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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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박노자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정말 '우리'라는 말을 너무도 좋아한다. 그리하여 어디나 우리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역사,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동네, 우리 교회, 심지어는 우리 마누라라고까지 말한다. 상호에까지 등장해서는 '우리 은행'이 생겨나더니 정당 이름까지도 '우리당'이란다.

내가 이런 용어법이 얼마나 특이한 것인가를 깨달은 것은 유학시절이었다. 독일에서 한 6년 남짓 생활하면서 나는 독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나 민족을 우리 나라 또는 우리 민족이라고 1 인칭으로 부르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독일인들은 자기 나라를 지칭할 때에는 독일(Deutschland), 그리고 자기 민족을 지칭할 때에는 독일인들(die Deutschen)이라고 반드시 3인칭으로 이름을 불렀다. 때로는 그런 이름 역시 너무 민족주의적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 친구들은 독일이나 독일인이라고 말하는 대신 꼭 중부유럽(Mitteleuropa), 중부유럽인(Mitteleurop er)이라는 중립적인 이름을 사용하였다.

국가와 민족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자기가 다니는 대학을 우리 학교라고 부르는 것은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지만 한국인인 나 역시 내가 다니고 있었던 독일 대학을 한 번도 우리학교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나는 괴팅겐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 그리고 마인츠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것도 '우리학교'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저 내가 한 때 공부했던 대학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같이 유학했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유학생들이 둘러앉아 마인츠 대학을 우리 학교라고 부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학교 앞 술집에서 술 마시는 학생들이 그 술집을 우리 술집이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우리 학교, 우리 과, 이런 말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같은 한국 사람이 같은 독일 대학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우리학교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한국에서는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도 그리도 쉽게 우리 학교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 독일의 대학은 동네 수퍼마켓이 그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을 '우리'로 만들어 주지 않듯이 대학생들을 '우리'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대학생들 개개인을 싸잡아 집단적 주체성 속에서 '우리'로 만들어주는 어떤 특별한 공동체이다. 학벌의식이란 그렇게 형성된 '우리-의식'이며, 학벌이란 그런 집단적 자기의식에 의해 지탱되는 집단적 주체이다.

학벌이 무슨 문제냐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특정 학벌에 의한 권력독점을 애써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이른바 일류대 출신들이 남들보다 능력이 있어 고시에 더 많이 합격해서 생기는 문제를 가지고 왜 권력독점이니 뭐니 하면서 생트집을 잡느냐는 식이다. 그렇게 되묻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학벌문제가 순수하게 개인들의 문제였더라면 어떤 학교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권력을 얼마나 독점하고 있든 그것은 단순히 산술적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에는 자기의 출신학교가 어디든 모두가 개별적인 주체로서 행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학벌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력(學歷)은 개인의 속성이며 학연(學緣)은 개인들 사이의 중립적 관계이다. 그러나 학벌은 그 자신 사회적 실체요 집단적 주체이다. 즉, 학벌문제가 개인의 학력이나 개인들 사이의 학연과 다른 것은, 한국에서는 같은 학교의 구성원들이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집단적 주체로서 결속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집단적 주체성 속에서 결속한 집단이 바로 학벌 또는 학벌집단인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주체로서 정립된 학벌은 모든 주체가 그렇듯이 자기존재의 확장을 추구한다. 즉 그것은 개인적 주체가 그러하듯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학벌의식이 강해질수록 학벌이기주의 역시 강해지고, 학벌집단들이 폐쇄적 결속 가운데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할 때 공공의 선과 공익은 실종된다.

따지고 보면 아무 상관없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각자 자기 공부를 한다는 점에서는 수퍼마켓이나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학교를 (행여 이 말을 학교와 시장을 동일시하는 신자유주의 교육론의 표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렇게 폐쇄적인 집단적 주체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학교'라는 공동의 자기의식이다. 주체는 마지막에는 반드시 자기의식을 통해서만 발생하는바, 이는 개별적 주체뿐만 아니라 집단적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학벌사회를 넘어 학벌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먼저 이 '우리 학교'라는 말부터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객관적 타자로서 거리 두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학벌사회 극복을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여러분, 부디 자기가 다니는 학교, 다녔던 학교 보기를 동네 슈퍼마켓 보듯이 하소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학벌없는 사회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