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든 그곳에 당신의 발자국을 새길 수 있기를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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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전국에 바람이 일고 있는 ‘마을 만들기’,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슬픈 시대를 넘어설 묘약으로 이만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사실 ‘마을 만들기’란 말이 좀 어폐가 있긴 합니다. 마을이란 게 그렇게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언제, 누가 시작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몰라야 제대로 ‘마을 만들기’일 테니까요. 

‘마을 만들기’의 대명사로 떠오른 성미산마을만 해도 그렇습니다. 곁에 살면서 지켜본 제 기억에도, 

성미산마을이 사실 처음부터 ‘마을 만들기’ 운운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어린이집을 찾다가, 아무리 둘러봐도 딱 맘에 드는 게 없으니 

그럼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우리어린이집’이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었고, 

같이 마음 모아 아이를 키우려니 가까이 모여 살아야 하고, 그러자니 자연스레 같은 동네에 터를 잡았습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터를 잡는다고 그게 온전히 내 터가 되는 건 아니지요. 

그래도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앞집뒷집으로 전세 살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다 아예 눌러 앉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먼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진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 동네에 문제가 있으면 삼삼오오 모여 의논도 하고, 힘을 모아 같이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함께 동네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게 누군가 그렇게 처음 그림을 그려놓고, 자, 이제 이것부터 해보자 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서로 가까이 있어 좋으니까 그렇게 계속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이지요. 



마을은 바로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한 시간과 공간의 총체’일 것입니다.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는 그런 게 아닌. 그런 점에서 마을과 사람은 닮은꼴입니다. 

내가 보낸 시간과 공간의 총체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까요. 민들레가 마을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인간의 배움과 성장은 그의 일상적 시간과 공간이 있는 마을에서 이뤄진다는, 이 자명한 사실 때문입니다. 

이번호에서는 이것이 왜 자명한 일인지, 마을 담론에서 잊지 말아야 할 쟁점들이 무엇인지를 살폈습니다. 

각자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 교육과는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작은 이정표 노릇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오늘 어디 계시든 부디 그곳에 발자국을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아 있는 이들의 흔적을 생각하며 자신의 일상을 가꾸고 동네를 일궈 가시길 빕니다. 

당신의 발자국이 새겨진 동네와 우리 동네가 만나고, 또 다른 당신의 동네가 연결되고, 

마침내 우리는 ‘아주 큰 마을’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런 대찬 꿈을 꿉니다. 


- 엮은이 김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