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 AI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괴담 혹은 공포 | 도동권
대화, 상담, ‘썸’까지? AI와 교감하는 청소년들 | 유경아
왜 AI는 당당하게 틀릴까 | 김현종
‘인간지능’을 고민하는 양육자의 소신 | 이진희
도래한 미래, 도달할 미래 | 장희숙
2부 AI 시대, 교육의 방향은
세대를 연결한 좌충우돌 AI 수업 체험기 | 문정연
AI 시대 학습자에게 필요한 것 | 박숙자
학교 안으로 들어온 AI, 교육의 자리를 묻다 | 송근상
AI 기술과 교육 불평등의 미래 | 이윤선
AI 시대,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 정민승
단상_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 | 현병호
또 하나의_ 창 그럼에도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 | 김성우
열린 마당_ 영어는 언제부터 배워야 할까 | 김현희
세상 읽기_ 태권도장은 어떻게 K-돌봄기관이 되었을까 | 이설기
제언_ 7세 고시보다 중요한 유아시민교육 | 박창현
본문 가운데
그래서 나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게 되었다. ‘AI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이 쥐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로. 적어도 현장에서 본 바로는 이렇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결정, 동료와의 신뢰, 현장의 미묘한 맥락을 읽는 감각, 이것들은 데이터로 학습될 수 없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8년간 전략 기획 일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의사결정 회의에 들어갔다. 데이터는 늘 충분하지 않았고, 정답은 없었고,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때마다 느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건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_<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괴담 혹은 공포> 가운데
AI가 보이는 사회적 아첨은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AI와 대화한 후 자살한 청소년들의 사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가상 AI 캐릭터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다 자살한 청소년, 과제 수행 도구로 챗GPT를 활용하다가 점차 자신의 고민과 자살 사건을 공유하고 방법까지 논의한 끝에 생을 마감한 청소년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관련 기업에 대한 소송이 잇따르고, 여러 주에서 규제 법안이 발의되는 등 제도적 논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_<대화, 상담, ‘썸’까지? AI와 교감하는 청소년들> 가운데
AI를 교실에 들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정보가 철저히 관리되는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이 AI가 교육적으로 올바르게 작동하는가’ ‘학생의 사고를 저해하지 않는가’를 검증할 수 있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지금 교육부는 이 막중한 검증의 책임을 전문성도, 시간도 부족한 일선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교사가 무슨 수로 AI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검증하고, 데이터 처리 방식의 적절성을 기술적으로 판단합니까? 냉정하게 말해 이는 교육부의 ‘책임 회피용 알리바이’입니다. _<학교 안으로 들어온 AI, 교육의 자리를 묻다> 가운데
솔직히 말해보자. 교육을 통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낸 경험이 있는가? 학교의 교훈, 혹은 반에 걸린 급훈이 교육에서 실현된 경우가 있었는가? 각종 연수와 교정 교육, 인재 교육과 훈련이 그렇게 많아도,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교육은 몇 안될 것이다. 교육은 만능의 해법처럼 거론되지만, 세상 쓸데없고 지루한 것이 또한 교육이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또 교육을 말한다. 그냥 대책으로 교육을 말하면 뭔가 대안이 마련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교육은 ‘아무 데도 맞지 않는 만능키’인 셈이다. _<AI 시대,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가운데
AI를 파트너로 삼아야 할 때와 아닌 때를 분간할 줄 아는 능력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창의적인 생각은 흔히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솟아난다. 빈틈없이 짜인 시간표는 노예를 기르는 시간표이지 자유민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빈틈이 필요하다. 부드러움, 다정함 같은 인간다움의 요소들은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레너드 코헨의 노랫말처럼,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법이다. _<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 가운데
사회성 교육은 공동체 안에서 ‘잘 지내는 법’을 가르치지만, 시민성 교육은 ‘함께 결정하는 법’을 묻는다. 전자는 질서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후자는 공적 판단의 형성에 초점을 둔다. 유아교육에서는 이 둘이 거의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어왔다. 그 결과 민주시민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문제 없는 아이’ ‘협조적인 아이’ ‘착한 아이’의 다른 말이 되었다. 또한 참여는 허용되나 결과를 바꾸지 않는 수준에서, 의견은 말하되 결정에는 반영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된다. _<7세 고시보다 중요한 유아시민교육> 가운데
VOL.159(2026.봄) AI 시대, 교육과 인간의 길
목차
