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워 아이들 분노까지 억누르는가 [경향신문 기고 2014.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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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7345)


아침 출근길에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볼 때면 천진한 얼굴로 세월호에 갇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이 떠오른다지금쯤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저렇게 친구들이랑 재잘거리며 학교에 가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건만…아이들 얼굴을 마주 보기가 힘들다.

 

지난주 초 전국의 초··고 학교에 교육부에서 긴급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SNS상에 악성 댓글이나 유언비어 유포 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안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반드시 종례 시 안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형과 누나친구들을 잃게 만든 죄를 엎드려 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아이들을 협박하려 드는 교육부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몇 백명의 아이들을 바닷속에 수장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는 수장당한 친구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아이들을 위협하기까지 하려는가.

 

무엇이 두려운가어른들더러 그렇게 말로만 반성하지 말고 책임을 좀 지세요!” 하고 소리칠 아이들이 두려운 것인가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배반당한 아이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을 배신감과 당혹감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그냥 좀 놔두면 안될까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닐까책임을 질 줄 아는 이라면 분노해야 할 때 마땅히 분노할 줄 알고자신이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콩코르디아호가 침몰할 때 먼저 탈출한 선장에게 야 이 ×××배로 돌아가란 말이야!” 하고 소리친 이탈리아의 해경대장은 책임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선장의 책임이 무엇인지해경대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기에 그렇게 분노할 수 있었을 것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이 없이변명과 반성과 치유의 언사들만 난무하고 있다분노조차 부실한 이 사회의 부실의 끝은 어디일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좋게 구조되어 살아난 일흔다섯 명의 아이들을 치유하는 길도 위로하고 상담하고 다독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아이들의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어른들의 부지런함은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아이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자신들의 치부를 덮으려는 행위인 건 아닐까자신의 목숨을 잃을 뻔했고숱한 친구들을 억울하게 잃은 아이들이 분노하고 울부짖을 수 있도록 놓아두면 안될까그 길이 오히려 진정한 치유의 길이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분노할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이들이 아이들이다이들의 분노를 기성세대는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타고 있는 분노의 불꽃이야말로 희망이다이 뻔뻔한 어른들에게 분노할 줄 아는 아이들이 새로운 사회의 씨앗이다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탐욕스러운 이들발뺌과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는 후안무치한 이들에 대한 분노 없이 서둘러 반성하고 치유하고 봉합하려 들지 말자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입술에 침만 바른 채 늘어놓는 사죄의 언사에 실오라기 같은 분노의 불씨마저 사그라질까봐 우려스럽다. 


[경향신문 기고 2014. 5.1]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304&artid=201404302104085


_현병호 |  ‘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