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인과 도제
인류 문명의 진보에는 도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곧 도구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대표적인 도구이지만, 전통적으로 도구는 ‘손’의 연장(延長)이었다. 도구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도구와 신체가 한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같은 일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손놀림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장인을 대우하는 것은 그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인문화는 중세 유럽과 일본에서 발달했다. 도제제도는 장인문화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수공업처럼 기예를 필요로 하는 일을 전수하는 데는 장인의 일을 거들면서 일을 배우는 도제 방식이 유효하다. 생활을 함께하며 장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몸으로 습득하는 과정을 거쳐 장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랜 시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보통 5~10년 가까이 도제 생활을 해야 했다.
장인-직인-도제로 구성된 도제제에 기반한 유럽의 수공업 길드는 상인 길드와 함께 도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편 일본의 장인-도제제는 유럽의 길드제와 달리 영주에게 예속된 장인들의 조직이었다. 이를 좌(座)라 불렀는데, 좌에 속한 장인들은 권력자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생산물로 납세와 부역, 군역을 대신함으로써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었다. 장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이익단체였던 좌는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제도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일본 도제제도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일본의 장인문화는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와 불교 선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만물 속에 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던 고대 일본인들은 인간의 비범한 능력이나 기예 또한 신적인 힘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장인을 우러러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선종 철학이 일상 영역으로 스며들면서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장인정신을 북돋웠다. 산중 불교가 되고 만 한국의 선종과 달리 일본의 선종은 일반인들에게 스며들어 신도와 함께 일본 문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어 상업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장인들의 신분도 하락하게 된다. 17세기 초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좌는 차츰 해체되어 나카마라 불리는 동업자 조직으로 변해갔다. 동업자 조직체계가 갖추어지면서 나카마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도제로 일정 기간 일하면서 기술을 익혀야 하는 도제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도제가 되면 장래가 보장되기에 길드나 나카마의 도제가 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자식이나 친척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인-도제제는 권력체제이기도 하다. 일본은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뉜 기다란 열도 형태를 띠고 있어 중앙집권체제보다 권력분산체제에 더 적합한 지정학적 구조를 띠고 있다. 3백여 명의 다이묘들이 저마다 한 고을씩 차지하고서(이를 '쿠니'國라고 불렀다) 권력을 분점하는 사회체제가 메이지 유신까지 계속되었다. 다이묘들은 장인들이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권력을 갖는 것을 용인했다.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는 문화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독일 같은 지방분권 사회에서 장인제도가 발달한 것도 비슷한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제식 교육에서는 배움과 노동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 일하면서 배우고, 살면서 배운다. 삶과 배움이 하나가 되는 것이 이상적인 배움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장인이라고 해서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것은 아니므로 도제식 배움이 꼭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숙식만 제공하면서 몇 년씩 힘든 일을 감수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착취에 가깝다. 나중에 그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는 감수할 만했겠지만,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제로 쌓은 경험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자 더 이상 도제제는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학교 시스템이 도제 시스템을 대신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표준화된 노동력을 길러낼 필요가 있다. 탈근대 사회에 접어들어 다품종 소량생산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표준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한 국가 또는 그 시대의 교육 방식은 어떤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가 아니라. 국가수준의 교육과 개인수준의 교육을 달리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장인정신의 빛과 그림자
일본의 장인문화를 예찬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어에서는 수련을 수업(修業)이라 표현한다. 업을 닦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직업을 수련의 방편으로 여기는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도를 닦듯이 기예를 닦는 것이다. 모든 일은 단순반복 성격을 띠고 있고, 그 일을 반복해서 꾸준히 하는 가운데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는 감수성이 길러진다. 나무의 결, 불꽃의 색깔 같은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은 그런 훈련 속에서 길러진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췄다고 해서 동료와 소통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동료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말 뒤에 숨은 의미, 몸짓이 말하는 내용을 제대로 감지하는 것은 또 다른 안테나가 작동해야 가능한 소통 능력이다. 수직적인 구조는 이 안테나가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장인-도제 구조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적합한 구조이지만, 여러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협업해야 하는 일에서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장인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협업은 장인의 일을 다른 사람이 보조하는 형식이다. 도제나 시다는 장인의 일을 거드는 사람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업자는 아니다.(‘시다した’는 우리말로 ‘아래’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고집불통 장인이 권력을 갖게 되면 조직이 정체되기 쉽다. 변화가 느린 분야에서는 장인의 경험이 가치를 발휘하지만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일본 전자업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인정신이 있지만, 그것은 또한 몰락의 원인이기도 하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는 어떤 분야보다 변화가 빠른 분야인데, 장인정신으로는 그 흐름을 선도하기는 고사하고 좇아가기도 힘들다. 장인의 고집은 오히려 리스크가 된다.
