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교육이 아니다
2천년대 들어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아 프랑스 찍고 핀란드 찍고 덴마크까지 갔는데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유럽 선진국의 교육을 아무리 돌아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교육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지정학이 결정한다. 서유럽 같으면 먹고살 길이 열려 있다. 지중해와 북해 주변 나라들끼리는 언어 장벽이 높지 않고 국경이 개방되어 자기 나라에서 길이 안 보이면 다른 나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인구밀도도 그다지 높지 않고 낙농업, 어업 등 1차산업이 발달해 굳이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자리 얻기가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의 변방에 자리 잡은 한국처럼 자원도 없고 고립된 나라에서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으므로 국가도 개인도 교육에 올인하게 된다.
교육을 개혁함으로써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입시교육 문제는 온 나라가 교육에 올인함으로써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교육에 올인하게 된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국공립대 통폐합 같은 고강도 개혁이 이루어진다 해도 학력·학벌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상위권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여전할 것이다. 지역별 거점대학이 만들어지면 수도권 쏠림 현상이 완화되고 지역균형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에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길이 넓어져야 교육 문제도 해결된다.
교육만이 살 길이라며 올인하는 교육만능주의는 내부를 쥐어짜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밤잠을 잊고 인적자원을 개발해 근대화를 이루고 그럭저럭 먹고살 만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망가졌다. ‘자원’ 취급을 받은 아이들이 망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몇 해 전 학원가에 무려 11년짜리 선행교육 상품이 등장했다는 것은 더 이상 내부를 쥐어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최근에는 초등 의대반이 개설되어 고등학교 수학과정을 가르친다고 한다. 합계출산율 0.72는 그 결과인 셈이다. 더 이상 교육(대학입시)이라는 좁은 길에 몰려 서로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열어야 한다.
1차산업에 눈을 돌리자
한국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과 서비스업의 3차산업에 비해 1차산업은 50년 전과 별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로봇과 자동화 기술로 인해 2차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서비스업은 경쟁이 지나치다. 머지않아 의사나 변호사 일도 AI가 대신하게 될 전망이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오히려 1차산업 일자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먹어야 산다. 농업, 수산업 같은 1차산업의 중요성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산업과 농업, 임업이 청년 일자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농업은 수산업 못지않게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경험에 기반해 농사를 짓는 소농 중심의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촌진흥원이 개량 종자나 영농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기도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의 발 빠른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화강암이 풍화된 한반도의 토양은 토질이 나쁘고, 평지가 넓지 않아 기계화도 힘들다. 미국이나 우크라이나처럼 토질 좋은 농업국가와의 비교우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중국도 우리보다 토질이 좋고 인건비가 낮아 중국산 농산물과의 경쟁에서도 밀린다.
농촌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가구가 늘고 유휴 농지도 늘고 있지만 농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청년 귀농 사례가 없지는 않으나 개인의 결단이지 사회적 수준의 대안은 아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농지를 보존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지만 젊은이들을 억지로 농사꾼이 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업의 세대 교체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먹거리를 미국과 중국에, 외국인 노동자들 손에 계속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업에 비해 어업은 좀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땅은 좁지만 바다는 넓다. 해양강국의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자라나는 세대가 바다와 친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3면이 바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우리 아이들은 바다와 그리 친하지 않다. 바다에서 자기 길을 찾으려는 젊은이도 드물다. 어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선박을 임대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낙후된 선박으로 목숨을 걸고 고기잡이에 나설 청년들은 거의 없다. 어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새우잡이배나 원양어선에 관한 소문은 인생막장 같은 느낌을 준다. 국가 차원에서 수산업의 선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도 않았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렸던 해양강국의 그림을 이후 어떤 정부도 이어받지 않았다.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나 유조선과 군함 같은 대형 선박을 만들 뿐 어선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어선 등을 건조하는 소형 조선소가 전국에 200여 곳이 있지만 수공업 수준의 영세한 업체들이다. 연안 어선은 통통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강국’의 민낯이다. 이제라도 중소형 조선소를 업그레이드해 어선의 현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는 다양한 해양산업을 북돋는 일이자 다음세대의 미래를 여는 일이기도 하다. 북유럽에 가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교육이 아니라 수산업을 비롯한 해양산업이다.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위)와 우리나라 어선청년임대사업에 등록되어 있는 배(아래)
‘조선 강국’의 민낯
3천 톤이 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는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선원 복지시설이 크루즈에 버금간다.1) 선원의 소득도 대졸 회사원 이상이다. 힘들게 대학을 나와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는 것보다 바다 위에서 자기 길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에 비해 우리 어선은 규모가 노르웨이 어선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칠뿐더러 선원 복지시설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로서 전혀 매력이 없다. 그러니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에 의지하는 영세한 어업 수준에 머문다.

