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정부와 촛불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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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교부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도심 골목길에서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어이없게 세상을 떠났다. 황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엎어져서 또는 길 위에 선 채로 서서히 죽어간 ‘참사’를 두고 정부는 세월호 때처럼 ‘사고’로 규정하려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행안부 장관은 “우려할 만한 인파가 아니었다.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은 책임회피성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심지어 한덕수 총리는 외신기자들 앞에서 실실 웃으며 말장난을 해 사람들을 뜨악하게 했다. 슬픔과 당혹감에 빠진 국민을 조롱하는 ‘일베스러운’ 정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윤정부는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면서 야당과 국민들의 입을 막고 추모 분위기로 몰아가려 한다. 영정 사진도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에 유족들도 모르게 가서는 서둘러 조문을 하고, 언론들은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짚기보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사를 내보내기에 바쁘다. 정부도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애도를 하더라도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작업을 늦출 이유가 없다. 선출직인 용산구청장은 주민소환제를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소환의 법적 근거가 없고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니 탄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고, 금융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와중에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도는 나날이 더해간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도 태도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뽑은 국민들에게 일차적 잘못이 있지만, 국민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참사 관련 기사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자꾸 놀다 죽었다 하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꼭 일하다 죽은 사람은 대우해주는 나라 같습니다.” 그렇다. 이 나라는 재해 공화국이다. 세계 6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해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80명이다. 사고 사망자가 828명, 질병 사망자가 1,252명이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노동자는 12만 명이 넘는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는 나이 어린 여성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해 오랜 법정투쟁을 해야 했다.

‘안전’은 원래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다. 진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쪽이고 보수는 안전과 현상 유지를 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법이다. 이 나라의 보수가 사실상 보수가 아니라 극우 집단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었지만 기업의 책임선을 명확히 하지 않은 누더기 입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당선 직후 이 법이 기업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다며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무능과 무감각은 교정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김진태 강원지사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고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리자 비상경제대책회의라며 알맹이도 없는 회의를 생중계한 것처럼, 무능을 감추기 위한 쇼를 계속 보여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윤석열은 오늘로 나흘째 ‘조문 쇼’를 이어오고 있다(그의 멘토인 천공이 일러준 대로). 이 와중에 천공은 "아이들의 희생이 보람되게 외교의 기회로 삼자"는 망언을  했다. 리더를 잘못 뽑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점점 늘어간다.


이런 나라 꼴을 보다 못해 오늘 십대 청소년들이 일어섰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소속 1511명의 학생들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중고등학생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우리 중고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미 국영수밖에 모른 채 세상에 대한 지식이 단절된 삶을 살아가면 어떤 어른이 되어 버리는지, 윤석열 대통령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시지 않은가?”

한편 교육부는 벌써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압사예방교육을 한다고 한다.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압사의 공포를 각인시켜주려는 걸까? 아이들에게 삶이 위험으로 가득하고 이 세상이 공포스러운 곳이라는 두려움이 스며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어쩌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주게 되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더 이상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