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의 눈 밖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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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특별히 더 위험한 걸까

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종 부업이 초등학생 등하교 도우미라고 한다하루에 한두 시간 부모 대신 아이를 안전하게 등하교시키는 이 일은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고 그에 비해 시급이 높은 편이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데맞벌이 부부 중에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 울 정도란다이렇게까지 아이의 일상을 돌보지 못하면서 직장 생활에 뛰어 들어야 하는 부모 마음이 오죽할까 싶기도 하고한편 아이들 스스로는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만큼 정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위험해졌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에 따르면과거에는 인간의 존재 조건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여겨왔지만 이 시대에는 의식이 인간 존재를 규정하게 되었다. ‘위험하다는 의식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일상에서 일어나는 산발적인 사고가 각종 미디어와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일시에 알려지면서 위험에 대한 인식 또한 순식간에 확산되는 사회가 되었다이번 세월호 참사 때 드러났듯이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 방식도 위험의 실체를 부풀리거나 극단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어린 딸아이를 둔 젊은 아빠가 군대에서 발생한 폭력 사망사고를 보고는 아들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도하다가다음 날 여중생 성폭행 뉴스를 보고 다시 가슴이 철렁한다는 식이다이런 사회를 살면서 불안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고제 자식을 단속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부모라고 여겨지는 정체불명의 위험사회가 담론을 통해 구성되면서우리는 실제로 위험을 경험하는 것보다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더 많게 되었다.

극대화되고 부풀려진 위험은 우리 삶의 어두운 그늘로 들어와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불안을 채근하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인 부모들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어디든 따라다니고자신이 그 곁을 지킬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 기술의 힘을 빌리게 된다아이를 보모에게 맡기고 출근한 뒤 집안에 설치한 CCTV를 지켜보거나위치 추적과 등하교 알림문자로 아이의 동선을 일일이 확인하고앱으로 아이의 스마트폰을 통제하면서 말이다학원이든 책방이든 지역아동센터든 아이가 가는 곳마다 도착하면 문자를 달라고 요청하는 부모들이 있을 정도로 아이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이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지만하는 행동마다 어른들에게 확인 받아야 하는 아이들 마음은 어떨까딴 길로 새지 말아야 하고 정해진 동선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에 한참 왕성한 호기심을 접고부모가 원하는 대로 집-학교-학원만 뱅뱅 돌게 되지는 않을까.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지만 안전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들의 행위보호감시’ 사이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위험을 규정하는 범위가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어떤 부모에게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친구 사이에 못 어울리는 것좋은 대학에 못 가고좋은 직장에 못 다니는 것시시한 결혼 상대를 만나는 것까지가 모두 위험 요소이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나친 책임감 속에는 아이의 삶을 제어하고 통제할 권리가 부모 자신에게 있다는 착각이 혼재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세계가 자라는 시간

자식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어져온 부모들의 심리다이전 세대 부모가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기껏해야 아이 몰래 일기장을 들추거나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훔쳐보고전화 통화를 엿듣는 정도였다그러다 뭔가 통제해야 할 행동이 레이더망에 잡히면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고그래도 안 되면 강제로 머리를 빡빡 밀거나라푼젤처럼 방에 가두어 못 나가게 하는 폭력적인 방법을 썼는데그 이유는 다만 그것보다 세련되고 교양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은 세밀하고 정교하게 발달한 기술이 부모들의 알고 싶은 욕구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는 덕분에 예전처럼 무식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자녀를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아이의 생각이나 의지를 바꾸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사람의 욕구는 금지할수록 상승하며그 틈을 빠져 나가는 방법이 혁신적으로 진화할 뿐이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음을 아는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관점에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아이들의 호기심은 타협으로 변형되어서, “내가 이것을 궁금해 하는가와 같은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실세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순종적이고 착한 아이들일수록 자기 욕구를 감추고지켜보는 어른이 만족할 만한 욕구에 자신을 맞춘다지켜보는 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어른들의 눈길을 교묘히 피한 아이들에게는 뭔가 대단한 일탈이 있을 것 같지만생각보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친한 친구를 불러서 놀거나 밤늦게까지 마음껏 텔레비전을 보거나 할 뿐인데그냥 어른이란 존재가 없다는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신이 나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어른은 불안해한다특별히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모든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다른 시선으로부터 차단되어 오롯이 혼자 있을 때의 평화로움이나 해방감을 느끼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고독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은 어린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엄마와 산책을 하던 다섯 살짜리 아이가 해 저무는 강가에 말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중학교 1학년이나 된 아이들이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뒷산에 올라가 수풀을 헤치고 땅굴을 파서, ‘어른들이 모르는’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다네댓 살 된 아이가 혼자 중얼거리는 걸 두고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부모들도 많은데그건 내면에서 인간관계를 일구고 있는 중이라 심하지 않다면 방해하지 말고 두어야 한다일인다역에도 능한 이 내면의 독백은 현실에서 미처 풀지 못한 대화를 연습하는지극히 당연한 발달 과정이다그렇게 어른들 눈을 피해서부모들이 안 볼 때 아이들 내면의 세계는 무럭무럭 자란다.