최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몇 가지 소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하면서 한일 간에 갈등이 있었다. 일본이 소재산업에 강한 까닭은 장인문화 덕분이다. 정밀성이 생명인 소재 산업은 기본기를 확실히 다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반면에 한국이 반도체나 2차전지 같은 화학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임기응변에 능한 한국인들의 유연한 기질이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 화학 분야는 매뉴얼보다 직관적인 판단이 성패를 좌우할 때가 많다. 변수가 많고 예측불허 상황에서 경험자의 직관적 판단으로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산업이다.
매뉴얼화 하기 힘든 분야의 경우 경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농경사회처럼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경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산업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력은 중요한 가치 평가요소다. 일을 해보면서 터득하는 노하우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력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 또한 그 편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임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보사회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분야일수록 경험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다. 경험의 가치는 변화의 속도에 반비례한다.
경력에 따른 호봉제 또는 연공제가 쌀농사를 주업으로 해온 사회의 특징이라는 분석이 있다(이철승, 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 2021).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되는 농경문화에 뿌리 내린 연공제로 말미암아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입사원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30년 근속 후의 임금이 서구의 경우 170, 일본이 240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330~350에 이른다고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50대에 접어든 2010년대에 이르러 인건비 부담이 2배 가까이 폭증하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연공제가 장인문화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의 가치를 높이 산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자동화,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어 경험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연공서열에 대한 문제제기가 대두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이 장인을 대신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연공서열문화도 장인문화와 함께 서서히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장인문화와 신체지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장인을 대신하는 시대에 장인문화에서 우리가 계승할 것은 무엇일까? 초정밀 기계가 쇠를 자르고 나무를 깎는 시대에 장인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운전 기술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질까? 장인 목수는 손바닥으로 나무결을 느끼듯이 대패날을 통해서도 느낀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자동차를 자신의 신체처럼 인식한다. 연장과 한 몸이 되는 기술, 그리고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신체지성은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우기가 쉽지 않다.
장인이나 연주자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러한 신체 감각이 깨어날 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온 몸은 자체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 40년 넘게 합기도를 수련해온 우치다 타츠루는 이를 신체지(身體智)라 명명한다. 단순히 감각 차원을 넘어 지적인 판단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신체지가 작동할 때는 몸이 뇌를 통제한다. 뇌가 몸을 통제할 때는 몸이 긴장 상태가 되어 기량을 백 퍼센트 발휘하기 힘들지만, 이완 상태에서 몸이 알아서 움직일 때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야구선수나 피아니스트가 몸에 힘 빼는 법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다.
선동열 선수는 힘 빼고 공을 던질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힘을 뺀 상태는 맥이 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맥락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밸런스가 이루어진 상태다.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에너지가 물 흐르듯 흐르는 경지다. 발끝에서 손가락 끝까지 모든 관절과 근육이 긴밀히 맞물려 밸런스를 유지할 때 중력과 관성력, 반작용의 에너지가 몸을 타고 막힘없이 흐를 수 있다. 몸이 텅 빈 피리처럼 에너지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일상적인 걷기나 달리기를 할 때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러자면 신체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밸런스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기만 해도 무게중심의 이동이 일어나면서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리 힘이 아니라 중력과 관성력, 반작용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들이 35km 지점쯤에서 경험한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그런 상태일 것이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수영이나 축구 등 장시간 운동을 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랜 시간 걸을 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팔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마치 지구가 뒤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인간의 걷기 동작은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제자리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력에 의해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저절로 팔다리의 진자운동이 일어나고, 지면과의 마찰력과 반작용의 힘에 의해 저절로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다리 힘으로 걷거나 달린다면 얼마 가지 못해 지쳐 쓰러질 것이다.
힘을 빼는 기술이 곧 힘을 쓰는 기술이다. 붓글씨를 쓸 때도 쓰는 사람이 사라진 상태일 때 진짜 작품이 나온다. 잘 쓰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글씨와 붓과 몸이 하나가 되어 춤추듯이 움직일 때 글씨가 살아난다. 춤추는 사람이 사라진 춤이야말로 춤의 진수이듯. 그럴 때 우리 뇌는 잠시 작동을 멈추고 신체지가 작동하는 상태가 된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몸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오랜 연습과 몸의 밸런스가 필요한 일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계가 인간의 감각과 손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의 신체지는 점점 퇴화해간다. 신체지가 둔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지성 또한 둔해질 것이다. 뇌와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책할 때 뇌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가다듬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인간이 더 지적인 존재로 진화한다 할지라도 ET처럼 머리만 커다란 신체를 갖게 되진 않을 것이다. 신체 노동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신체지를 일깨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장인과 도제
인류 문명의 진보에는 도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곧 도구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대표적인 도구이지만, 전통적으로 도구는 ‘손’의 연장(延長)이었다. 도구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도구와 신체가 한몸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같은 일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손놀림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세월이 필요한 일이다. 장인을 대우하는 것은 그 세월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인문화는 중세 유럽과 일본에서 발달했다. 도제제도는 장인문화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수공업처럼 기예를 필요로 하는 일을 전수하는 데는 장인의 일을 거들면서 일을 배우는 도제 방식이 유효하다. 생활을 함께하며 장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몸으로 습득하는 과정을 거쳐 장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랜 시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보통 5~10년 가까이 도제 생활을 해야 했다.
