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민들레

[교육공간민들레] 1년의 배움, 한 권의 책이 되다_ 여는 말

우리가 마침내 배워야 할 것은_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세계는 공간이 아니라 범위다. 

그것은 적응할 수밖에 없는 무거운 현재로 강요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영역이다.

 파울로 프레이리

작년 민들레 아이들과 읽은 책이 있습니다. 안보윤 작가의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단편소설집입니다. 어둡고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지만, 읽다 보면 따뜻해지고 힘이 나는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동이 터오는 동쪽 하늘이거나 끝이 보이는 터널 밖 풍경을 어깨 걸고 바라보는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제목 속의 ‘밤’은 소설 속에 나오는 ‘밤톨이’라는 강아지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주인공은 모질지 못하고 남에게 퍼주기 좋아하고 제 것은 야무지게 못 챙겨 날마다 가까운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고 여기는(또는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챙기고 싶어 하는 것은 ‘밤톨이’라는 유기견이었습니다. 보호소에 갇힌 유기견을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로,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대사는 주인공이 유기견을 보호한다고 가둬둔 철창에서 개를 데리고 나오다 중얼거리는 말입니다. 그녀는 이전 주인이 달아준 ‘밤톨이’라는 화려한 이름표를 떼며 “이젠 넌 토리야,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 하고 다정한 말을 건넵니다. 이렇게 밤톨이는 토리가 됩니다.

안보윤 작가는 소설집을 내고 고등학교 강연을 다녔습니다. 하루는 수능이 끝난 한가한 고등학교 3학년과 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소설 속에 나오는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대사를 주제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소설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누군가 당신에게 ‘밤은 내가 가질게’라고 말해온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하고. 그러자 학생들은 진지하거나 무겁거나 재치 있거나 경쾌한 답들을 했는데, 대답 중에 이런 대답이 있었습니다.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세상에, 이토록 당당한 목소리라니!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말을 찾았다고 합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손을 내밀 때,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상대를 다정다감하게 감쌀 수 있는 대사가 궁금했습니다. 세상이 험하고 사람들은 지쳐 있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위로와 배려와 애정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는 그런 고심 끝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러다 “내 밤을 왜 니가 가져?”라는 뜻밖의 말과 만난 것입니다. 안보윤 작가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위로와 배려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다잡는 단단한 마음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거라는 걸 소설 속에 적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안보윤 작가의 마음과 민들레 교사들의 마음이 이토록 교차하다니...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민들레에서 우리가 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게 있다면 이 두 가지 말이라 생각합니다.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내 밤은 내가 챙길게”.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한한 경쟁과 불공정, 편견과 혐오 등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게임의 룰은 그야말로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사회 많은 미래세대는, 게임의 정체를 정확하게 몰라도 패배감이나 열등감은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언제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게, 대부분 떨어진 자존감과 각자도생에 대한 불안감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날마다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와 ‘내 밤은 내가 챙길게’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어느 날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더러 말이나 태도가 헛나갔을 수도 있고 어떤 말이 그에게 필요한지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많은 스승들을 소환합니다. 페스탈로치와 듀이와 우치다 타츠루와 이영희 선생님과 박노해 시인과 김진숙 노동자와 누구보다 파울로 프레이리를 떠올립니다.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세상을 바라보고 상황을 판단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제가 아는 많은 스승들의 여깨 위에서 내려오려 합니다. 대신 오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한 명 한 명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들려줄 순정의 성장기를 기준 삼아 내일 또 민들레에서 ‘교육’이라는 엄중한 실천을 해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세계는 공간이 아니라 범위다. 그것은 적응할 수밖에 없는 무거운 현재로 강요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영역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교육은 자신의 세계를 새로이 범주화하고 그 범주의 룰을 제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저는.... 부디 민들레에서의 시간이 이들에게 자신의 세상을 자신이 정하고, 그 세상의 룰을 새로이 만들어 가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었길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 살다 보면 힘들고 두렵기도 하겠지만, 서로 “너의 밤은 내가 가질게” 하고 다독이며, “내 밤은 내가 챙길게”를 맘속으로 다져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를 들려줄 모든 아이들은, 여기 오신 어른들에게도 스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배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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