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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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일까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 더 이상 지식의 전수자가 필요 없는 이 시대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다만 안내자 역할에 그치면 되는 걸까가르치는 일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일일까대안교육은 교육에서 배움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해왔다교육과잉의 시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적절한 메시지였을 수 있지만가르침과 배움의 긴장 관계를 너무 간단히 해석해버린 면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 널려 있는 정보를 찾아내 혼자서도 뭐든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만 배움의 과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진짜 중요한 정보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글의 핵심은 행간에 있고행간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텍스트에는 드러나 있지 않다교사는 그 행간을 보도록 도와주는 존재다그것은 전체를 보도록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큰 이유는 부분과 부분을 연결하는 그 사이’ 때문이다거기에는 순서가 있고 맥락이 있다알짜 정보는 그것들이다그러므로 교사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그럴 때 학생이 지금 어디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알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유능한 코치는 선수의 동작을 보고동작과 동작 사이에 에너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읽어낸다어디서 그 흐름이 막히는지를 읽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육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그런 도움이 없다면 선수는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힘겹게 나아가거나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팀플레이의 경우 선수와 선수의 움직임 사이에 핵심 정보가 있다그것을 해석하고 문제를 개선할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코치다그처럼 교사의 역할은 전체의 흐름을 먼저 읽고 학생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짚어주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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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교육과 배움은 함께 일어나야 한다줄탁동시(啐啄同時)부화가 시작되면 병아리가 세 시간 안에 껍질을 깨고 나와야 질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아직 여물지 않은 부리로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다제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도 있지만많은 경우 새끼가 안에서 쫄(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채고 밖에서 같이 쪼아줘서(한 생명이 태어난다.

자기주도학습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마치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그동안 우리가 의심 없이 추구해온 가치들에 대해 문탁의 이희경 선생이 여러 해 전에 던졌던 물음이 있다.1모든 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성껏창조적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그 자기의 윤리학자기를 잘 챙기는 똘똘한 개인들이 모여서 사이좋게 사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이념그리고 좋은 학교와 좋은 교사좋은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교육학적 패러다임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고.

상호의존성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면 배움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상호의존성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교육도 배움도 제 길을 찾을 수 있다그러므로 교육의 기능교사의 역할은 언제나 유효하다아이들의 성장을 낳는 배움은 자기주도적으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배움의 역설은 배우는 이가 정작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지 모른다는 데 있다자발성이 없이는 잘 배울 수 없지만 그 자발성은 시작 단계에서는 방향성이 잡혀 있지 않은 것이다아이에게 뭘 배우고 싶니?”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이의 자발성을 배려한 것일 테지만이는 사실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로 가득한 메뉴판을 내밀면서 뭘 먹고 싶니?”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훌륭한 선생은 학생이 뭘 배워야 하는지를 안다그것은 단순한 지식도 기술도 아니다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말로 전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선생은 그걸 직접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지만 그 길로 안내할 수는 있다유능한 코치는 무조건 힘 빼고 던지라고 말하지 않고어떤 근육이 발달하지 않았는지를 꿰뚫어보고 어떤 트레이닝을 하라고 일러준다스승이 하는 역할이다덕산 선사처럼 무조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최선이 아닌 것이다지난 이천 년 동안 인간에 대한 지식도 이해도 더 깊어졌다옛 선사들의 방법보다 나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무턱대고 화두선이니 면벽수련 같은 걸 한다고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다교육의 길도 마찬가지다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교직의 안정성은 약일까 독일까

