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이야기

교육지 ⟪민들레⟫, 25년을 돌아보다

창간 25주년을 맞는 ⟪민들레⟫가 올해부터 발행 주기를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바꾸고, 내용도 한 가지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방식으로 개편합니다. 이런 변화를 꾀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발행인과 장희숙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민들레 통권 151호 (2024.봄)에 수록된 대담을 줄여서 싣습니다.)


 

25년을 돌아보며


현병호 : 1999년 ⟪민들레⟫를 창간하면서 내건 ‘탈학교 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맞았다고 봅니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에야 시작된 셈이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홈스쿨링 가정도 빠르게 늘어났죠. 창간사 제목이 ‘길이 됩시다’였는데, 국가 중심 교육을 벗어나 교육의 민주화를 실제로 구현해보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10년쯤 전부터 저 개인적으로는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학교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육을 살피면서 학교의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되었어요. 초창기에는 표준화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해 학교교육의 보편성까지도 부정하고, 개인 수준의 대안과 국가 수준의 대안을 혼동했던 것 같아요. 개별화 교육이란 것도 보편교육의 토대 위에 개별성을 가미하는 거지, 표준화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장희숙 : 우리가 추구했던 개별성에 반대되는 개념은 보편성이라기보다 집단성 아닐까요. 아이들을 그냥 한 덩어리로 보면서 시스템으로 돌리는 근대학교의 집단성에 대한 반발로 개별화 교육을 추구해온 거잖아요.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학교는 집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때보다 개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방치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공교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꾸준히 그 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운동의 방향에 대해 


현병호 : 교육운동의 토대가 되는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교육, 대안교육이 추구해온 아동중심, 학습자중심, 경험중심 같은 큰 방향에 대해 다시 짚어봤으면 합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진행돼온 교육운동의 흐름 속에 반지성주의가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요. 어떤 지점이 그러한지 살피고, 그걸 넘어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자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과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교육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수준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장보다 경제성장이죠. 자율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까닭도 더 이상 표준화된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기 때문이죠. 

문민정부 5.31 교육개혁 때,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함께 지역과‧학교,‧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걸 천명한 건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정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보수와 진보 정권에 따라 고교 서열화와 평준화 사이를 오락가락해온 것이 지난 30여 년간의 실상이었죠. 고교 내신 상대평가 제도도 그대로이고 사실상 개혁다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 시기가 개혁의 적기였는데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죠. 코로나 팬데믹 영향도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에요.


장희숙 : 교육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몇몇 정책이 추진되긴 했어요. 특히 고교학점제는 잘만 풀면 입시중심 교육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인데 내신 상대평가제를 고수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있죠. 2022년부터 시행된 비인가 대안학교 등록제 같은 것도 신입생이 줄고 있는 현실에서 때늦은 감이 있어요. 문재인 정부 때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2022년 출범과 동시에 정권이 바뀌면서 대폭 축소된 데다 그마저 교육부로 통합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죠. 현 정부 들어서 미래교육을 내세워 AI 교과서 도입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지금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그런 것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담론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구체적인 현실을 놓치기 쉬운데, 그러지 않으려면 아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어른들의 성숙을 돕는 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부모와 교사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아이들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민들레⟫의 변화에 대해 


장희숙 : 민들레를 개편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발행주기, 그리고 내용 구성이에요.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잡지 성격에서 벗어나 단행본처럼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는 거죠. 개편을 통해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좀 더 길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공부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가볍게 다양한 시선을 접할 수 있는 잡지 성격을 좋아하던 분들은 이런 변화가 낯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 읽히면서 공부가 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현병호 : 창간 때는 ‘부모가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교육 주체들의 ‘사이’에 주목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라는 것이 원래 사이를 매개하는 건데, 교육매체는 더욱이 서로 입장이 다른 주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계가 살아나면 교육이 살아나죠.


장희숙 : 독자들이 손꼽는 ⟪민들레⟫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예요. 학부모가 교사의 깊은 고민을 들여다볼 기회, 교사가 학부모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죠. 그간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청소년이나 청년들 이야기를 들려줘서 좋다는 의견도 있고요. 부모와 교사, 교육청 관계자가 같이 읽을 수 있는 교육지는 ⟪민들레⟫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현병호 : 부모와 교사는 서로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또 함께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파트너죠.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교사도 혼자서는 힘드니까요. 예전에는 교사가 주도하고 부모는 따라가는 정도의 팀플레이라도 되었는데 지금은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면서 팀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민들레⟫의 역할은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가 팀플레이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봐요.


현병호  : ⟪민들레⟫가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처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공부 욕구가 커지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죠. 다들 길을 잃은 느낌 속에서 방향 감각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교육운동도 공부 없이 실천만 해서는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죠. 지금 독자모임 상황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들레⟫가 다루는 주제를 놓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문제가 뭔지 제대로 짚고, 이념을 앞세우기보다 물리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 문제에 다들 지쳐 있는 현실에서 ⟪민들레⟫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