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바라보는 사람인가 등진 사람인가
세월호가 결국 침몰해버렸다. 아무도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채 침몰해
버렸다. 뻔히 두 눈으로 가라앉는 배를 그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뉴
스만 왕왕 시끄러웠다. 화면에서는 장관이니 청장이니 하는 공직자들이
바쁜 듯 상기된 표정으로 서류를 꼭 쥐고 대책을 발표하고, 빙 둘러앉아
연신 회의를 하는 모습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실은 우왕좌왕하느라 바
쁘고, 꼼수를 찾느라 바쁘고, 높으신 분 영접에 바쁘고, 그마저도 잘 맞
지도 않는 발표자료 취합해 제대로 하지도 않을 대책을 보고하느라 바쁜
줄 뻔히 아는데도, 그들은 진지하게 제 역할에 몰두하고 있다. 그 순간에
도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말이다. 대통령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역시 딱
히 하는 일은 없다. 정작 야무지게 챙겨야 할 일은 못하고, 표정만 야무지
다. 만만한 누군가를 찾아 야단치거나 무표정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 능사다. 성정이 침착한 것인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도대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매달려야 했던 부모나 가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멱살을 잡고 때려누이고 싶었
겠지만, 가족이 배 안에 인질처럼 갇혀 있는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매
달리고 애원했을 것이다. 일분일초가 급한데도 책임자들은 툭하면 “기다
리시면…”을 무슨 염불 외듯 한다. “기다리시면…”은 기다릴 수 있을 때,
기다려도 될 때나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님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결국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배는 한 치 한 치 바다 밑으로 가라앉
고야 말았다. 제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그대로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
도록 강요받는 기다림이 되고 말았다.
그 기다림을 끝으로 그들은 더 이상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이제 기다
림은 구원파의 유병언을 잡는데 활용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 대신 그럴
싸한 먹잇감을 던져놓고서 뒤로 숨어버린 지 오래다. 어쨌든 돌을 맞을
사람이 준비되었으니 그들은 여유롭다.
이번 일에서도 국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벌인 여러 사람들 덕분에 그
나마 이 정도이다. 민간잠수사들을 비롯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위로
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어 함께 아픔을 나누었다. 만약
세월호 참사가 참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사고에 불과했다면 이런 위로와
격려만으로도 시련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함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지켜봐
야 하는 고통이 어떤 건지를 공감하고 외면하지 않는 마음들이 그나마
이 거대 시스템의 냉혹함과 무능함을 덜고 있다.
시스템의 말단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구조와 위로의 모습과는 대조적으
로, 시스템의 정점에 선 자들의 말과 행동은 전혀 딴 세상 사람인 양 무
례하고 낯설기 그지없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자들은 배를 등지고
사진을 찍고, 귀한 가문의 자제라는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
고, 그 와중에도 제 잇속을 차리고 아부를 떠느라 내뱉는 말들이 가히
가관이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라는데, 대체 저들끼리 모여 무슨 말들을
하고 사는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저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은 조국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저들
은 온갖 말로 우리를 현혹하고, 우리를 앞세우지만, 실은 저들에게 우리
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가라앉는 배 안에 가족을 두고 울부짖는 사람들에
게 ‘시끄럽고 말이 많다’고 호통치고 짜증낼 만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
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당신은 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
면 배를 등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적나라하게 묻는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
다. 더 이상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저런
사람들과 함께 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저런 위험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일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저들을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가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고 싶은 곳도 없지만 어디를 갈 형편도 못되
는 것이 우리 처지다. 이 땅이 핵과 전쟁으로 망가져도, 배가 가라앉고 다
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쓰러져도 우리는 붙박이처럼 이 땅에서 살아야만
한다. 이 땅과 이 몸뚱이와 자식들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이렇게 사는 것 혹은 저런 사람들과 사
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깨달아야 할 것 같다. 하도 많은 편법과 위법
과 탈선과 위험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살아있는 게 때로 요행처
럼 느껴진다. 나랑 우리 식구는 안 죽고 살았으니, 안 잘리고 남았으니,
안 속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사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라는 말 뒤에 숨어서 내 자신을 먼저
저런 이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짓 따위는 제일 먼저 집어치워야겠다. 그러
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아무 말 안 하는 것으로 저들을 돕는 짓 따위
는 제일 먼저 그만두어야겠다. 그저 되는 일만 되고, 안 되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단순함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
야겠다. 그런 단순함으로 저 위험한 사람들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고 자
식들을 지켜내야겠다.