그렇다면 그런 실력 있는 교사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스포츠 세계라면 많은 연봉을 주고 검증된 코치를 스카우트 해오면 되겠지만 교육의 세계는 다르다학원계에서 유능한 강사를 스카우트 할 수 있는 것은 학원강사들은 개인플레이를 해도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학교교육은 팀플레이이므로 외부에서 유능한 교사 한 명을 스카우트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게다가 성적만 올리면 되는 강사의 단순한 역할과 달리 교사의 실력이란 검증하기 힘든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사는 현장에서 길러지는 것이 최선이다교사회가 중요하다는 얘기다평생을 대안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지낸 이철국 선생은 교사회야말로 교사양성기관이라고 말한다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교사로 성장할 수 있다어디 유능한 교사 없을까 두리번거릴 일이 아니라 안에 있는 교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교사의 이직률이 높다급여가 낮고 노동 강도는 높고 복지제도도 미비하니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다학교를 그만두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갈등으로 인한 감정노동이 주는 피로도 때문이다부모들이 설립한 비인가 학교의 경우 부모와의 갈등교사들 사이의 갈등으로 지쳐 나가떨어지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민주적인 공동체를 꾸려가는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자기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입장을 고수하며 지난한 회의를 견디는 것이 민주적인 공동체는 아니다또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이 모두가 사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회의하는 법의사결정하는 법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끝나지 않는 회의로 모두가 지쳐버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반면 인가받은 대안학교들의 경우는 부모와의 갈등이나 교사 내부 의 갈등이 적은 편이다재정이 부모로부터 독립되어 있고교사 내부의 문화도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일반 사립학교들처럼 10, 20년 장기 근속하는 교사들이 많다그렇다고 장기근속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매너리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비슷비슷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도 비슷해진다교사들끼리 누가 어떤 주장을 할지 훤히 꿰고 있어서 회의도 빤하게 흘러간다안정성과 역동성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인가형과 비인가형 중간 정도의 안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제도권의 교직은 어떤 직업군보다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한다한국의 교사 임금과 복지 수준은 OECD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든다아버지 세대에서는 기피하던 직업이 아들 세대에 와서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되었다교직의 안정화는 교육에 약일까 독일까모든 약은 독성분을 담고 있듯이 교직의 안정화 역시 그럴 것이다세상 모든 일은 모순을 품고 있고그 모순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일이 전개되는 과정이다한 가지 모순을 풀고 나면 또 다른 모순에 맞닥뜨리는 게 세상사의 법칙이다.

제도권은 역동성을비제도권은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역동성을 높이는 길은 문을 여는 것이다고인 물에 새 물줄기를 공급하면 된다대표적인 철밥통 공무원 세계에도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다민간 영역의 전문가들이 공무원으로 발탁되는 어쩌다 공무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늘공(무원)’과 어공이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모드가 바뀌고 있다교직에서도 그런 흐름이 읽힌다공모형 교장제도 그 흐름의 하나일 것이다학부모강사나 인턴십 멘토도 교직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할 수 있다하지만 좀더 문을 열 필요가 있다교원노조는 이제 교직의 안정성보다 역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그 길이 교육을 살리고 교사도 사는 길이다.

비제도권 교직의 안정성을 높이는 길은 무엇보다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다혹자는 저임금이 질 낮은 교사를 유입시킨다고 말하지만지금까지 대안교육 현장에서는 오히려 저임금이 거름장치 역할을 해서 밥그릇보다 진정한 교육의 길을 찾는 교사를 선발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그런 열정적인 교사들을 성장시키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한다안정성과 역동성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재 정 문제가 핵심 사안일 것이다이는 개별 현장 차원에서 풀기 힘든 문제다공공의 지원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공공성과 자율성의 조화를 고민해야 한다비인가 대안학교 제도화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교사의 질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교사가 학원 강사와 비슷한 처지가 된 오늘날 교사에 대한 신뢰나 존경이 예전 같지 않지만예전 선생님들이 교사로서 더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담임교사가 자기 반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과외교습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라과외비를 낼 수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외였다시험문제도 당연히 과외 학생들에게 유리했다그야말로 비교육적인 행위를 태연히 하고 있었던 셈이다당시 과외는 촌지 못지않게 교사들의 주요 부수입원 이었다교사 급여가 낮을 때여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면도 있을 것이다.

교사답지 못한 교사는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다몇십만 명이나 되는 필부들 집단 속에 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촌지교사폭력 교사성추행교사별별 교사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교사다운 교사들의 공로 못지않게 그래도 교사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집단 신념에 가까운 신뢰장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순진한 아이들의 신뢰에 찬 눈빛이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잃지 않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새겨듣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학교교육은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화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역할에 충실했지만대부분의 교사들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권선징악을 가르치고 인간의 선함을 북돋우면서 공동체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그런대로 했다.

오늘날 교직에 대한 선호도는 높은 반면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교사의 자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다오히려 자질은 옛날보다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구제금융 사태 이후 최고의 인재들이 교사를 지망하고 있고 자기 분야의 전문성 또한 이전 교사들에 견줄 바가 아니다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예전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예전에는 박봉에 마지못해 교사질을 한다는 이들이 태반이었다장래희망이 교사인 학생도 별로 없었다적어도 남학생들 사이에서는그러니까 오늘날 교사의 질이 떨어져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신뢰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이 장치가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달라졌다오늘날 교사는 편의점 점원에 가깝다점원과 소비자의 관계는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상품과 화폐의 교환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면 된다아이들은 소비자로 학교에 가서 교육상품을 구매한다학원처럼 원하는 상품만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 패키지로 제공되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때문에 학생들은 되도록 대가를 덜 치르고 구매하기 위해 기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이를 두고 우치다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를 덜 내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노동을 덜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합리적인 소비행위를 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오늘날 부모들이 교사를 교육서비스업 종사자 정도로 여기는 풍토 역시 교육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학력의 전문직 부모들이 교사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향도 있다게다가 나이나 인생 경험이 더 많은 부모들은 선생님이 몰라서 그러시는데…” 하며 젊은 교사를 학생 대하듯 하기도 한다교사가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이었던 시대와 오늘날은 교사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이런 분위기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교사의 권위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신뢰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선생님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무엇보다 부모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부모가 존경하는 사람을 아이들도 존경하기 마련이다부모가 교사의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면 아이도 그 옆에 앉아 있다아이가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을 조장하는 셈이다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협력 관계에 있다팀플레이가 되어야 한다고객과 종업원 사이에 팀플레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부모라면 교사를 존경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동료로서 존중하는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교사 역시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공무원으로서 교사는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노동자’ 포지션을 갖더라도 부모와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이어야 한다.