노르웨이 어촌의 모습. 배의 규모나 마을 풍경이 한국 어촌 풍경과 사뭇 다르다. ⒸEBS
지난해 11월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금성호는 129톤 규모로 고등어잡이 배 중 큰 편에 속한다. 선원 27명(그중 11명이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중 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었다. 공사장이나 공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경우만 산재가 아니다. 해양 사고로 해마다 천 명 안팎의 선원들이 사고를 당하며,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 처리되는 실종자가 20명 안팎이다. 사고의 주원인인 선체 불량이나 운항 미숙, 기상악화 같은 조건들은 노르웨이 어선 규모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10여 명의 선원이 승선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 한 척이 우리나라 어선 10척 이상의 생산성을 올린다. 어선을 현대화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뿐더러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수산업 현대화의 장기 플랜을 마련하여 적절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2) 수산업과 농업 등 낙후된 분야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교육 문제를 푸는 길이자 인구감소 시대를 대비하는 길이다. 기술도 있고 돈도 있으니 국정을 맡은 이들이 제대로 하기만 하면 일이십 년 안에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변방의 한계를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변방의 한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노무현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큰 그림을 그렸으나 그 후 국제 정세와 정치인들의 계속된 ‘삽질’로 그림을 망치고 말았다. 길이 영영 막힌 것은 아니나, 독일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처럼 외교에 천재적인 지도자가 등장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육로는 막혔지만 다행히 바닷길은 열려 있다. 동해와 서해, 남해를 내해처럼 여길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근해를 넘어 태평양을 무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세대를 길러내야 한다.
바닷길 말고도 변방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더 넓은 길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닦아놓은 ‘온라인’이라는 길이다. 젊은 세대에게 더 익숙한 길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이 길을 통해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한국 문화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대에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끼 있는 아이들은 문화판에서 놀게 하고, 바다에서 놀 아이들은 바다에서 놀게 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공부하게 하자. 이들을 모두 입시라는 좁은 길에 몰아넣고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지 말고 넓은 곳에서 마음껏 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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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BS 세계테마기행이 2023년 11월에 방영한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는 대중적인 교양 프로그램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선주들이 어업협동조합을 결성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형 선박을 발주해 운항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_ 현병호(민들레 발행인)
문제는 교육이 아니다
2천년대 들어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아 프랑스 찍고 핀란드 찍고 덴마크까지 갔는데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유럽 선진국의 교육을 아무리 돌아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교육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지정학이 결정한다. 서유럽 같으면 먹고살 길이 열려 있다. 지중해와 북해 주변 나라들끼리는 언어 장벽이 높지 않고 국경이 개방되어 자기 나라에서 길이 안 보이면 다른 나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인구밀도도 그다지 높지 않고 낙농업, 어업 등 1차산업이 발달해 굳이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자리 얻기가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의 변방에 자리 잡은 한국처럼 자원도 없고 고립된 나라에서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으므로 국가도 개인도 교육에 올인하게 된다.
교육을 개혁함으로써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입시교육 문제는 온 나라가 교육에 올인함으로써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교육에 올인하게 된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국공립대 통폐합 같은 고강도 개혁이 이루어진다 해도 학력·학벌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상위권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여전할 것이다. 지역별 거점대학이 만들어지면 수도권 쏠림 현상이 완화되고 지역균형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에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길이 넓어져야 교육 문제도 해결된다.
교육만이 살 길이라며 올인하는 교육만능주의는 내부를 쥐어짜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밤잠을 잊고 인적자원을 개발해 근대화를 이루고 그럭저럭 먹고살 만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망가졌다. ‘자원’ 취급을 받은 아이들이 망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몇 해 전 학원가에 무려 11년짜리 선행교육 상품이 등장했다는 것은 더 이상 내부를 쥐어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최근에는 초등 의대반이 개설되어 고등학교 수학과정을 가르친다고 한다. 합계출산율 0.72는 그 결과인 셈이다. 더 이상 교육(대학입시)이라는 좁은 길에 몰려 서로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열어야 한다.
1차산업에 눈을 돌리자
한국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과 서비스업의 3차산업에 비해 1차산업은 50년 전과 별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로봇과 자동화 기술로 인해 2차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서비스업은 경쟁이 지나치다. 머지않아 의사나 변호사 일도 AI가 대신하게 될 전망이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오히려 1차산업 일자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먹어야 산다. 농업, 수산업 같은 1차산업의 중요성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산업과 농업, 임업이 청년 일자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농업은 수산업 못지않게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경험에 기반해 농사를 짓는 소농 중심의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촌진흥원이 개량 종자나 영농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기도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의 발 빠른 기술혁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화강암이 풍화된 한반도의 토양은 토질이 나쁘고, 평지가 넓지 않아 기계화도 힘들다. 미국이나 우크라이나처럼 토질 좋은 농업국가와의 비교우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중국도 우리보다 토질이 좋고 인건비가 낮아 중국산 농산물과의 경쟁에서도 밀린다.
