에 인사하면서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중에 싱글인지 아닌지를 질문해왔다. 기어코 기혼 유무를 묻는 것도 그리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냥 ‘싱글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녹음이 시작되었다. 그때 다룬 영화가 <더 랍스터>였는데 영화 내용 중 가족이 해체되는 장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미래사회의 가족은 다양하게 그 구성이 바뀔 수 있다는 내 말에 남자 진행자가 불쑥 말했다. 

“나는 내 가족이 정상이 아닌 가족이 되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상대가 ‘정상’이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함으로써, 팟캐스트 시작 전에 싱글맘이라고 밝혔던 나는 졸지에 ‘비정상’이 되는 경험을 했다. ‘정상’이라는 말이 폭력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새삼 깨달았다.

정상 가족을 기준으로 한 폭력성은 일상에 만연하다. 아이의 교과서에는 늘 엄마는 앞치마를 두른 채 집안일을 하고, 아빠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그림이 나온다. 집집마다 자녀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빠-엄마-아들-딸의 구성을 가장 정상적인 가족의 기준으로 보는 모양이다. 이런 삽화가 1990년대 교과서에 실렸다면 지난 세기의 이야기이므로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아직도 가사일은 어머니가 하는 일이라고 정답을 맞추게 하는 문제를 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요즘도 아이의 학교에서는 가족에 관한 과제를 내주며, 가족사진을 가져오라, 가족신문을 만들어오라 한다. 아빠-엄마-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이미지가 ‘정상’이라 기대될 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소외를 당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족환경조사서에는 서류를 작성하는 이의 이름을 쓰는 칸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부모 한쪽이 없는 아이들은 늘 한 칸을 비워두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고 있는 조손가정 아이들은 이 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공문서 서류를 볼 때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소외를 느껴야 한다니, 이 또한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자녀가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보호자가 작성해 제출하는 미국 법원의 서류에는 Father, Mother 칸이 없다. 대신 Parent 1, Parent 2라고 되어 있다. 이미 미국의 많은 주의 학교 공문서 등에는 Father, Mother를 체크하는 칸이 없어졌다. 2016년 아이가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면서, 유럽연합 산하 청소년 교류 단체에 비슷한 서류를 낸 적이 있다. 여기에도 Parent 1, Parent 2를 채워 넣게 되어 있었다. 항상 먼저 나오는 아버지 칸을 건너뛴 후 어머니 칸에 내 이름을 적는 대신, Parent 1에 내 이름을 당당히 써보는 경험을 난생처음 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달라진 표기법은 단지 아버지·어머니라는 남녀 성구별, 성차별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2015년 6월 미국 50개 주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된 이후 54만 7천 명 이상의 동성혼 커플이 생겼고, 대략 200~370만 명의 18세 이하 아동이 부모 중 한쪽이 LGBTQ1) 부모이며, 대략 20만 명이 동성혼 부모 아래에서 자라고 있다. 즉, 아버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혹은 어머니-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동이 미국에서는 이제 20만 명이 넘는다는 소리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젠더 중립적인 공문서 표기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제도는 변한다 

 

가족의 역사는 대략 7천 년 정도로 추산하나, 현재와 같은 가부장 가족(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의 형태는 서구에서는 17세기에 등장했다. 요는 이것이다. 불과 수백 년 전에 등장한 가족제도가 4백 년 정도 지나 새롭게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제는 (인간이 man-남자라는 관점부터 시작해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6년도 미국 인구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가족 중에 아빠-엄마–아들 혹은 딸로 구성되는 소위 정상 가족은 15퍼센트 정도다. 그 외에 다수를 차지하는 가족의 구성은 다양하다. 

아래의 인포그래픽이 보여주는 가족의 형태는 (왼쪽 상단부터) 다음과 같이 열거해 볼 수 있다. 노인 커플, 여성 동성 커플, 싱글맘, 비혼 독신 여성, 남녀 커플, 미혼모, 청소년 남매, 반려견을 키우는 비혼 독신 남성, 남성 동성 커플, 비혼 독신 남성, 홀로 남은 여성 노인, 홀로 남은 남성 노인, 어린이를 키우는 동성 남성 커플, 싱글 대디, 남매를 키우는 싱글 대디, 아이가 있는 남녀 커플, 아이와 반려견을 키우는 싱글 대디까지…(요새는 1인 독신도 독신 가족(family of one)이라 부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부부’라는 말을 쓰지 않고, ‘커플’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동거하는 모든 로맨틱 관계 속의 두 사람이 반드시 결혼이라는 제도로 검증을 받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동거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시민 연대 계약, 일명 ‘팍스PACS: pacte civile de solidarité’라 불리는 동거 형태가 있다. 상속과 부양 등의 의무와 권리를 동거인에게 보장하는 법적인 장치이다. 미국에는 시민 연대civil union라는 제도가 있었으나, 동성 결혼이 허용된 후로는 대부분의 동성 커플들은 법적인 보장을 원하는 경우 결혼을 택하고 있다. 이를 떠나, 자발적 친족voluntary kin이라는 개념의 공동체도 등장하고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많은 경우 애증으로 얽매인 혈족인 가족을 떠나, 내가 동거하기를 혹은 같이 어울리기를 선택한 느슨한 공동체를 일컫는 표현이다. 

이쯤 되면 아빠-엄마-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수인지, 달라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 관계와 관계를 보장하는 법적인 장치들을 요구하는지 보인다. 학교나 관공서의 서류에도 아버지, 어머니 대신 부모 1, 부모 2 혹은 보호자 1, 2라는 식으로 양식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꾸어 상향식 변화를 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혐오 문제를 다룰 때에는 호칭과 제도를 바꾸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내는 하향식 접근법이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다. 

 

정상성의 편견에서 벗어나

 

현재의 가족 구성은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최근에는 1인 가구로까지 점점 바뀌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평생 한 지역에 붙박이로 사는 시대가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이동하는 글로벌 노마드global nomad로 살아가는 시대이며, 평생 동안 많아야 수백 명의 사람과 연결되는 시대가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만, 수십만과 쉽게 연결되는 시대이다. 

나이 예순을 넘기는 게 드문 일이어서 잔치까지 하며 한 배우자와 수십 년 해로하는 것을 축복받는 시대가 아니라,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며 한 사람과 70년을 같이 사는 것이 가능할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대가 아니던가. 이렇게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는데, 어떻게 가족의 형태가 변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당연했던 것이 앞으로도 당연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편협한 사고, 정상성에 대한 편견이다. 


1)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또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탐색 중인 사람(Questioning)을 가리키는 약어다.


_조이스박 (글로벌사이버대 외래교수. 젠더 강사 및 에세이 작가. 이 글은 격월간 민들레 121호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