맞는 것을 맞다 하고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다 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지혜로워져야겠다.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엄히 그 단순함을 지키는 모습
을 보여야겠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또 이런 처참함을 다시 보게 될 것이
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다 보면 어느 틈에는 더 이상 고통과 좌절을 느끼
지도 못하는, 인간됨을 부정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위험한
때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꾸짖는데 이 힘을 쓰지는 않겠다. 대신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서로 아귀를 맞춰 나약한 개인들을
짓뭉개는 사회와 정부를 향해 자갈과 모래를 던지는데 우선 힘을 쏟겠다.
이 거대한 바퀴들이 인간을 위해 잠시 멈춰서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말
이다. 사람이 걸려도 그냥 힘으로 뭉개고 마는 악한 습성을 고칠 수 있도
록 말이다. 그리하여 제도나 사회나 국가와 같은 시스템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란 점을 우리 모두가 다시 확신할 수 있게 될 수 있도록 말
이다.
다시는 아이들에게 “말 좀 들어라”란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말은
우리가 아이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임을 알았기 때문
이다. 그런 말을 하면 아이들이 정말 죽을 때까지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이
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잘 설명하고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해야겠다. 그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고 내 생각과 비교해보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힘겨
운 과정들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그런 말들 때문에 다시는 아이들을 살아 있는 채로 물속에 가두는 그
런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겠다. 비록 힘이 들고 먼 길을 돌아오더라도 제
생각대로 우선 살아보는 아이들의 힘을 빼앗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제
편한 대로, 제가 들은 습성대로 지껄이는 그런 말들 때문에 아이들을 죽
음과 비극으로 내모는 짓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그런 무심함이 불안해지
지 않도록, 대신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겠다. 다 할 수
는 없어도 손을 대는 곳에서는 야무지고 바르게 일을 맺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다시는 아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일이 없길 바란다. 최소한
우리가 저지르거나, 우리가 묵인한 일들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
아야겠다. 좋은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
회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잘못된
일 앞에 멈춰 서서 끝까지 꼼꼼하게 책임을 따지고 묻는 사람이 되겠다.
아무 일에나 비유하고 아무 말이나 동원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
들을 경계하고 그 어떤 때에도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스스로 먼저 몸가
짐, 마음가짐을 다잡도록 하겠다. 모르면 배워 와서라도 따지고, 혼자가
어려우면 도와서 함께 따질 수 있도록 하겠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따질
수 있게 모두가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
어린 아이들부터 또박또박 무엇이든 어른들에게 먼저 따질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겠다. 생각 없이 하는 어린 아이의 말이라고 윽박지르지 않
고, 아이들이 똑똑히 따지고 들 수 있도록 애를 써야겠다. 최소한 어른들
이 저지르는 옳지 못한 일은 분명하게 따지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아이
들로 커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 참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가난하고 힘
이 약한 계층의 아이들은 특히 더 많은 사회의 위험을 떠안게 될 터이니
더욱 아이들을 대비시키는 일에 힘을 보태야겠다. 아이들의 지적을 달게
받아 책임을 다하고, 필요한 이야기에 성실히 임할 마음의 자세만 갖춘다
면 어쩌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나부터 용기 내어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일에 더 열심을 내
야겠다. 어쩌면 하나하나 따끔하게 이어지는 아이들의 지적 속에서 세월
호는 거듭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멈추어 서서 따져 물어보자
그러나 그 어떤 말로도 이 비극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
는 들어서지 말아야 할 어떤 길로 들어선 느낌이다. ‘다시 예전처럼’이란
말이 불가능해져버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수도 없이 존재한다. 상처
투성이 사회 속에 우리는 존재한다. 시스템은 돌아가는 것인지 붕괴해가
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굉음을 내고 있다.
이 순간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란 말을 붙들고 살고 있지만, 정말 어떤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다. 어쩌면 그렇게 희
망할 것이 없는 순간이어서 오직 우리들만이 희망이란 말이 더 진정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속에 있는 낯선 저들에 절망하기도 하면서,
사람만이 남았단 말처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이 오래된 말에 기대어 울
수밖에 없다. 우리도 가라앉는 배 안에서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
리는 과연 어떤 존재들인가?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고 싶어 하는가? 이미
가라앉아 흔적도 없는 배가 있던 자리 위로 무수한 질문들이 떠오르고
있다. 아무리 외면해도 절대 가라앉지 않을 질문들이다.
가던 길을 멈추어야 그 질문에 답이 나올 것이다. 이 거대한 진공관 속
으로 빨려드는 일을 멈추어야 비로소 희망이 얼굴을 내밀 것 같다. 제발
멈추어 서서 도대체 어쩌자고 그리로 들어가려 하는 것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따져 물어보자. 자신에게도 우리들에게
도 그리고 저들에게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따져보자.
