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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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빛이 바래고 생기를 잃어버리는 마법의 성.
우주의 신비도 그 안에서는 따분한 공식이 되고,
가슴을 울리는 노래도 음정과 박자의 조합이 되고 만다.
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가 없어도
모든 아이들이 앞다퉈 들어가는 곳.
설레는 마음 안고 들어간 그들, 머지 않아
분홍빛 뺨도 반짝이는 눈빛도 그 빛을 잃으리니...

이 마법의 성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사는데 임금님은 자기가 벌거벗고 있는 줄을 몰랐다. 희대의 사기꾼들이 임금님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기 당하는 이들이 그렇듯이 그 임금님도 욕심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니 옷도 가장 멋진 걸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꿰뚫어본 사기꾼들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옷을 지어 바쳤다. 그 옷을 입은 임금님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도 사실이었다. 하나님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있었으니. 그런데 속고 있는 것은 임금님만이 아니었다. 그 나라 백성들 모두가 속고 있었다. 자기만 못난 사람이 될까봐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아무도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우화를 우화로 볼 수만은 없다. 우리의 입시교육이 바로 이런 사기극이 아닐까? 돈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성까지도 앗아가는 치밀한 사기극, 모든 사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감히 누구도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기 힘든 거대한 사기극, 누구도 사기를 친다고 또 당한다고 생각지 않는 거짓말 같은 사기극, 사기꾼 없는 사기극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사기꾼인 희한한 사기극이 바로 우리의 입시 교육 현실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기극에 밥줄을 걸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걸고 있다. 때문에 이 극은 끝날 줄을 모른다. 해마다 이 사기극의 피해자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도 사기꾼을 고발하지 않는다. 책임질 이도 고발당할 이도 없다. 모든 것은 그저 사기당한 자의 책임일 뿐... 그러나 당한 자는 당한 줄도 모른 채 또 한번 판돈을 걸고 뛰어든다.

돈 놓고 돈 먹기, 이 야바위판에서 몇몇은 분명 돈을 딴다. 학교와 학원, 과외교사들과 학습지 회사들... 그 속에서 죽어가는 것은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이 사기극에서는 아이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에서는 아이들이 진실을 밝히지만 이 사기극에서는 아이들이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입시라는 마법에 걸린 아이들. 삶을 잃어버린 아이들.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죽어지내는 아이들.  

지금의 어른들도 한때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바로 그 아이들이 자라 또 그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어른이 되면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이 사기극의 허구를 깨뜨리는 길은 어디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악몽의 시작이 아니라 새날을 맞아 가슴이 설레는 그런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입시라는 마법의 주문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