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강화해도 학력이 오르지 않는 까닭

조회수 1376

세가지_copy.jpg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력 향상은 경쟁을 통해서 달성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확실히 개인의 학력은 경쟁을 통해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가르치면,

아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기 혼자만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나머지는 자기보다 무능한 상태를 이상적

인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상대적’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경쟁에서 이긴다’에 한정해서 보자면 자신의 학력

을 올리는 것과 경쟁 상대의 학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

이들은 ‘자신의 학력을 올리는 노력’에 상응하는 노력을 ‘경쟁 상대의 학력을 떨어뜨리는’ 일에 투여합

니다. 물론 태반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은 실로 바지런히 경쟁 상대의 지적 성취도 향상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가령 학원에서 선행학습

을 한 아이는 학교에서 종종 자신이 이미 배운 단원의 수업을 방해합니다. 수업 중에 돌아다니거나 노래

를 부르고, 옆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보통은 ‘이미 알고 있어서 재미없어 한다’고 해석합니다만

아닙니다. 그들은 수업을 방해함으로써 경쟁 상대의 학력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있는 대학은 센터시험(한국의 수학능력시험_역자 주) 장소를 제공하고 있어서 시험감독을 하는 경

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해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큰소리로 떠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참

고서에 밑줄 그으며 공부하고 있는 다른 수험생들을 방해하는 풍경을 봅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자기가

그런 야비한 일을 하고 있다고 깨닫지 못합니다. 그만큼 짧은 휴식시간을 이용해서라도 경쟁 상대를 방

해하는 태도가 그들에게 체화된 겁니다.

 

경쟁으로 학력 향상을 도모하려는 전략은 결과적으로 모두가 서로의 다리를 잡아당기는 상황을 낳습니다.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모두의 학력은 끝없이 추락해갑니다.

일본 아이들의 학력 저하는 대학진학률 상승, 글로벌화 진행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

에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경쟁이 격화되고, 한 가지 측정법을 적용한 등급 매기기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

게 되면 ‘무슨 수로 경쟁 상대의 학력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하는 전략 세우기에 지적 자원 배분이 편향되

는 건 당연합니다.

자신의 학력을 올리려는 노력은 자기 혼자에게만 해당되지만 타인의 학력을 떨어뜨리려는 노력, 예를 들어

잡담을 해서 교사를 화나게 하는 것은 반 전체의 학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비용효과로 보자면 경쟁 상대

의 학력을 떨어뜨리는 편이 압도적으로 경제적입니다. 무엇이든 창조하는 것은 힘들지만 파괴하는 것은 간

단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경쟁을 강화해도 학력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일본처럼 닫힌 상황, 한정

된 구성원들 사이의 ‘실험쥐경주’에서 우열을 정하는 한, 학력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떨어질 따름입니다. 학

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있는 곳과는 다른 장소,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필수적입니다. <황야의 7인>

에서는 산적이, <대탈주>에서는 독일군 간수가 주인공들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진지하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결함을 메우지 않으면 ‘바깥’을 상대로 한 프로젝트

-산적 퇴치, 포로수용소 탈주-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맡아줄 친구에

겐 깊은 경의를 표시하고 가능한 한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본래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떻게 서로를 도울까, 어떻게 서로 지원할까,

어떻게 혼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큰일을 함께 달성할까, 우선 이를 위해 필요한 인간적 능력을 키우는

데 교육 자원을 집중시켜야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오히려 어떻게 친구의 다리를 잡아당길까, 어떻게 하

면 다른 사람을 따돌리고 혼자만 좋은 것을 가질까 같은 ‘야비한 매너’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

니다.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요컨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교사가 그런 화법을 노골적으로 사용

하지 않아도 아이는 압니다. 그렇게 해온 결과 ‘이런 식으로’ 돼버렸습니다. 이제 ‘그런 것’은 그만두어야 할

때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교사를 춤추게 하라』, 102~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