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 부서지는 아이들의 마음 곁에서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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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발간한 《민들레》 가을호 제목은 ‘부서지는 아이들의 마음’이다. 책 제목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번은 특히 그랬다. 너무 은유적이면 주제를 알아채기 어렵고 너무 직설적이면 딱딱하게 느껴지는데, 이 둘을 피해 적절한 제목을 찾기가 힘들었다. 청소년의 늘어가는 정서위기 행동, 우울증과 공황장애, 자살률, 정신과 진료와 상담… 이 현상을 열다섯 글자 안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정신건강 악화’ 같은 노골적인 단어를 쓰고 싶진 않아서 장고 끝에 다소 마음에 차지 않는 제목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최근 몇 년간, 심리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에 관한 여러 통계와 기사가 체감을 뒷받침해주긴 했지만, 개인적 경험으로 전체를 단정하지 않으려면 근거가 더 필요했다. 대안학교라서 그런 것 아닌가. 수도권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질문을 던지며 자료도 찾아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현장의 교사들에게 묻곤 했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교사들의 반응은 내 체감과 비슷했다. 


교육계에서도 심각성을 느끼고 이 문제를 중히 다루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기존의 위기학생 선별과 치료 중심 지원에서 나아가, 학생의 마음건강을 학교교육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올해부터 정신건강 전문가 긴급지원팀을 확대하고, 치료비와 전문기관 상담비를 지원한다. 모든 학교에서 사회정서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시행하고, 지난 6월에는 15개 부처가 협력하는 범정부 차원의 청소년 자살예방 대책도 발표했다.

학교 안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미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2023년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서는 학교를 그만둔 이유로 ‘심리·정신적인 문제’가 가장 높았다.(31.4%) 학기 초가 되면 대안학교 입학 문의가 늘어난다. 대개 “아이가 (일반학교를) 힘들어해서”로 시작되는 사연이다. 대안학교 지원자 중엔 소위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서 정원이 미달인데도 지원자 모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현상은 공교육이 대안교육을 대체제 또는 보완재로 소비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안교실, 위스쿨의 기능도 그러하거니와 공립 대안학교 또한 ‘문제 있는 아이들이 가는 곳’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들 사이에는 아예 치유 전문학교로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시대적 요구를 받아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기르고자 하는 기존의 대안학교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자의든 타의든 자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 아이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를 품고 낯선 공간을 찾아온다. 그 마음을 알아봐주고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고 상처를 치유한다. 치료나 상담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많은 아이들이 대안학교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것은, 그곳에서 작은 단위의 인간적인 만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정신건강 치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개는 전문가를 만나 상담하고 진단받고 약물치료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아이가 진료실을 나선 뒤 돌아가는 곳은 결국 사람들의 세계다. 가족과 친구, 교실과 학교, 동네와 사회. 아이를 둘러싼 그 세계를 그대로 두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발원지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잠재우는 약이 그 세계를 바꾸지 못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갈 아이의 사회성을 담보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다. 따뜻한 돌봄, 안전한 공동체, 충분한 놀이, 깊은 인간관계 같은 것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벨 훅스는 『올 어바웃 러브』에서 사랑이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돌봄과 책임, 존중, 신뢰, 헌신, 상대를 알아가는 실천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 정책도 필요하고 치료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마음이 무너질 때 곁에서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전에, 자라나는 마음을 모질게 부셔버리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아이를 둘러싼 관계와 공동체를 다시 살피는 일에서 시작된다.


_장희숙(민들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