1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 AI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괴담 혹은 공포 | 도동권
대화, 상담, ‘썸’까지? AI와 교감하는 청소년들 | 유경아
왜 AI는 당당하게 틀릴까 | 김현종
‘인간지능’을 고민하는 양육자의 소신 | 이진희
도래한 미래, 도달할 미래 | 장희숙
2부 AI 시대, 교육의 방향은
세대를 연결한 좌충우돌 AI 수업 체험기 | 문정연
AI 시대 학습자에게 필요한 것 | 박숙자
학교 안으로 들어온 AI, 교육의 자리를 묻다 | 송근상
AI 기술과 교육 불평등의 미래 | 이윤선
AI 시대,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 정민승
단상_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 | 현병호
또 하나의_ 창 그럼에도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 | 김성우
열린 마당_ 영어는 언제부터 배워야 할까 | 김현희
세상 읽기_ 태권도장은 어떻게 K-돌봄기관이 되었을까 | 이설기
제언_ 7세 고시보다 중요한 유아시민교육 | 박창현
본문 가운데
그래서 나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게 되었다. ‘AI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이 쥐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로. 적어도 현장에서 본 바로는 이렇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결정, 동료와의 신뢰, 현장의 미묘한 맥락을 읽는 감각, 이것들은 데이터로 학습될 수 없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8년간 전략 기획 일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의사결정 회의에 들어갔다. 데이터는 늘 충분하지 않았고, 정답은 없었고,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때마다 느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건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_<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괴담 혹은 공포> 가운데
AI가 보이는 사회적 아첨은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AI와 대화한 후 자살한 청소년들의 사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가상 AI 캐릭터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다 자살한 청소년, 과제 수행 도구로 챗GPT를 활용하다가 점차 자신의 고민과 자살 사건을 공유하고 방법까지 논의한 끝에 생을 마감한 청소년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관련 기업에 대한 소송이 잇따르고, 여러 주에서 규제 법안이 발의되는 등 제도적 논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_<대화, 상담, ‘썸’까지? AI와 교감하는 청소년들> 가운데
AI를 교실에 들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정보가 철저히 관리되는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이 AI가 교육적으로 올바르게 작동하는가’ ‘학생의 사고를 저해하지 않는가’를 검증할 수 있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지금 교육부는 이 막중한 검증의 책임을 전문성도, 시간도 부족한 일선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교사가 무슨 수로 AI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검증하고, 데이터 처리 방식의 적절성을 기술적으로 판단합니까? 냉정하게 말해 이는 교육부의 ‘책임 회피용 알리바이’입니다. _<학교 안으로 들어온 AI, 교육의 자리를 묻다> 가운데
솔직히 말해보자. 교육을 통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낸 경험이 있는가? 학교의 교훈, 혹은 반에 걸린 급훈이 교육에서 실현된 경우가 있었는가? 각종 연수와 교정 교육, 인재 교육과 훈련이 그렇게 많아도,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교육은 몇 안될 것이다. 교육은 만능의 해법처럼 거론되지만, 세상 쓸데없고 지루한 것이 또한 교육이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또 교육을 말한다. 그냥 대책으로 교육을 말하면 뭔가 대안이 마련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교육은 ‘아무 데도 맞지 않는 만능키’인 셈이다. _<AI 시대,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가운데
AI를 파트너로 삼아야 할 때와 아닌 때를 분간할 줄 아는 능력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창의적인 생각은 흔히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솟아난다. 빈틈없이 짜인 시간표는 노예를 기르는 시간표이지 자유민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빈틈이 필요하다. 부드러움, 다정함 같은 인간다움의 요소들은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레너드 코헨의 노랫말처럼,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법이다. _<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 가운데
사회성 교육은 공동체 안에서 ‘잘 지내는 법’을 가르치지만, 시민성 교육은 ‘함께 결정하는 법’을 묻는다. 전자는 질서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후자는 공적 판단의 형성에 초점을 둔다. 유아교육에서는 이 둘이 거의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어왔다. 그 결과 민주시민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문제 없는 아이’ ‘협조적인 아이’ ‘착한 아이’의 다른 말이 되었다. 또한 참여는 허용되나 결과를 바꾸지 않는 수준에서, 의견은 말하되 결정에는 반영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된다. _<7세 고시보다 중요한 유아시민교육>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