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개정, 그 시늉과 호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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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개혁 입법의 하나인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교육계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정치권, 시민단체들까지 찬반 논란이 뜨겁다. 천주교 주교회에서 유례 없이 반대 입장을 내놓자 평신도들이 주교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교총,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등 사학 관련단체 회원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 또한 통과될 경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법률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률 불복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쟁점은 간단하다. 개정에 찬성하는 쪽은 사학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반대하는 쪽은 자율성을 강조한다. 정부와 여당은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인사의 공정성을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과 사학 단체들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성과 자율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구현해야 할 가치인 만큼 정책의 묘가 필요한 부분이다.

구체적인 쟁점은 교직원 임면권, 개방형 이사제, 예산심의권에서 드러난다. 교직원 임면권은 애초 개정안에서는 학교장에게 넘기기로 했다가 여당이 한 발 물러서 이사장에게 그대로 두기로 하면서, 전교조나 교수노동조합 쪽에서는 개혁안이 오히려 후퇴했다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사립학교 이사진의 1/3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외부인사로 임명토록 한 개방형 이사제와 학교운영위원회에 예산심의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학 관련 단체와 한나라당이 결사 반대를 하고 있다. 개방형 이사제가 되면 이사회에서 제동을 걸어 재단이 학교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립학교 교장단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학교가 전교조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고 지레 우려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립학교법 상으로는 이사장이 이사진을 선임하고 그 이사진이 또 감사를 임명하게 되어 있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 되기 십상인 구조다. 실제로 많은 사립학교들이 그렇게 해서 학교운영에 전횡을 일삼고 부정부패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개정안인 셈이다. 사학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지만,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학재단 수준을 볼 때 최소한의 제한에 그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개혁입법이랄 것도 없는 개정안이다. 설령 이사의 1/3이 이사장 뜻에 반하는 인물이 된다 해도 그 숫자로는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1/3은 지역인사와 학부모, 교사로 구성되므로, 전교조 교사가 이사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1/9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지금 개정안대로라면 개방형 이사제가 된다 해도 사학재단의 의결권이 제약당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셈이다.

이런 정도의 개혁 '시늉'에 호들갑을 떠는 한나라당이나 사학재단들을 보면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 놀랄 정도다. 만약 '시늉'에 화답하는 거라면 이해할 법도 하다. 한쪽이 개혁하는 척 하면, 또 한쪽은 놀라는 척 해야 장단이 맞을 테니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공공성과 자율성은 결코 서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공에 기여하지 않는 자율은 자율이 아니라 방종이다. 방종은 결국 자해(自害)로 이어진다.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사학이 오늘날 이 지경이 된 것은 그런 결과라고 봐야 한다. 이번의 개정안이 사학의 자율성을 일부 침해한다 하더라도, 사학재단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신뢰를 얻게 되면 그 때 다시 법을 개정하면 된다. 그때는 자율성을 완전 보장하는 쪽으로 개정한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에서 또 하나 유감스러운 일은 대안학교로 알려진 몇몇 특성화학교들도 여기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역시 가재는 게 편인가. 특성화학교들 상당수가 종교재단 사립학교들이고, 일반 사립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학교들도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대안교육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부르짖는 자유와 자율이 자칫 기득권자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데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교육이 변화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대안사회를 바란다면 전체의 진보를 위해서 나의 진보를 유보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대안이 아닐까?


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