장인-직인-도제로 구성된 도제제에 기반한 유럽의 수공업 길드는 상인 길드와 함께 도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편 일본의 장인-도제제는 유럽의 길드제와 달리 영주에게 예속된 장인들의 조직이었다. 이를 좌(座)라 불렀는데, 좌에 속한 장인들은 권력자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생산물로 납세와 부역, 군역을 대신함으로써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었다. 장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이익단체였던 좌는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제도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일본 도제제도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일본의 장인문화는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와 불교 선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만물 속에 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던 고대 일본인들은 인간의 비범한 능력이나 기예 또한 신적인 힘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장인을 우러러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선종 철학이 일상 영역으로 스며들면서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장인정신을 북돋웠다. 산중 불교가 되고 만 한국의 선종과 달리 일본의 선종은 일반인들에게 스며들어 신도와 함께 일본 문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어 상업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장인들의 신분도 하락하게 된다. 17세기 초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좌는 차츰 해체되어 나카마라 불리는 동업자 조직으로 변해갔다. 동업자 조직체계가 갖추어지면서 나카마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도제로 일정 기간 일하면서 기술을 익혀야 하는 도제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도제가 되면 장래가 보장되기에 길드나 나카마의 도제가 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자식이나 친척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인-도제제는 권력체제이기도 하다. 일본은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뉜 기다란 열도 형태를 띠고 있어 중앙집권체제보다 권력분산체제에 더 적합한 지정학적 구조를 띠고 있다. 3백여 명의 다이묘들이 저마다 한 고을씩 차지하고서(이를 '쿠니'國라고 불렀다) 권력을 분점하는 사회체제가 메이지 유신까지 계속되었다. 다이묘들은 장인들이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권력을 갖는 것을 용인했다.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는 문화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독일 같은 지방분권 사회에서 장인제도가 발달한 것도 비슷한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제식 교육에서는 배움과 노동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 일하면서 배우고, 살면서 배운다. 삶과 배움이 하나가 되는 것이 이상적인 배움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장인이라고 해서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것은 아니므로 도제식 배움이 꼭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숙식만 제공하면서 몇 년씩 힘든 일을 감수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착취에 가깝다. 나중에 그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는 감수할 만했겠지만,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제로 쌓은 경험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자 더 이상 도제제는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학교 시스템이 도제 시스템을 대신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표준화된 노동력을 길러낼 필요가 있다. 탈근대 사회에 접어들어 다품종 소량생산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표준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한 국가 또는 그 시대의 교육 방식은 어떤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가 아니라. 국가수준의 교육과 개인수준의 교육을 달리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장인정신의 빛과 그림자
일본의 장인문화를 예찬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어에서는 수련을 수업(修業)이라 표현한다. 업을 닦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직업을 수련의 방편으로 여기는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도를 닦듯이 기예를 닦는 것이다. 모든 일은 단순반복 성격을 띠고 있고, 그 일을 반복해서 꾸준히 하는 가운데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는 감수성이 길러진다. 나무의 결, 불꽃의 색깔 같은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은 그런 훈련 속에서 길러진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췄다고 해서 동료와 소통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동료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말 뒤에 숨은 의미, 몸짓이 말하는 내용을 제대로 감지하는 것은 또 다른 안테나가 작동해야 가능한 소통 능력이다. 수직적인 구조는 이 안테나가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장인-도제 구조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적합한 구조이지만, 여러 사람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협업해야 하는 일에서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장인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협업은 장인의 일을 다른 사람이 보조하는 형식이다. 도제나 시다는 장인의 일을 거드는 사람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업자는 아니다.(‘시다した’는 우리말로 ‘아래’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고집불통 장인이 권력을 갖게 되면 조직이 정체되기 쉽다. 변화가 느린 분야에서는 장인의 경험이 가치를 발휘하지만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일본 전자업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인정신이 있지만, 그것은 또한 몰락의 원인이기도 하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는 어떤 분야보다 변화가 빠른 분야인데, 장인정신으로는 그 흐름을 선도하기는 고사하고 좇아가기도 힘들다. 장인의 고집은 오히려 리스크가 된다.
