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이야기 한 토막.
십이 년 전, 민들레출판사는 주차장 옆 15평 남짓한 반지하 공간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책상 몇 개와 큰 테이블 하나, 벽면에 놓인 허름한 소파,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싱크대. 그 초라
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책을 보고 찾아오는 어른들 속에 한두 명 아이들이 섞여
오더니 어느 날부터 아이들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득한 거짓과 위선을 참을 수
없어 뛰쳐나온 아이들이 학교 대신 민들레를 찾아와서는 한켠에서 노닥거리다 발송 작업을 거
들기도 하면서 어느덧 사무실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삼아버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소파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야, 좀 조용히 해라, 우리 일해야 된
다"는 출판사 어른의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점심 때가 되면 같이 식사 준비를 했다. 파를 다듬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지었다. 흥부네 밥상마냥 여남 명이 둘러 앉아서는 세상 돌아가
는 이야기를 반찬 삼아 밥을 먹곤 했다.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책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로
그 좁은 공간에는 늘 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작은 공간의 테이블은 100분 토론의 장이었다가 고
민 상담소였다가 금방 밥상이 되기도 하고 또 요긴한 작업대가 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고 책을 만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진로, 가족과의 문제를 푸느라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사무실은 어느새
배움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 만남은 '민들레사랑방'으로 진화했다. 출판사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더 이상 15평 사무실
이 감당할 수 없어, 따로 아이들만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붙인 이름이었다. 그저 사랑방 놀러
오듯 편하게 들러 이야기도 나누고 혹 배울 게 있으면 서로 자극해가면서 함께 성장해가자는 의도였
다. 사랑방은 나중에 '공간민들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랑방뿐만 아니라 안방도 필요한 이들이 있어
서였다. 아직 제 집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꼭 마음에 드는 곳에 깃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만은 챙겨야지 하는 것들이 있다. 오래전 15평 남짓한 공간에 있던 것들이다. 소
파에 앉아 듣기만 하는 아이도 열변을 토하는 아이도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 책상이 되었다 작업대가
되었다 토론대가 되기도 하는 테이블, 쉴 수 있는 소파, 따뜻한 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내는 싱크대, 가
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사는 어른들. 이들이 모두 배움터 민들레의 핵심 요소들이다.
-김경옥, <민들레> 78호, 44쪽
옛날 이야기 한 토막.
십이 년 전, 민들레출판사는 주차장 옆 15평 남짓한 반지하 공간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책상 몇 개와 큰 테이블 하나, 벽면에 놓인 허름한 소파,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싱크대. 그 초라
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책을 보고 찾아오는 어른들 속에 한두 명 아이들이 섞여
오더니 어느 날부터 아이들 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득한 거짓과 위선을 참을 수
없어 뛰쳐나온 아이들이 학교 대신 민들레를 찾아와서는 한켠에서 노닥거리다 발송 작업을 거
들기도 하면서 어느덧 사무실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삼아버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소파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야, 좀 조용히 해라, 우리 일해야 된
다"는 출판사 어른의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점심 때가 되면 같이 식사 준비를 했다. 파를 다듬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지었다. 흥부네 밥상마냥 여남 명이 둘러 앉아서는 세상 돌아가
는 이야기를 반찬 삼아 밥을 먹곤 했다.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책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로
그 좁은 공간에는 늘 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작은 공간의 테이블은 100분 토론의 장이었다가 고
민 상담소였다가 금방 밥상이 되기도 하고 또 요긴한 작업대가 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고 책을 만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진로, 가족과의 문제를 푸느라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사무실은 어느새
배움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이 만남은 '민들레사랑방'으로 진화했다. 출판사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더 이상 15평 사무실
이 감당할 수 없어, 따로 아이들만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붙인 이름이었다. 그저 사랑방 놀러
오듯 편하게 들러 이야기도 나누고 혹 배울 게 있으면 서로 자극해가면서 함께 성장해가자는 의도였
다. 사랑방은 나중에 '공간민들레'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랑방뿐만 아니라 안방도 필요한 이들이 있어
서였다. 아직 제 집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꼭 마음에 드는 곳에 깃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만은 챙겨야지 하는 것들이 있다. 오래전 15평 남짓한 공간에 있던 것들이다. 소
파에 앉아 듣기만 하는 아이도 열변을 토하는 아이도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 책상이 되었다 작업대가
되었다 토론대가 되기도 하는 테이블, 쉴 수 있는 소파, 따뜻한 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내는 싱크대, 가
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사는 어른들. 이들이 모두 배움터 민들레의 핵심 요소들이다.
-김경옥, <민들레> 78호,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