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시간. 나리는 서둘러 교과서를 편다. 연애 능력평가 시험에서도 연애편지 과목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늘 나갈 진도는 근대 연애편지 대목이다. 몇 십 년 전부터 교과서에 변함 없이 실리고 있는 연애편지 한 편을 공부한다.
한국 근대 연애편지의 백미로 알려진 이 작품은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작품이다. 교사는 이 편지의 도입부와 전개부, 고조부, 여운부, 단락 단락을 나눠서 각 문장에 쓰인 비유법과 과장법 따위를 시시콜콜 물어본다. '호수 같은 눈'이 직유법인지 은유법인지 나리는 자꾸 헷갈린다. 아이참…. 나리는 교사가 시키는 대로 밑줄을 긋고는 직유법이라고 쓴다는 게 그만 '아이참'이라고 썼다가 서둘러 지우고 다시 쓴다.
사실 나리는 아직 한번도 제대로 연애편지를 써보지 않았다. 습작을 몇 번 써보긴 했지만 숙제로 쓴 것일 뿐이다. 진짜 연애는 아직 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생 중에도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들었다. 다들 연애편지 과목 시험을 보고 나면 정작 편지 따위는 거들떠보기도 싫어지는 데다, 그런 편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제 더 이상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누구도 연애편지 과목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다른 반에 비해 진도가 늦다면서 교사는 오늘 따라 속도를 낸다. 편지 분석을 끝내고는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연시(戀詩)로 넘어간다. 어떤 중이 쓴 연시라고 한다. 중이 연애를 하다니 땡중이 아닐까 싶은데, 교과서에까지 실린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이 시에서 가리키는 '님'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교사는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문제라면서 '님'자에 밑줄을 긋고는 그 아래에 '조국'이라고 쓴다. '불쌍한 중이네. 연애를 조국이랑 하다니…' 나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교과서 안에다 '조국'이라고 써넣고는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둔다.
나리는 어제 남자친구 혁이랑 같이 본 영화가 자꾸만 생각난다. 연애센터를 나서자 말자 공중화장실에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영화관으로 갔었다. 산딸기2. 미성년자 입장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혁이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섰다. 혁이가 대학생처럼 보이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운 나쁘게 연애센터 교사를 만나면 근신 처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덕분에 스릴까지 느낄 수 있어서 더 짜릿한 재미가 있다.
가끔 연애센터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가기도 하지만, 주로 잘못된 연애에 빠져서 인생을 망친 여자들이 나오는 계몽영화여서 끝까지 보고 있기가 지루할 정도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아직 중급 연애센터를 다니는 자신이 아주 운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리는 그래도 가끔 자기도 저런 연애를 해봤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산딸기2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하는 키스는 연애센터에서 배우는 키스랑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완벽한 각도를 유지한 키스가 아니라 되는 대로 마구 하는 키스 같았다. 키스를 저렇게 해도 되나… 나리는 새삼 궁금증이 일었다. 언젠가 나도 혁이랑 저런 키스를 한번 해봐야지… 이런 상상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교사가 나리의 이름을 부른다.
"나리 학생, '날카로운 첫 키스'는 무슨 비유법이지?"
'제기럴…' 나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선다. '키스가 날카롭다구? 진작에 키스나 해볼 걸…'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일단 되는 대로 대답부터 하고 보자 싶다. "직유법!" 교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리를 쳐다본다. '또 틀렸군!' 나리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는다.
이윽고 수업종이 울린다. 다른 반보다 진도가 늦다며 교사는 다음 시간에 마저 공부할 연시(戀詩)를 다섯 번씩 연습장에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고는 서둘러 교실을 나간다.(계속)
연애편지 시간. 나리는 서둘러 교과서를 편다. 연애 능력평가 시험에서도 연애편지 과목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늘 나갈 진도는 근대 연애편지 대목이다. 몇 십 년 전부터 교과서에 변함 없이 실리고 있는 연애편지 한 편을 공부한다.
한국 근대 연애편지의 백미로 알려진 이 작품은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작품이다. 교사는 이 편지의 도입부와 전개부, 고조부, 여운부, 단락 단락을 나눠서 각 문장에 쓰인 비유법과 과장법 따위를 시시콜콜 물어본다. '호수 같은 눈'이 직유법인지 은유법인지 나리는 자꾸 헷갈린다. 아이참…. 나리는 교사가 시키는 대로 밑줄을 긋고는 직유법이라고 쓴다는 게 그만 '아이참'이라고 썼다가 서둘러 지우고 다시 쓴다.
사실 나리는 아직 한번도 제대로 연애편지를 써보지 않았다. 습작을 몇 번 써보긴 했지만 숙제로 쓴 것일 뿐이다. 진짜 연애는 아직 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생 중에도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들었다. 다들 연애편지 과목 시험을 보고 나면 정작 편지 따위는 거들떠보기도 싫어지는 데다, 그런 편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제 더 이상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누구도 연애편지 과목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다른 반에 비해 진도가 늦다면서 교사는 오늘 따라 속도를 낸다. 편지 분석을 끝내고는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연시(戀詩)로 넘어간다. 어떤 중이 쓴 연시라고 한다. 중이 연애를 하다니 땡중이 아닐까 싶은데, 교과서에까지 실린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이 시에서 가리키는 '님'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교사는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문제라면서 '님'자에 밑줄을 긋고는 그 아래에 '조국'이라고 쓴다. '불쌍한 중이네. 연애를 조국이랑 하다니…' 나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교과서 안에다 '조국'이라고 써넣고는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둔다.
나리는 어제 남자친구 혁이랑 같이 본 영화가 자꾸만 생각난다. 연애센터를 나서자 말자 공중화장실에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는 영화관으로 갔었다. 산딸기2. 미성년자 입장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혁이 손을 잡고 당당하게 들어섰다. 혁이가 대학생처럼 보이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운 나쁘게 연애센터 교사를 만나면 근신 처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덕분에 스릴까지 느낄 수 있어서 더 짜릿한 재미가 있다.
가끔 연애센터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가기도 하지만, 주로 잘못된 연애에 빠져서 인생을 망친 여자들이 나오는 계몽영화여서 끝까지 보고 있기가 지루할 정도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아직 중급 연애센터를 다니는 자신이 아주 운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리는 그래도 가끔 자기도 저런 연애를 해봤으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산딸기2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하는 키스는 연애센터에서 배우는 키스랑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완벽한 각도를 유지한 키스가 아니라 되는 대로 마구 하는 키스 같았다. 키스를 저렇게 해도 되나… 나리는 새삼 궁금증이 일었다. 언젠가 나도 혁이랑 저런 키스를 한번 해봐야지… 이런 상상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교사가 나리의 이름을 부른다.
"나리 학생, '날카로운 첫 키스'는 무슨 비유법이지?"
'제기럴…' 나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선다. '키스가 날카롭다구? 진작에 키스나 해볼 걸…'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일단 되는 대로 대답부터 하고 보자 싶다. "직유법!" 교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리를 쳐다본다. '또 틀렸군!' 나리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는다.
이윽고 수업종이 울린다. 다른 반보다 진도가 늦다며 교사는 다음 시간에 마저 공부할 연시(戀詩)를 다섯 번씩 연습장에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고는 서둘러 교실을 나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