우리의 아이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지.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기 you4child@hanmail.net

배를 바라보는 사람인가 등진 사람인가
세월호가 결국 침몰해버렸다. 아무도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채 침몰해
버렸다. 뻔히 두 눈으로 가라앉는 배를 그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뉴
스만 왕왕 시끄러웠다. 화면에서는 장관이니 청장이니 하는 공직자들이
바쁜 듯 상기된 표정으로 서류를 꼭 쥐고 대책을 발표하고, 빙 둘러앉아
연신 회의를 하는 모습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실은 우왕좌왕하느라 바
쁘고, 꼼수를 찾느라 바쁘고, 높으신 분 영접에 바쁘고, 그마저도 잘 맞
지도 않는 발표자료 취합해 제대로 하지도 않을 대책을 보고하느라 바쁜
줄 뻔히 아는데도, 그들은 진지하게 제 역할에 몰두하고 있다. 그 순간에
도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말이다. 대통령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역시 딱
히 하는 일은 없다. 정작 야무지게 챙겨야 할 일은 못하고, 표정만 야무지
다. 만만한 누군가를 찾아 야단치거나 무표정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 능사다. 성정이 침착한 것인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도대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매달려야 했던 부모나 가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멱살을 잡고 때려누이고 싶었
겠지만, 가족이 배 안에 인질처럼 갇혀 있는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매
달리고 애원했을 것이다. 일분일초가 급한데도 책임자들은 툭하면 “기다
리시면…”을 무슨 염불 외듯 한다. “기다리시면…”은 기다릴 수 있을 때,
기다려도 될 때나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님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결국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배는 한 치 한 치 바다 밑으로 가라앉
고야 말았다. 제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그대로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
도록 강요받는 기다림이 되고 말았다.
그 기다림을 끝으로 그들은 더 이상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이제 기다
림은 구원파의 유병언을 잡는데 활용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 대신 그럴
싸한 먹잇감을 던져놓고서 뒤로 숨어버린 지 오래다. 어쨌든 돌을 맞을
사람이 준비되었으니 그들은 여유롭다.
이번 일에서도 국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벌인 여러 사람들 덕분에 그
나마 이 정도이다. 민간잠수사들을 비롯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위로
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어 함께 아픔을 나누었다. 만약
세월호 참사가 참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사고에 불과했다면 이런 위로와
격려만으로도 시련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함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지켜봐
야 하는 고통이 어떤 건지를 공감하고 외면하지 않는 마음들이 그나마
이 거대 시스템의 냉혹함과 무능함을 덜고 있다.
시스템의 말단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구조와 위로의 모습과는 대조적으
로, 시스템의 정점에 선 자들의 말과 행동은 전혀 딴 세상 사람인 양 무
례하고 낯설기 그지없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자들은 배를 등지고
사진을 찍고, 귀한 가문의 자제라는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
고, 그 와중에도 제 잇속을 차리고 아부를 떠느라 내뱉는 말들이 가히
가관이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라는데, 대체 저들끼리 모여 무슨 말들을
하고 사는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저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은 조국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저들
은 온갖 말로 우리를 현혹하고, 우리를 앞세우지만, 실은 저들에게 우리
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가라앉는 배 안에 가족을 두고 울부짖는 사람들에
게 ‘시끄럽고 말이 많다’고 호통치고 짜증낼 만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
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당신은 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
면 배를 등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적나라하게 묻는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
다. 더 이상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저런
사람들과 함께 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저런 위험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일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저들을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가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고 싶은 곳도 없지만 어디를 갈 형편도 못되
는 것이 우리 처지다. 이 땅이 핵과 전쟁으로 망가져도, 배가 가라앉고 다
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쓰러져도 우리는 붙박이처럼 이 땅에서 살아야만
한다. 이 땅과 이 몸뚱이와 자식들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이렇게 사는 것 혹은 저런 사람들과 사
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깨달아야 할 것 같다. 하도 많은 편법과 위법
과 탈선과 위험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살아있는 게 때로 요행처
럼 느껴진다. 나랑 우리 식구는 안 죽고 살았으니, 안 잘리고 남았으니,
안 속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사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라는 말 뒤에 숨어서 내 자신을 먼저
저런 이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짓 따위는 제일 먼저 집어치워야겠다. 그러
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아무 말 안 하는 것으로 저들을 돕는 짓 따위
는 제일 먼저 그만두어야겠다. 그저 되는 일만 되고, 안 되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단순함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
야겠다. 그런 단순함으로 저 위험한 사람들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고 자
식들을 지켜내야겠다.