어른들이 그렇게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고유한 내면은 안타깝게도 어른이 간섭하지 않는 자리에 존재한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내면을 형성하기 위해 아이들은 틈만 나면 자기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열심히 찾는다넓은 곳을 놔두고 구석에 짱박혀서’ 노는 어린이들의 이런 은밀한 심리를 잘 알고 있던 건축가 정기용 씨는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할 때 곳곳에 숨어들어갈 수 있는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 공공기관에서도 아이들의 사적인 영역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참 신기하게도어릴 적 뛰어놀던 기억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 속엔 아이들밖에 없다어른들은 밭에 있거나가게에 있거나회사에 있거나제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고아이들은 저들끼리 모여 놀다가 싸움박질도 하고그러다 화해하기도 하면서 해가 지도록 뛰어놀며 자랐다그런데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놀이터 풍경은 놀이 기구 주변으로 어른들이 빙 둘러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틈틈이 아이들을 힐끔거리는 것이다아이의 행동이 포위망에 걸려들었을 때 던지는 지시어는 주로 뭘 하지 말라는 소리인데, “(더러우니눕지 마!”, “(위험하니뛰지 마!”, “(친구와싸우지 마!” 같은 말 속에 아이들에게 허용되는 건 딱 한 가지다. “재밌게 놀라” 는 것(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재밌기란참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다). 때로는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다가 왜 쟤랑은 안 놀아같이 사이좋게 놀아야지!” 하 면서 아이들 관계에 적극 개입하는 부모도 있다소외된 아이 없이 두루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선의의 교육적 접근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 또한 맘대로 놀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일 뿐이다.


다시4.jpg                                                                                                                         일러스트(혜빈)

 

제 삶을 살아보게 내버려두기

항상 어른이 곁에서 버티고 있어야 할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존재지만아이들은 생각보다 용감하고 생각보다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 강하다오히려 어른이 없을수록 아이는 자기 삶에 책임감을 느끼며위험 상황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내가 여행길에서 만난 아이들동생을 데리고 강가에 나와 제 손으로 빨래를 하던 필리핀 소녀나 히말라야 중턱에서 야크 떼를 진두지휘하던 네팔의 여덟 살 소년은 어린 나이에도 제 역할을 해내는 위풍당당함을 보여주었다이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살아 갈 기회를 얻었고 그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것뿐인데과잉보호 문화에 익숙한 타국의 어른이 지레 연민의 눈으로 아이고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서른이 넘은 딸의 회사에서 내준 숙제를 아버지가 대신 해주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니 말이다.

살다보면 그리워지는 어린 시절이 있다내겐 혼자 돌아오는 하굣길이 그렇다버스에 내려서도 삼십 분 넘게 걸어 들어가야 했던어린아이에게는 너무 먼 시골길이었다버스를 잘못 타서 눈물을 쏟기도 하고차비를 잃어버려 두어 시간 걸어오기도 하고집에 도착할 시간을 계산해 머릿속으로 한편의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하면서험난한 세상에 혼자 서는 법을 배웠다어른이 되고 보니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학교를 오가면서 보냈던 그 혼자만의 시간이 내겐 빛나는 삶의 보물이 되었다.

요즘 세상에 혼자 먼 길을 걸어본 아이가 있을까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오롯이 자기의 무게를 등에 지어본 아이가 있을까학원 뺑뺑이 도는 것 말고어른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정해진 놀이 말고어른이 된 이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까.

아이들을 옭아매는 현실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지금은 어른들의 숨 막히는 통제에 발버둥 치며 저항이라도 하지만언젠가는 그것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놀고 싶은 마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어른이란 존재가 우뚝 서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이 사라진 그들만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장희숙 (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