최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몇 가지 소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하면서 한일 간에 갈등이 있었다. 일본이 소재산업에 강한 까닭은 장인문화 덕분이다. 정밀성이 생명인 소재 산업은 기본기를 확실히 다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반면에 한국이 반도체나 2차전지 같은 화학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임기응변에 능한 한국인들의 유연한 기질이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 화학 분야는 매뉴얼보다 직관적인 판단이 성패를 좌우할 때가 많다. 변수가 많고 예측불허 상황에서 경험자의 직관적 판단으로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산업이다.
매뉴얼화 하기 힘든 분야의 경우 경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농경사회처럼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경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산업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력은 중요한 가치 평가요소다. 일을 해보면서 터득하는 노하우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력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 또한 그 편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임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보사회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분야일수록 경험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다. 경험의 가치는 변화의 속도에 반비례한다.
경력에 따른 호봉제 또는 연공제가 쌀농사를 주업으로 해온 사회의 특징이라는 분석이 있다(이철승, 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 2021).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되는 농경문화에 뿌리 내린 연공제로 말미암아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입사원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30년 근속 후의 임금이 서구의 경우 170, 일본이 240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330~350에 이른다고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50대에 접어든 2010년대에 이르러 인건비 부담이 2배 가까이 폭증하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연공제가 장인문화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의 가치를 높이 산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자동화,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어 경험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연공서열에 대한 문제제기가 대두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이 장인을 대신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연공서열문화도 장인문화와 함께 서서히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장인문화와 신체지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장인을 대신하는 시대에 장인문화에서 우리가 계승할 것은 무엇일까? 초정밀 기계가 쇠를 자르고 나무를 깎는 시대에 장인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운전 기술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질까? 장인 목수는 손바닥으로 나무결을 느끼듯이 대패날을 통해서도 느낀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자동차를 자신의 신체처럼 인식한다. 연장과 한 몸이 되는 기술, 그리고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신체지성은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우기가 쉽지 않다.
장인이나 연주자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러한 신체 감각이 깨어날 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온 몸은 자체의 지성을 갖추고 있다. 40년 넘게 합기도를 수련해온 우치다 타츠루는 이를 신체지(身體智)라 명명한다. 단순히 감각 차원을 넘어 지적인 판단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신체지가 작동할 때는 몸이 뇌를 통제한다. 뇌가 몸을 통제할 때는 몸이 긴장 상태가 되어 기량을 백 퍼센트 발휘하기 힘들지만, 이완 상태에서 몸이 알아서 움직일 때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야구선수나 피아니스트가 몸에 힘 빼는 법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다.
선동열 선수는 힘 빼고 공을 던질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힘을 뺀 상태는 맥이 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맥락이 팽팽하게 연결되어 밸런스가 이루어진 상태다.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에너지가 물 흐르듯 흐르는 경지다. 발끝에서 손가락 끝까지 모든 관절과 근육이 긴밀히 맞물려 밸런스를 유지할 때 중력과 관성력, 반작용의 에너지가 몸을 타고 막힘없이 흐를 수 있다. 몸이 텅 빈 피리처럼 에너지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일상적인 걷기나 달리기를 할 때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러자면 신체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밸런스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기만 해도 무게중심의 이동이 일어나면서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리 힘이 아니라 중력과 관성력, 반작용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들이 35km 지점쯤에서 경험한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그런 상태일 것이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수영이나 축구 등 장시간 운동을 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랜 시간 걸을 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팔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마치 지구가 뒤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인간의 걷기 동작은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제자리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력에 의해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저절로 팔다리의 진자운동이 일어나고, 지면과의 마찰력과 반작용의 힘에 의해 저절로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다리 힘으로 걷거나 달린다면 얼마 가지 못해 지쳐 쓰러질 것이다.
힘을 빼는 기술이 곧 힘을 쓰는 기술이다. 붓글씨를 쓸 때도 쓰는 사람이 사라진 상태일 때 진짜 작품이 나온다. 잘 쓰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글씨와 붓과 몸이 하나가 되어 춤추듯이 움직일 때 글씨가 살아난다. 춤추는 사람이 사라진 춤이야말로 춤의 진수이듯. 그럴 때 우리 뇌는 잠시 작동을 멈추고 신체지가 작동하는 상태가 된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몸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오랜 연습과 몸의 밸런스가 필요한 일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계가 인간의 감각과 손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의 신체지는 점점 퇴화해간다. 신체지가 둔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지성 또한 둔해질 것이다. 뇌와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책할 때 뇌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가다듬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인간이 더 지적인 존재로 진화한다 할지라도 ET처럼 머리만 커다란 신체를 갖게 되진 않을 것이다. 신체 노동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신체지를 일깨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