맞는 것을 맞다 하고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다 할 수 있도록 신중하고
지혜로워져야겠다.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엄히 그 단순함을 지키는 모습
을 보여야겠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또 이런 처참함을 다시 보게 될 것이
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다 보면 어느 틈에는 더 이상 고통과 좌절을 느끼
지도 못하는, 인간됨을 부정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위험한
때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꾸짖는데 이 힘을 쓰지는 않겠다. 대신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서로 아귀를 맞춰 나약한 개인들을
짓뭉개는 사회와 정부를 향해 자갈과 모래를 던지는데 우선 힘을 쏟겠다.
이 거대한 바퀴들이 인간을 위해 잠시 멈춰서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말
이다. 사람이 걸려도 그냥 힘으로 뭉개고 마는 악한 습성을 고칠 수 있도
록 말이다. 그리하여 제도나 사회나 국가와 같은 시스템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란 점을 우리 모두가 다시 확신할 수 있게 될 수 있도록 말
이다.
다시는 아이들에게 “말 좀 들어라”란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말은
우리가 아이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임을 알았기 때문
이다. 그런 말을 하면 아이들이 정말 죽을 때까지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이
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잘 설명하고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해야겠다. 그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고 내 생각과 비교해보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힘겨
운 과정들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그런 말들 때문에 다시는 아이들을 살아 있는 채로 물속에 가두는 그
런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겠다. 비록 힘이 들고 먼 길을 돌아오더라도 제
생각대로 우선 살아보는 아이들의 힘을 빼앗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제
편한 대로, 제가 들은 습성대로 지껄이는 그런 말들 때문에 아이들을 죽
음과 비극으로 내모는 짓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그런 무심함이 불안해지
지 않도록, 대신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겠다. 다 할 수
는 없어도 손을 대는 곳에서는 야무지고 바르게 일을 맺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다시는 아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일이 없길 바란다. 최소한
우리가 저지르거나, 우리가 묵인한 일들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
아야겠다. 좋은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
회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잘못된
일 앞에 멈춰 서서 끝까지 꼼꼼하게 책임을 따지고 묻는 사람이 되겠다.
아무 일에나 비유하고 아무 말이나 동원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
들을 경계하고 그 어떤 때에도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스스로 먼저 몸가
짐, 마음가짐을 다잡도록 하겠다. 모르면 배워 와서라도 따지고, 혼자가
어려우면 도와서 함께 따질 수 있도록 하겠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따질
수 있게 모두가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
어린 아이들부터 또박또박 무엇이든 어른들에게 먼저 따질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겠다. 생각 없이 하는 어린 아이의 말이라고 윽박지르지 않
고, 아이들이 똑똑히 따지고 들 수 있도록 애를 써야겠다. 최소한 어른들
이 저지르는 옳지 못한 일은 분명하게 따지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아이
들로 커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 참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가난하고 힘
이 약한 계층의 아이들은 특히 더 많은 사회의 위험을 떠안게 될 터이니
더욱 아이들을 대비시키는 일에 힘을 보태야겠다. 아이들의 지적을 달게
받아 책임을 다하고, 필요한 이야기에 성실히 임할 마음의 자세만 갖춘다
면 어쩌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나부터 용기 내어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일에 더 열심을 내
야겠다. 어쩌면 하나하나 따끔하게 이어지는 아이들의 지적 속에서 세월
호는 거듭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멈추어 서서 따져 물어보자
그러나 그 어떤 말로도 이 비극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
는 들어서지 말아야 할 어떤 길로 들어선 느낌이다. ‘다시 예전처럼’이란
말이 불가능해져버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수도 없이 존재한다. 상처
투성이 사회 속에 우리는 존재한다. 시스템은 돌아가는 것인지 붕괴해가
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굉음을 내고 있다.
이 순간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란 말을 붙들고 살고 있지만, 정말 어떤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다. 어쩌면 그렇게 희
망할 것이 없는 순간이어서 오직 우리들만이 희망이란 말이 더 진정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속에 있는 낯선 저들에 절망하기도 하면서,
사람만이 남았단 말처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이 오래된 말에 기대어 울
수밖에 없다. 우리도 가라앉는 배 안에서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
리는 과연 어떤 존재들인가?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고 싶어 하는가? 이미
가라앉아 흔적도 없는 배가 있던 자리 위로 무수한 질문들이 떠오르고
있다. 아무리 외면해도 절대 가라앉지 않을 질문들이다.
가던 길을 멈추어야 그 질문에 답이 나올 것이다. 이 거대한 진공관 속
으로 빨려드는 일을 멈추어야 비로소 희망이 얼굴을 내밀 것 같다. 제발
멈추어 서서 도대체 어쩌자고 그리로 들어가려 하는 것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따져 물어보자. 자신에게도 우리들에게
도 그리고 저들에게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따져보자.
우리의 아이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지.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기 you4chil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