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서러운 당신께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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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서러운 당신께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

 

두 손  마주 잡고

두 눈 마주 보며

떨리는 가슴으로

메이는 목소리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고맙고

고맙다고

 

고마워서 더욱 서러운

세상에 모든 당신께

 

 

 

당신에게

 

문득 내 지나온 생들을 돌아보며 참으로 수많은 생애 동안 받는 자로, 매달리고 구걸하는 자로 살아왔구나.

그 끈질긴 지난 생의 습이 이번 생에도  나를 또다시 그렇게 길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누군가가 배풀어주길 원하는

그런 습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왜 우리는 여태껏 구걸하고 매달리며 살아야 할까요. 왜 당당히 축복하는 자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제 남은 내 생애를 위한 서원 하나를 '감사하고 축복하는 자로 산다'로 삼아 봅니다.

이번 생에서 축복하는 것 외에 달리 할일이 없음을 더 이상 머리로서가 아니라 정말 설레는 가슴으로,

살아 숨쉬는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가림 없이  안으면서 축복하는 자로 살 수 있기를 서원하는 것이지요.


구걸하는 습이 배인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축복하는 자로 살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이를 위해서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싶습니다. 의심하고 다짐하고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그런 식의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꽃 피워 가는 그런 사랑을.

 

오늘 들판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들 꽃에서 그 사랑을 봅니다.

그 꽃은 자신을 열어 꽃 피우고 향기를 온 사방에 대한 어떤 의심이나 아무런 망설임도,

어떤 동의도 없이 그렇게 피어남을 봅니다.

 

 때가 되어 스스로 봉오리를 열어 꽃을 피우고 그 향기를 바람에 실어 나눔으로써

자신과 세상이 힘께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그런 사랑법을 다시 배워야 하겠지요.

달빛에 젖어 지리산을 오르고 저문 동해를 눈 시리게 바라보면서 이 아름다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세상,

이 행성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늘 생기차고 평안한 나날 일구시길.

 


- 이병철, 『당신이 있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