농촌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가구가 늘고 유휴 농지도 늘고 있지만 농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청년 귀농 사례가 없지는 않으나 개인의 결단이지 사회적 수준의 대안은 아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농지를 보존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지만 젊은이들을 억지로 농사꾼이 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업의 세대 교체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먹거리를 미국과 중국에, 외국인 노동자들 손에 계속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업에 비해 어업은 좀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땅은 좁지만 바다는 넓다. 해양강국의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자라나는 세대가 바다와 친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3면이 바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우리 아이들은 바다와 그리 친하지 않다. 바다에서 자기 길을 찾으려는 젊은이도 드물다. 어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선박을 임대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낙후된 선박으로 목숨을 걸고 고기잡이에 나설 청년들은 거의 없다. 어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새우잡이배나 원양어선에 관한 소문은 인생막장 같은 느낌을 준다. 국가 차원에서 수산업의 선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도 않았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렸던 해양강국의 그림을 이후 어떤 정부도 이어받지 않았다.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나 유조선과 군함 같은 대형 선박을 만들 뿐 어선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어선 등을 건조하는 소형 조선소가 전국에 200여 곳이 있지만 수공업 수준의 영세한 업체들이다. 연안 어선은 통통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강국’의 민낯이다. 이제라도 중소형 조선소를 업그레이드해 어선의 현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는 다양한 해양산업을 북돋는 일이자 다음세대의 미래를 여는 일이기도 하다. 북유럽에 가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교육이 아니라 수산업을 비롯한 해양산업이다.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위)와 우리나라 어선청년임대사업에 등록되어 있는 배(아래)
‘조선 강국’의 민낯
3천 톤이 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는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선원 복지시설이 크루즈에 버금간다.1) 선원의 소득도 대졸 회사원 이상이다. 힘들게 대학을 나와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는 것보다 바다 위에서 자기 길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에 비해 우리 어선은 규모가 노르웨이 어선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칠뿐더러 선원 복지시설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로서 전혀 매력이 없다. 그러니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에 의지하는 영세한 어업 수준에 머문다.
노르웨이 어촌의 모습. 배의 규모나 마을 풍경이 한국 어촌 풍경과 사뭇 다르다. ⒸEBS
지난해 11월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금성호는 129톤 규모로 고등어잡이 배 중 큰 편에 속한다. 선원 27명(그중 11명이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중 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었다. 공사장이나 공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경우만 산재가 아니다. 해양 사고로 해마다 천 명 안팎의 선원들이 사고를 당하며,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 처리되는 실종자가 20명 안팎이다. 사고의 주원인인 선체 불량이나 운항 미숙, 기상악화 같은 조건들은 노르웨이 어선 규모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10여 명의 선원이 승선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 한 척이 우리나라 어선 10척 이상의 생산성을 올린다. 어선을 현대화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뿐더러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수산업 현대화의 장기 플랜을 마련하여 적절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2) 수산업과 농업 등 낙후된 분야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교육 문제를 푸는 길이자 인구감소 시대를 대비하는 길이다. 기술도 있고 돈도 있으니 국정을 맡은 이들이 제대로 하기만 하면 일이십 년 안에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변방의 한계를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변방의 한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노무현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큰 그림을 그렸으나 그 후 국제 정세와 정치인들의 계속된 ‘삽질’로 그림을 망치고 말았다. 길이 영영 막힌 것은 아니나, 독일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처럼 외교에 천재적인 지도자가 등장하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육로는 막혔지만 다행히 바닷길은 열려 있다. 동해와 서해, 남해를 내해처럼 여길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근해를 넘어 태평양을 무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세대를 길러내야 한다.
바닷길 말고도 변방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더 넓은 길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닦아놓은 ‘온라인’이라는 길이다. 젊은 세대에게 더 익숙한 길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이 길을 통해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한국 문화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대에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 끼 있는 아이들은 문화판에서 놀게 하고, 바다에서 놀 아이들은 바다에서 놀게 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공부하게 하자. 이들을 모두 입시라는 좁은 길에 몰아넣고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지 말고 넓은 곳에서 마음껏 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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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BS 세계테마기행이 2023년 11월에 방영한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는 대중적인 교양 프로그램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선주들이 어업협동조합을 결성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형 선박을 발주해 운항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_ 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