교사는 배움의 구조가 작동되게끔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선생과 제자라는 관계가 배움의 구조를 만들어내고선생의 역할은 제자를 배움의 역동성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인간의 삶에서 배움이 사라질 수 없듯이 교육은 사라질 수 없다교사 또한 사라질 수 없는 존재다직업으로서의 교사는 사라질지라도 먼저 태어나 먼저 전체를 볼 줄 알게 된 선생(先生)의 역할은 사라질 수 없다배움의 역동성은 그런 스승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작동된다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의 태도가 제자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깨닫지 못한 스승 밑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제자가 나올 수 있는 원리가 여기 있다.




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일생의 복이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복은 아니다하지만 웬만한 사람도 아이들에게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다우치다는 선생님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신뢰 그 자체가 교육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사실 교사라고 해서 일반인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은 아니다평범한 필부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택해 교단에 선다이렇게 만들어진 교사라는 집단에 대한 신뢰는 일종의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교육이 제 기능을 하게끔 만들어진 사회적 신뢰장치라는 얘기다.

예전에 교실 앞에 놓여 있던 교단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신뢰장치가 작동되는 데 주요한 부속물이었다아이들보다 키가 큰 교사가 일어서 있기만 해도 뒷자리 아이들까지 보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교실마다 교단을 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물론 키 작은 교사들이 칠판에 판서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기능은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교사는 우러러봐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인 셈이다.

평범한 어른을 선생으로선생을 스승으로 만드는 일은 교단 같은 인위적인 장치나 제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자기보다 나이 어린 교사지만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깍듯이 모시는’ 부모교사에 대한 사 회 전체의 신뢰도가 아이들의 무의식에 선생님은 훌륭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봉투나 밝히던 교사 김봉두가 섬마을에 가서 진짜 교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선생 김봉두>는 교사라는 존재가 부모를 포함한 지역사회거기에 영향받은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로 하여금 선생님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교사의 자질도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적어도 교사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된 사람은 아니어도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 정도는 되어야 교사로서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을 것이다거기에 더해 교사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저 교사가 자기들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자신을 도와줄 사람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육의 역할이 사회화 기능이라 한다면 이는 다시 말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타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회화 과정이다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겉돌게 된다일베는 공동체를 타자로 돌림으로써 스스로 사회와 불화한다사회를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긴 하지만 그 권력의지는 방향이 잘못 잡힌 것이다공동체와 불화하는 사람은 시민성을 상실한 거다교육의 실패인 셈이다그러므로 부모와 교사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부모와 교사는 맡은 역할이 다르다부모가 교사의 역할까지 떠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교사와 부모가 같은 철학을 가지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빨간약만 권한다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빨간약과 파란약 중에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다면 네오는 매트릭스 안에서 그냥 앤더슨으로 살았을 것이다아이를 갈등 속으로 밀어 넣는 장치가 필요하다학교든 가족이든 아이를 둘러싼 어른 사회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아이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기르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교사의 역할은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지난날 권위적인 교사들이 많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권위를 지향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민주사회로 나아가면서 교사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만만한 친구 같은 교사가 꼭 바람직한 교사인 것은 아니다가까운 사람이 만만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지만교사는 부모보다 만만하지 않은먼 듯 가까운 듯 존재하는 것이 더 낫다부모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에는 교사 집단 안에서 부모 역할과 교사 역할을 나누어 맡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민주적인 교사는 아이들을 타자화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이다다른 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민주적인 공동체는 구성원 각자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자로서의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하다타자가 사라진 경지모든 존재가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달은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이들이 자기편임을 아는 정도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적으로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정도면 기본 자질은 갖춘 셈이다그 속에서 아이들은 흔들리면서 성장할 것이다


1 민들레 74호, <자기주도학습, 너의 정체를 묻는다>


현병호 발행인 

mindle1603@gmil.com


 * 격월간 민들레 1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